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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대운하' 타령이나 하니 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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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물 간 '대운하' 타령이나 하니 그 모양이지"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21> 독일의 '기후 정책' 논란

세계화(globalization)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사실 숙명적 결합일 필요는 없다. 전자가 인류사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의 결과라면 후자는 이 시점에서 그것이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아쉽게도 우리 시대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자가 주도하고 있으며 대안 세계화를 꿈꾸는 이들은 아직 이념적, 실천적 꽃을 피우고 있지 못하다.

대안 세계화란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세계화, 노동의 시민권이 존중되고 20세기에 인류가 키워온 인도주의적 가치가 손상되지 않고 계승되는 세계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을 심도 있게 고민하는 크고 작은 흐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고, 다양한 논의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지성계를 이끄는 이들 중에는 꾸준히 이러한 시대의 과제 앞에서 사유와 연구를 진척시켜온 석학들이 존재한다. 그 반열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다. 최근 필자는 이민문제와 관련한 벡의 주장을 소개했다(☞ 관련 기사 : "왜 사람은 자본처럼 超國하면 안 되는가?").

지난 달 벡은 독일 주간지 <차이트(Zeit)>에 '기후 정책(Klimapolitik)'을 주제로 장문의 기고를 게재해 주목을 받았다. 벡은 지난 6월 14일 '유토피아가 돌아와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를 <차이트>에 게재했다(☞ 기고 원문 : Eine Utopie muss her!). 여기에는 세계화를 인정하되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자신의 깊은 문제의식이 그의 화려한 문체로 나타나 있다.

신자유주의 무능하게 수용하는 좌파를 어찌할까?

벡의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점점 더 불안정성이 심화하고 있는 세계의 핵심 난제의 답을 찾는 작업이야말로 21세기의 성공적인 정치를 위한 열쇠"이지만, 현실에서 전통적인 좌파나 신자유주의자들 모두 이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좌파는 "개별 국가적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 변동", "세계화된 경제의 연결망", "이민 문제", "종교 간 그리고 세계 차원의 평화 유지" 등 "현재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모든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현재 "좌파의 정치적 역량은 고갈된 상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좌파들이 보여 온 "민족주의 운동이나 종교 운동에 대한 지나친 폄하"와 "역사에 대한 일차원적이고 단선적인 사고에 기초한 마르크스 사상의 취약성"의 문제들을 "자신들의 인식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켜내며", 세계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한계는 "과거 200년간 자본주의와 산업주의가 전쟁과 혁명의 손을 잡고 지그재그로 발전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 있다. "왜 그러한 일들이 21세기에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는 그들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뿐"이다.

벡은 특히 신자유주의를 무능하게 수용하고 있는 독일의 구좌파, 즉 사회민주당(SPD)을 비판한다. 사민당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현재 대연정하에서 사민당이 추구하는 기후 정책이다.

애당초 기후 정책을 바라보는 벡의 인식은 매우 깊다. 산업화의 후유증인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세계는 바야흐로 "모든 국민들, 문화들, 인종들, 종교들 그리고 지역들이 역사상 최초로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미래를 배태하고 있는 현재'를 공동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 결과 향후 "생존을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들과 관계 맺어져야 하며" 따라서 "기후 정책(Klimapolitik)은 사회동포정책(Kosmopolitik)"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특히 기후 정책이 야기하는 사회 내 그리고 국가간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다. 이상기후의 원인자는 부유한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이지만 그 피해자는 가난한 나라의 (혹은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야말로 기후 문제의 본질이다. 현재 기후 문제로부터 발생하는 다수의 희생자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싸구려 지붕 아래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탈출할 가능성도 없는 자들"이기에, "기후 재난은 민주적이지 않다."

