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하지 않고도 원만하게 서로 합의하고 신뢰하는 관계 속에 노사관계가 꾸려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능하다면 무한대립이 반복되는 경우보다 분명히 나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정치적일 필요도 없고, 머리띠 두르고 삭발하고 붉은 조끼 입고 전투적인 대오를 형성하며 씩씩거릴 필요도 없는 사회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엄청난 사회경제적인 변동을 결정할 때 노동조합을 따돌리고 그에 대해 항의하면 사용자 단체가 업무방해혐의로 고소를 할 뿐 아니라 관ㆍ언이 똘똘 뭉쳐 '신물 나는 정치파업'이라고 몰아세우며 아예 입을 막아 버리는 사회도 걱정스럽다. '노동 죽이기'는 결국 '민주주의 죽이기'로 이어질 것이며, 민주주의 없는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 말마따나 한국 사회에서는 "그놈의 헌법"도 문제지만 "그놈의 노동법"도 문제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법은 항상 문제의 속성을 담지하고 있는 존재다. 그것은 자본과 노동 간의 다른 이해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일종의 "계급전쟁의 정전협약"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다만, 휴전선이 어느 지점에 그어져 있는지가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한국의 노동법이 노동을 남쪽으로 두고 낙동강쯤에 휴전선을 긋고 있다면 독일의 노동법은 그래도 38도 선쯤에 선을 그은 듯이 보인다. 최근 두 나라의 이러한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독일에서 들려온 노동의 승전보, "연대파업 적법하다"
지난 6월 19일. 한국에서 노동조합이 정치파업을 한다고 관ㆍ언ㆍ정ㆍ재계 모두로부터 전방위 입체공격을 당하며 흠씬 두들겨 맞는 사이, 독일에서는 연방노동법원이 한국에서 노조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이 까무러칠 결정을 내렸다. 그 내용은 이른바 '동조파업(Sympathiestreik)' 혹은 '연대파업(Solidaritätsstreik)'도 합법적인 파업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언론에서 이런 뉴스는 찾아볼 수 없다.
(독일에서 판결은 대체로 해당 법원의 홈페이지에 판결문을 예시한다. 이 판결문을 보려면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홈페이지에 가서 판결번호 1AZR 396/06를 찾으면 볼 수 있다. ☞독일연방노동법원 보도자료)
지원파업, 동조파업, 연대파업이란 말 그대로 일반적인 노사분규와 달리 어느 기업의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위한 단체협상과정에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업장과 업종의 단체교섭과정에서 이를 지원하고자 파업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지원파업의 적법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법원이 공시한 보도자료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다른 단체협상 영역에서 시작된 노사분규를 지원할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조합의 파업은 기본법 제9조 제3항이 규정하는바 노동조합에 보장된 활동의 자유에 속한다."
원래 연방노동법원은 1985년 판결에서 동조파업과 연대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20여 년 전의 결정을 뒤집어엎는 내용을 담고 노조의 두 손을 번쩍 치켜 준 것이었다. 이는 지난 4월에 "노조의 합의 없이 사용자가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파업의 사유가 된다"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관련 기사 : "헤어질 때는 합의한 후에 떠나라") 올 들어 두 번째로 노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 굵직한 판결이었다.
"기업 분사, 분화가 대세인 시대에 연대파업 합법화는 당연"
애초에 이번 재판의 빌미가 되었던 사건은 한 인쇄사가 서비스부문 노동조합 베르디(Ver.di)를 상대로 자신의 사업장에서 연대파업을 감행한 것에 대해 경제적 손실의 배상을 요구하며 고소를 한 것이었다. 이 인쇄업체는 자신이 속한 그룹(콘체른)에 같은 계열사로 속해 있는 출판사의 수주를 받아 인쇄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베르디는 이 출판사가 발행하는 일간신문 편집부원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파업을 감행하였다. 더불어 노동조합은 이 파업을 지원하고자 그 인쇄소 직원들의 동조파업을 조직했다. 그 결과 약 20여 명의 직원이 하루치 야간근무를 거부하였고, 이는 신문 발행에 일정한 차질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먼저 심리한 니더작센 주의 주노동법원은 지난해 베르디 측을 상대로 2500유로의 보상금을 인쇄업체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었다. 이는 지금까지 연방노동법원의 판례에 근거한 결정이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승복하지 않았으며, 이 그룹 내 계열사들이 밀접한 경제적인 연계망을 가진 상황에서 자신은 같은 상대를 향하여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연방노동법원에 해명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연방노동법원은 인쇄업체 사용자의 배상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법원은 이 파업은 "주파업의 지원을 위해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적법하다(rechtsmäßig)"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노동조합은 "기업의 분사와 분화가 점점 빈발하는 이 시대를 맞이하여 1980년대 연대파업에 대한 연방노동법원의 결정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정황에 맞게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제 독일에서는 동조파업의 목표와 지향이 주파업의 그것과 일치하는 한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게 되었고 이는 노조에 상당한 정도의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깨어 저항하는 노동'은 민주화의 산물
지난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도 수많은 동조파업과 연대파업들이 출현했었다. 한때 그것은 '제3자 개입금지'라는 악성조항을 기초로 한 형사상의 규제를 받으며 탄압되었다. 최근에는 여전히 협소하게 정의된 단체교섭의 규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일체의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ㆍ가압류'라는 민사상의 규정을 통해 노조에 대해서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같은 계열사라도 다른 사업장의 노사분규를 지원한다고 어느 사업장의 노조가 파업을 벌인다면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그 노조 위원장은 금세 민형사상의 소송에 휘말리며 보수언론으로부터 심한 조소와 비난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세계화의 시끄러움이 지속하는 한 당분간 우리 사회에서 노사분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깨어 저항하는 노동'은 우리의 민주화의 산물이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당하다고 느끼는 세계화의 물결 앞에 어떤 식으로든 순응의 길을 모색할 때까지 그러한 사회갈등은 빈발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산별노조로의 전환 등 새로운 노사관계의 조건을 막 구축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영역의 자유로운 공간을 어디까지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확대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언제까지 야박한 손해배상ㆍ가압류와 자극적인 노조 때리기 언술에 의지해 사태를 풀어가려고 할 것인가?
이번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판결이 담은 합리성을 우리의 노사관계 당사자들도 잘 헤아렸으면 한다. 관계를 진정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적절하게 권리를 보장하면 산업평화는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그 바닥의 진리를 이미 '선수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상황을 제대로 짚고, 희생을 최소화하며 능동적으로 질서를 재정립하는 능력을 갖춘 정치가가 부족한 상황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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