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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도 '머리'도 없는 한국 정치,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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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도 '머리'도 없는 한국 정치, 아직도 멀었다"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22> 독일의 '기후 정책' 논란

지난주에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세계화 시대 새로운 사회 불평등의 핵심 고리로 존재하는 기후 변화 문제를 자신의 깊은 성찰을 토대로 분석한 글을 소개했다(☞관련 기사 : "한물 간 '대운하' 타령이나 하니 그 모양이지"). 이 글에서 벡은 전통 좌파와 현재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환경 정책 담당자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
  
  벡은 전통적인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이민 문제 등 세계화로 인해 부상하는 새로운 영역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접근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독일의 주류 사회민주주의자가 기후 변화 문제에 있어서는 구태의연한 접근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 문제 어디서부터 풀 것인가?
  
  기후 변화 문제와 같은 환경 영역에서 사실 사민당은 정책적 독창성이나 급진성의 면에서 녹색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흑적 대연정 하에서 환경부를 이끄는 사민당의 환경부 장관 가브리엘(Gabriel)도 지난 적녹 연정에서 정초되었던 녹색당의 환경정책을 대연정의 지붕 아래에서 계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녹색당의 주장은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생태주의적 시각이다. 말하자면, 현재 붉은색의 정치껍질 안에 녹색의 알맹이가 담겨 있는 셈이다.
  
  벡의 비판을 받은 가브리엘은 환경수석 마티아스 마흐닉과 함께 일주일 후에 <차이트(Zeit)>에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며, 벡을 역비판했다. (아쉽게도 이 기고문의 원문은 <차이트> 측에서 온라인 기사로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단념 대신 진보를(Fortschritt statt Verzicht)'이라는 글의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유토피아를) 단념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앞서 벡은 "유토피아에 대한 단념은 권력에의 단념"이라며 가브리엘을 비판하였다.)
  
  이들은 일단 기후 변화 문제가 야기하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심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벡의 인식을 긍정하고 들어간다. "기후 변화 문제의 주요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제가 정의에 부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그러기에 우리는 국제협약 같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벡의 주장이 대안이 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급속한 성장 추세", "인구 증가와 도시화의 지속", "세계 지역 간 혹은 개발도상국 내에서의 이주와 이동의 증대", "에너지 수요의 폭증" 등 불가역의 현실적 경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향 앞에서 기후/평등의 문제를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분배의 문제틀(Verteilungsproblematik)' 안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다." 평등한 비용 지불을 논하기 이전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의 발생 소지 자체를 제거 내지 완화시켜야 하며, 따라서 기후/평등에 대한 인식은 "경제 성장과 온실가스 방출의 연계를 끊어낼 전략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벡이 자신들을 "낡은 독일식의 기술 진보 이념"의 추종자라고 비판했지만, 자신들이 보기에 벡이 붙들고 있는 분배를 가장 최우선에 두는 사고야 말로 "낡은 진보 이념"이다. 기후 변화 문제를 평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정치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환경과 경제는 더 이상 상호 대립적이 아니다. 관건은 "경제학적인 주제들, 이를테면 혁신이나 경쟁 등에 대하여 생태학적인 접근방식을 찾는 것"이요, 거꾸로 "생태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경제학적인 대답을 찾는 것"이다.
  
  예컨대, 세계은행의 수석경제학자인 니콜라스 스턴(Nicholas Stern)이 2006년에 발표한 이른바 '스턴 보고서'에 따르면, "적극적인 기후보호가 기후정책에 대한 무관심보다 경제학적으로 더 유용하다." 이러한 시각을 기반으로 경제정책의 "관점전환(Perspektivwechsel)"이 필요하며, "행위자들의 관점의 전환은 새로운 정치를 강제한다."
  
  가브리엘 등이 제시하는 대안은 한 마디로 "기술 진보(technologischer Fortschritt)"다. 친환경 기술의 혁명적 발전이 아니고서 현재 객관적으로 진행되는 현실의 추세 속에서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을 획기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오로지 "핵심 산업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혁명적인 기술 도약(Technologiesprung)을 통해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기후 마찰(Klima-Crash)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다."
  
  독일에서 본 한국 정치, 두 단계 도약해야
  
  벡이나 가브리엘 모두 기후문제를 매우 심각한 국내 및 국제정치상의 핵심의제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진지한 처방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동일한 문제의식의 지반 위에 서 있다. 양측 모두 기후 변화 문제를 매개로 기존 정치의 '사고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전자가 전통적인 좌파의 평등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이 세계화 시대 기후문제가 야기하는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면, 후자는 벡과 같은 급진적인 신좌파가 기후문제를 분배문제의 영역에서만 사고하는 인식지평을 확대시켜 생산과 성장의 영역에서부터 이를 실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전자를 '창의적 좌파'로 후자를 '급진적 중도'로 명명하고 싶다. 창의적 좌파에서 급진적 중도는 평등의 관점에서 성에 차지 않지만, 급진적 중도는 창의적 좌파의 창의성의 한계가 안타깝다. 사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현실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입장에서 우선순위의 차이가 생길지 모르지만, 분명 대안 정책의 모색에 있어서 양자의 입장은 배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당장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들이 최소한 기후 변화 문제와 같은 환경문제를 사회경제 정책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도전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예측 불가능한 재해, 재난의 발생을 겪고 있는 우리 역시 이미 기후 변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세대에 새롭게 대두된 이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대에게 그것은 태생부터 '달고 살아야 할 문제'가 되었다. 나아가 이상기후의 유발과 그로 인한 피해 모두 이미 사회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를 정치화하는 수준은 턱없이 미진해 보인다. 한반도를 생태유토피아로 건설해야 한다는 창의적 좌파의 인식도, 엄청난 생태파괴를 동반해 온 고속성장의 패러다임을 환경 친화적으로 바꾸기 위하여 혁명적 기술의 개발과 도입에 매진해야 한다는 급진적 중도의 인식도 그저 막연하고 주변적 과제일 뿐이다.
  
  단적으로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그 어느 후보로부터도 기후정책에 대한 선진적 인식과 그에 대한 강조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당장 이런 수준의 내용적 선진성까지 담아내지 못해도 좋다. 제발 후보의 검증론의 저 오래된 굴레에서 헤어 나와, 그 무엇이든 간에 정책을 둘러싼 논의가 하루속히 선거전의 핵심에 자리하게 되기를 바란다.
  
  미래의 강국과 선진국은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한 기후문제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키워내고, 정책 개발과 적용에 있어서 앞서가며, 이에 대한 높은 수준의 투자를 해 가는 국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은 두 차원 더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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