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가 일하던 공장은 종업원 수가 사장을 포함해 모두 11명인 영세사업체였다. 이들이 하던 일은 색료에 시너를 섞어 플라스틱 화장품 케이스에 칠하는 것이었다. 칠 작업 후엔 뜨거운 가열기에 대고 코팅 작업도 했다. 인화성 물질과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용기가 공장에 가득했으나, 회사는 화재보험에 가입하기는커녕 비상구도 만들어놓지 않았다.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일은 밤 10시까지 이어졌고 할머니 노동자는 일요일에도 쉬지 못했다. 이렇게 일해서 받은 돈은 신참 직원이 일당 1만2천 원. 5년차조차 잔업을 매일 해도 월급은 1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16시간 넘게 일해도 90만 원이 고작"
유족은 "힘든 일임에도 월급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50만 원 미만이었으며, 잔업을 포함해 하루 16시간 일하고 주말 잔업까지 해도 80만~90만 원이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공장장이 할머니에게 소화기를 들려주며 불을 끄라고 해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 노동시장의 맨 밑바닥에서 일하던 '할머니 노동자'의 참담한 죽음은 한국 사회가 가진 노동문제의 '본질'을 폭로한다. 사회 최하층의 노동자가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인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한 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루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제50조). 연장근로도 노동자와의 합의 하에 한 주간에 12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제53조 1항).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연장할 수 있다(제53조 3항).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한 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제55조).
철저히 무시된 근로기준법
노동자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한 주간에 52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은 불법이다. 그런데 의왕시 화재 참사로 희생된 할머니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한 주간에 80~90시간을 넘었고, 이들에게 일요일은 물론 한 주일에 1회 이상의 휴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또 근로기준법을 보면,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고, 계속해서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제60조). 하지만, 화마에 쓰러져간 할머니 노동자들에게 1년에 15일의 유급휴가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상시 10명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근로시간 및 휴일휴가, △임금의 결정·계산·지급, △가족수당의 계산·지급, △안전과 보건에 관한 사항, △업무상과 업무 외의 재해부조(災害扶助)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한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라고 근로기준법 제93조는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가 할머니 노동자 8명이 죽고 다친 원진산업의 취업규칙을 제대로 받아놓았을지 의문스럽다.
최저임금법에 따른 시간당 법정최저임금은 2006년 3100원에서 380원 인상(12.3%)되어 2007년 3480원이다. 8시간 기준으로 일당을 따졌을 때 2만7840원이다. 게다가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하여는 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제56조). 하루 8시간을 넘긴 이후의 시급은 5220원이다.
희생된 할머니 노동자처럼 하루 12~15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한다면 법적으로는 일급이 최소 4만8720원을 넘어야 하고, 월급은 100만 원을 훨씬 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월급은 많아야 80~90만 원이 고작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법률은 왜 안 지키나
돌아가신 분들을 두고 근로기준법 타령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그마저 정리해보려는 이유는 평소 우리 사회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 관련법을 지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 법률이 정해놓은 기본적인 산업안전 시설과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비단 노동 관련법이 아니더라도 노동부 소관인 산업안전보건법에서부터 행정자치부 소관인 소방 및 위험물 관련법에 이르기까지 이번 의왕시의 화재 참변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우리 사회는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작은 정부'니 '규제 완화'니 하는 이런 저런 이유로 법률이 정한 책무를 태만히 해온 결과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다.
1970년 스물 두 살의 전태일이 자기 몸을 불태움으로써 '근로기준법 준수'를 사회적 문제로 끌어올렸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나가건만 전태일과 동년배였을 6~70대 할머니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최저 수준의 임금·근로조건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비상구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물에서 밤낮으로 일하다 화마에 참사를 당했다.
1993년 김영삼 정권 출현 이후 민주정부가 햇수로 14년을 지나고 있지만, 민주정부의 집권자들은 전태일이 '열사'라는 사실만 기억할 뿐, 전태일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던져야 했는지는 기억하지 않거나 애써 무시해왔다.
전태일 정신은 어디에?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부르짖으며 스스로를 불살랐던 전태일을 '열사'로만 기억하는 박제화된 역사인식은 '전태일 정신'을 실천한다는 노동조합운동이나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어디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근로기준법에 훨씬 밑도는 조건에서 일하다 안전시설 미비와 관련기관의 감독 소홀로 어이 없이 죽어간 할머니 노동자들의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성명서 하나 내지 않았다. 노동자의 법 준수를 일관되게 강조해온 경총이나 전경련 같은 재계단체들의 위선은 거론할 가치도 없다.
지금까지처럼 정부의 무책임, 노동조합운동의 무관심, 재계의 위선, 우리 사회의 집단적 무지가 계속 된다면 제2, 제3 '할머니 전태일'의 죽음도 계속될 것이다. 노동시장 맨 밑바닥에 자리한 취약노동자들의 보호방안 마련을 위해 노사정 3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참고로 할머니 노동자들이 화마에 쓰러져간 8월 9일은 꼭 37년 전 전태일이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라고 결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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