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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가 한심하다'는 386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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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가 한심하다'는 386은 들어라"

[화제의 책] 우석훈ㆍ박권일의 <88만 원 세대>

지난 20년간 대학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추적한 기사("민주화 20년, 다시 '박정희의 아이들'이 나타났다")를 본 한 독자는 이렇게 말했다.

"술집은 출근 도장 찍듯이 드나들고, 당구장 가서 삼삼오오 당구나 치고. 이랬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자리 좀 잡으니까, '요즘 대학에는 문화가 없다' 이런 소리나 한다. 운이 좋아서 대학의 낭만이라는 사치를 부려볼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고 입 닥쳐라."

또 다른 독자도 공감을 표시하면서 이렇게 답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거든요. (윗세대들이) 대학 다닐 때는 시간이 아주 많았나 봅니다. (요즘 20대 생각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공부하는 애들 별로 없습니다."

강한 불신이 드러나는 이런 반응을 보면서 최근 출간된 <88만 원 세대>(레디앙 펴냄)를 떠올렸다. 이 책의 저자 우석훈, 박권일이 세대 문제를 목소리 높여 거론하게 된 배경에 바로 이런 골 깊은 세대 간 불신이 놓여 있었으리라. 공교롭게도 두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협력해야 함에도 경쟁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두 세대, 즉 '386세대'와 '88만 원 세대'에 각각 속한다.
▲ <88만 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프레시안

'88만 원 세대'…개미 지옥에 미끄러진 개미들


'88만 원 세대'는 지금의 20대를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들어가서 1997년 외환 위기와 함께 20대가 됐던 올해 서른 언저리가 되는 이들부터 그 밑 세대가 포함된다. 세대 이름에 붙은 '88만 원'은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 원에 전체 임금과 20대 임금 비율 74%를 곱해서 얻은 값이다.

'유신세대'와 386세대는 자유, 저항, 낭만의 젊은 시절을 보낸 뒤에도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때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됐던 한 경제학자처럼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단 5% 정도만이 한국전력, 삼성전자와 같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평생 88만 원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 20대의 선택지는 뻔하다. 같은 20대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것. 그런 '게임의 법칙'에 잘 적응한 이는 선택 받은 5%가 돼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95%는 개미지옥에 미끄러진 개미와 같은 신세다. 설사 한 순간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었다 한들, 잡아먹히는 순서가 뒤로 밀릴 뿐이다.

지금 10대의 운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10대와 그보다 어린 이들은 어릴 때부터 더 잘 작동하는 '경제 기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체계적으로 교육 받은 최초의 세대이다. 이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청소년 판을 보면서 자랐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한 경쟁에 노출되며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는 훈련을 받았다.



미래를 향한 창 닫은 386세대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기성세대는 뭘 한 건가? <88만 원 세대>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세대' 문제의 절반 정도가 지금의 386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생겨난 일"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의 68세대와 달리 386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386세대가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는 원정 출산이 나타났고, 그 아이가 자랐을 때 조기 교육 붐이 일어났다.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며 아이의 혀를 수술함으로써 미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엽기 사건도 이른바 386세대가 부모가 됐을 때 발생한 것이다. (…) 386세대는 자신의 경험과 상반된 교육을 매개로 한 무한 경쟁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 게다가 이 세대는 1997년 외환 위기 이전에 이미 사회 진출을 상당 부분 완료한 연공서열의 마지막 세대이다. 많은 경제 조직에서 이들이 문을 걸어 잠그면 다음 세대의 신규 진출이 매우 어려워진다. (…) 지금의 20대와 386세대는 경제적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글머리에서 살펴본 강한 불신이 나타나는 반응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미 이런 경쟁 관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386세대는 지금의 20대를 경멸하고, 지금의 20대는 386세대를 혐오하거나 질시한다." 이 상황이 심화할수록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 "기성세대의 은퇴 이후를 부양해야할 세대가 지나치게 가난해질 때" 바로 파국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20대, 무엇을 할 것인가?

자, 방법은 없는가? <88만 원 세대>는 유신세대, 386세대가 '88만 원 세대'의 문제를 "내 문제"로 떠안을 것을 제안한다. 일단 세대 간 합의가 이뤄지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나서서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동네 가게를 지키려는 노력에 세금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대가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나름의 능력을 활용해 창업하고 또래 세대를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신 '바리스타'가 돼 동네에서 카페를 창업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20대를 골프장 캐디로 내모는 대신 지역에 기반을 둔 더 생태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 책에 언급된 매력적인 제안 하나를 살펴보자. 농업 공무원과 같은 제도를 신설해 20대로 하여금 유기 농업에 종사하도록 정부가 보조를 한다면 어떨까? 생산된 농산물은 학교 급식, 군대 급식 등에 쓰이고, 20대의 20만 명 정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활력이 떨어진 지방에 '젊은 피'까지 수혈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유신세대, 386세대는 이런 일을 하고자 나설 가능성이 아주 적다. 역사는 이런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대중이 어떤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바로 '파시즘'의 등장이다. 얼마 안 가서 "사회적 약자에게 가차 없이 경제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구조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제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1968년 프랑스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야 한다. <88만 원 세대>는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88만 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 점수가 아니다."

때로는 공부보다 행동이 필요한 법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

우석훈, 박권일은 <88만 원 세대>를 첫 책으로 한국 사회의 경제 대안을 찾는 책을 연속해서 출간할 예정이다. 거의 동시에 출간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개마고원)는 두 번째 책이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서 두 사람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조만간 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두 기업을 필두로 한 한국 재벌이 신경 써야 할 위기는 일본과 중국의 '협공'이 아니라 바로 전근대적인 기업 조직이라는 것. 특히 이 책은 '노동조합이 없는 것'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삼성전자가 앞으로 전개될 위기에 대응하는 데 더 취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미 우석훈은 <프레시안>을 통해 그런 아이디어의 단초를 내놓은 적이 있다(☞관련 기사 :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위기는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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