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때부터 '환경 시장'을 내세웠던 오세훈 시장이 최근 서울시의 교통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내놓았다. 혼잡 통행료와 같은 수요 관리와 함께 서울의 지하 공간에 '지하 도로'를 뚫어 공급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시는 지하 도로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9억 원 상당의 연구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2010년께 용역 결과가 나오면 8곳(총연장 163.9㎞) 중에서 2곳 정도를 먼저 뚫어 운영해볼 계획이다. 우석훈 박사(경제학)는 "이런 대규모 지하 도로 신설 계획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며 "안전ㆍ생태 문제를 떠나서 오세훈 시장의 교통 문제를 바라보는 철학을 의심케 하는 방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우석훈 박사는 "도로 공급을 늘려서 교통문제를 해결하겠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포화 상태가 돼 더 나쁜 상태로 귀결될 게 뻔하다"며 "최대 20조 원 가량이 드는 지하 도로를 뚫을 바에야 대중교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수요 관리를 하는 데 돈을 쓰는 게 더 여러 면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서울시에서는 '격자형 지하 도로'라고 불리는 총연장 163.9㎞의 도로망을 신설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교통 대책의 큰 그림'이라는 부르는 '작은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하 도로라는 것이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존재하기는 한다. 보통 2~3㎞, 길면 10㎞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7×9'와 같은 수치를 내세우며 전국을 격자형 도로로 가득 채우겠다는 기백으로 달려 나가던 사람들이 드디어 서울까지 밀고 왔다. 그리고 이들이 내민 손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굳게 잡은 셈이다. 서울시의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형적인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논리다.
공급 정책으로는 파국만 부른다
도로 정책을 단순하게 구분하면 수요 정책과 공급 정책이 있다. 유럽에서는 1990년대 이후로 공급 정책만으로는 교통 정책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수요 관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도심 지역을 아예 자동차 출입 금지 지역인 문화 유적 공간으로 조성하거나, 주차장 설치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도시 교통 문제는 밀도의 함수이다. 밀도가 높아지면 아무리 도로를 잘 만든다고 해도 교통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떠한 공급 정책도 언젠가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중심 지역 이전에 황폐화되거나, 하는 둘 중의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최근 사막 한 가운데 지하철이라도 놓을 수밖에 없다고 결정한 두바이의 경우가 밀도에 의한 교통대란의 대표적 예다.
서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구는 정체돼 있지만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밀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의 교통 문제는 지하 도로를 격자형으로 수백㎞ 정도 놓는다고 풀리지 않는다. 지하에서의 안정 문제, 생태 문제와 같은 기술적 문제가 생겨나는 것과는 별도로 서울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서울의 밀도를 줄이고 경제, 문화의 집중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서울을 몇 개의 도시로 쪼개고 교육, 행정, 경제 기관을 지속적으로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방향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교통 정책도 이런 방향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고민이 돼야 할 것이다.
현재의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는 시내버스를 완전 공영제로 바꾸고 무료 셔틀버스 체계로 가는 것이 옳다.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버스가 무료가 되었을 때에도 역시 자가용을 고수할 것인가는 쉽지 않은 논란이지만, 아마 공영버스제로 최소한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버스가 무료가 된다면 30~40%의 교통량이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추정한다.
서울시 전체를 공사판으로 만들겠다고?
오세훈의 서울시가 '쾌적함'을 내세우며 벌이는 또 다른 거대한 공사판은, 전혀 쾌적함과는 상관없고, 생태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10년 정도는 걸릴 이 교통 공사는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하기도 어렵다. 그 자체로 최소한 10년간은 서울 교통대란의 또 다른 요소가 될 것이다. 일종의 딜레마이다.
파리에도 문화유적을 피해가기 위해서 짧은 지하도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개선문을 통과하는-영국의 다이애나비가 여기에서 사망했다-지하도로 같은 것들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도시들도 교통 문제에 별 대책이 없을 정도로 정책입안자들이 괴로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도시도 오세훈의 서울시처럼 거대하고 입체적이며 총체적인 지하도로망을 만들지는 않았다. 도로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교통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더 큰 문제점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9억 원을 들여서 서울의 격자형 지하도로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하고, 2010년부터 시범착공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아직 타당성 자료가 제시된 게 없으니까 당연히 예산자료도 없을 것이다. 거칠지만 서울시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 얼마나 돈이 들 것인지를 따져보자.
서울시가 제시한 총연장 8개 도로 163.9㎞에 고속도로 건설단가 ㎞당 300억 원을 곱하면 5조 원 정도의 돈이 나온다. 지하 공사에 따른 공사 비용을 감안해 ㎞당 500억 원의 단가로 계산하면 8조 원이 나온다. 복층구조와 서울의 평균 지대 가격을 감안해 ㎞당 1000억 원의 단사를 사용하면 16조 원의 돈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변북로처럼 토지매입 비용이 없는 곳과 있는 곳, 그리고 주변 정비 사업까지 전부 포함해서 감안한다면, 최저 8조 원에서 최고 18조 원 정도의 공사비가 필요한 사업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아마 실제로는 이것보다 조금 더 들어가서 20조 원 정도의 돈이 소요되지 않을까 한다. (많은 공공사업이 사업 후 정산을 하면 20~30% 정도의 예산이 더 투입되었다.)
이 정도의 돈이라면 구청별 혼잡통행료와 대기오염부담금 같은 종합재원에 의해서 차라리 혼잡을 만들어내는 승용차를 대중교통인 버스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완전 공영제에 무료버스를 도입하는 것이 더 손쉽고, 부드럽고, 효율적인 대책이 아닐까? 이미 보조금이 투입되고 있는 대중버스와의 세액 차이가 현실적인 장애물인데, 서울시에서 최소 10조원 정도의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면, 전면적이지는 않더라도 부분적인 무료 버스-최소한 출퇴근 시간 -와 같은 정책 대안을 만들어볼 수는 있다.
쿠리치바 시의 버스중앙차선제는 지하철 신설 비용을 버스차선제로 전환하고 서민들에게 버스요금을 대폭 인하하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수없는 공무원들이 쿠리치바 시를 방문했지만, 정작 이 정책의 근본정신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오세훈, 제2의 이명박이 되려나?
현실적으로 20조 원 가까이 소요될 대공사에 따른 10여 년간의 공사에 따른 혼잡비용과 보건효과 같은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오세훈의 서울시가 주장하는 격자형 지하도로는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에 미치는 보건적·생태적인 의미에서의 부정적 폐해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정책은 서울의 밀도를 높이고, 서울로 자원이 몰리게 하는 역진적 효과를 국민경제 내에서 만들어낼 것이다.
이 사건이 오세훈 시장이 지금까지 쓰고 있던 녹색 가면을 벗고 본격적으로 '그린 워시' 시대에서 개발주의 시대로 역행한 제2의 이명박 사건인가, 아니면 그가 생각해본 답이 없어 보이는 서울시의 교통문제에 대해서 대한 수많은 대안 중의 하나일 뿐인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제발 이 사업의 정치적 의도가 2010년에 임기가 끝나는 오세훈 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의 일환이 아니기를 빈다. 하필이면 첫 시범사업이 2010년인가? 격자형 지하도로의 기술적·경제적 논의와는 별도로 2년 연구하고 바로 시행하겠다고 해서 될 간단한 사업이 아니다.
지역 주민 및 통과하는 지자체와의 협의는 6개월 만에 끝내고, 임기 마지막에 착공식 하고 대선 출마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그런 얕은 수로 서울 교통 대책의 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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