새벽 4시 반에 눈을 떴습니다.
어제 밤은 몸이 무거웠는데 오늘 새벽 정신이 듭니다. 어제 밤보다 몸이 훨씬 가뿐해졌습니다. 저절로 두 손 모아 감사했습니다. 아직 내 몸이 움직일 만큼은 살아 숨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새벽에 느끼는 내 몸은 봄이고 밤에 느끼는 내 몸은 겨울입니다. 하루에도 봄 같은 활기와 겨울 같은 냉기를 느끼며 삽니다. 그런 이 내 몸이다 보니 봄 같은 새벽기운이 절실하여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강원도 원주 문막 내 화실에 갔었습니다. 두고 온 산천은 봄꽃들이 흐드러졌더군요. 춘흥에 콧노래 부르며 길디 긴 진밭길을 지나갔습니다. 좌우 산마다 산벚나무와 개살구나무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꽃 피었습니다. 이젠 완연한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서로 손짓하더군요.
기나긴 추운 겨울을 함께 잘 넘긴 저 깊은 그늘이 오늘 이 봄 함께 나누는 기쁨을 더 크게 합니다. 봄은 나도 봄이고 너도 봄이라서 더욱 반갑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참 대견한 사람들입니다. 이 험한 겨울 같은 세상에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스럽습니까.
연해주 여진족 데르수 우잘라는 모든 영혼을 사람이라고 불렀듯이 숲의 눈으로 보면 초목도 짐승도 인간도 모두가 대견한 사람들입니다. 대견한 이웃들 모두 소중한 영혼들입니다.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어깨 움츠리고 살다가도 때를 만나 꽃필 수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대견합니까.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신산고초를 이기고 서서 꽃피워주는 저 사람들 모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취직해서 돈 벌어오고 오순도순 꾸리는 살림살이 나름나름 꽃피운 것입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처녀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입니다. "결혼은 아무나 하나?" 그렇겠습니다. 살림살이 제대로 하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계절의 봄이 와도 봄맞이 못하고 쓰러진 겨울 초목이 지천인데 스스로 꽃단장하고 봄맞이 하는 것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골짜기 봄꽃들이 한 때 한 날로 때를 맞춰 일제히 꽃 피우는 것은 끝까지 살아서 춤추는 환생의 몸짓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때를 기다리며 참고 기다리던 아픔의 세월을 살아나서 다시 봄에 기어코 꽃까지 피웠으니 얼마나 대견한 사람들입니까.
숲처럼 이웃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견합니다. 이 대견한 사람들과 가급적이면 상처 주지 않고 소중한 인연으로 '나도밤나무'처럼 살고지고 싶습니다. 하루하루가 봄도 되고 겨울도 되면서 살고지고를 거듭하는 세상입니다. 이 험한 환경에 우리가 얼마나 대견합니까. 하룻밤 잠에 다시 깨어 일어나 거듭나는 이 내 몸이 얼마나 대견하고 신기한 사람입니까.
봄맞이 새벽에
봉준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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