그에게 있어 기후 정책의 관건은 "단순히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의 과학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산화탄소의 방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경제성장을 국가들과 국민들 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있다. 다시 말해 '부유한 나라들이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줄이되, 그것이 가난한 나라들의 성장의 여지를 확대하도록'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최근 영국에서는 대기오염에 해로운 이산화탄소(CO₂)의 방출량을 규제하고 초과 방출을 하는 자에게 비용을 물게 만드는 정책이 모색되고 있다. 벡은 이런 정책이 "서민과 중산층의 사회적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화적인 차이와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 가운데에서 어떻게 기후 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평하게 나눌 것인가"의 주제가 기후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기후 정책, 과학기술만능주의는 안 돼!
▲ 환경 콘서트 '라이브 어스' 뉴욕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포드의 자이언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운데 환경 메시지가 담긴 돼지 풍선이 공연장 위로 떠올라 있다. ⓒ뉴시스

이러한 벡에게 현 독일 정부의 기후 정책은 못마땅하다. 지난 적녹연정 하에서 녹색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친환경적 경제성장론을 더욱 계승·발전시킨 현 정부의 기후 정책은 과학기술을 통한 친환경적인 산업의 육성을 통해 환경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전략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적녹연정 하에서든 대연정 하에서든 현재 독일 정부의 환경 정책에 담긴 '진보적 성격'을 일면 긍정한다. 그것은 산업 활동의 산출 부문에서 수동적인 환경 규제를 해 왔던 전통적인 환경 정책의 한계를 넘어서 그 투입 부문에서부터 아예 친환경성을 절대시하는 점에서 상당히 앞선 전략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근래에 독일 정부는 대안 에너지로서 대형 풍차의 생산과 수출을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모색해 왔다. 그 결과 실제로 대안 에너지 산업에서 독일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 부문을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나고 있으며, 근래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데에도 이 부문의 확대가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벡은 이러한 전략이 놓치고 있는 점에 천착한다. 지그마 가브리엘(Sigma Gabriel) 환경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환경 정책 브레인의 전략은 "생태와 기술의 혁신 공략에 입각한 독일의 '낡은 진보' 논리에 기반을 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격히 줄이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이는 "소비자와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일 뿐이다."

지난 슈뢰더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개혁과 그에 대한 미온적 보완에 머물고 있는 기후 정책은 그것이 혹 최근의 경제 회복에 기여를 했을지언정, 더 근본적으로 "이 시대 대중들의 염려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한계를 지닌다.

벡은 "민중을 세계화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정치에 대해 '개혁'이라는 수사를 갖다 붙이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pervertiert)'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며, "유토피아에 대한 단념은 권력에의 단념(Utopieverzicht bedeutet Machtverzicht)를 의미한다"고 선언한다. 한마디로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지 않는 속물정치를 하려면 좌파의 간판을 내리라는 말이다.

자신의 주장을 이른바 "사회생태적 유토피아(sozialökologische Utopie)" 혹은 "세계시민적 사회민주주의"로 정의하는 벡은 빌리 브란트 류의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적 사고를 이 시대에 맞게 복원하는 일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독일 사민당의 "신자유주의 의제"를 "초국가적, 사회생태적 의제로 대체할 것"을 과감히 주문한다.

다만 문화적, 인종적, 종교적인 다양성 가운데에서 인류 공통의 사해동포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실천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이를 실현할 "세계 수준의 제도도 세계 시민사회를 이끄는 행위자도 여전히 정당성의 결여(Legitimationsdefizit)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이상의 실현은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기후 정책 둘러싼 논쟁, 한국은 뭐하나?

벡의 비판을 받은 현 정부 환경 정책의 수장 환경부 장관 지그마 가브리엘과 환경수석 마티아스 마흐닉(Matthias Machnig)이 벡을 역비판하고 나섰다. (둘 다 사회민주당 소속 좌파 정치가이다.) 이렇게 해서 잠시나마 '기후 정책'을 소재로 세계화 시대 대안 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의 장이 독일 진보 지식인 사이에서 오고갔다. 벡의 주장에 대한 이들의 반론과 양측의 논쟁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 우리는 너무 일찍 대안 세계화의 길을 포기해 버린 우리네 주류 정치권과 달리, 유럽의 진보 정치인이 여전히 대안 정치를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경부운하 식의 20~30년 전의 경제 노선이 재탕 가능한지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인 우리의 정치 현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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