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해보자. 골방에 갇혀 홀로 글을 쓸 적에는 아무래도 지적 현학을 부리게 되어 있지 않을까. 가상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지만, 어디 그게 쉽던가. 아무래도 일방적이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생각을 쏟아 붓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허나, 강의를 하게 된다면 달라지리라. 침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눈앞의 청중이 졸고 있거나 떠들면 당황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노라면, 기지를 발휘하여 어떻게 하든 알아먹게 하려 애쓴다. 아무래도 글을 쓸 때보다는 쉬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이런 전통은 별로 없지만, 서구에는 많아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제목대로 강의록을 바탕으로 제자들이 펴낸 책이다. 몇 년 전에는 푸코의 강의록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물론 앞의 예들이 대중을 상대로 강의한 것이 아닌지라, 과연 대중화에 성공했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BBC 강좌다. 앤서니 기든스의 <질주하는 세계>나 에드워드 W. 사이드의 <권력과 지성인>이 대표적인 경우다. 라디오 방송 원고를 저본으로 한 책이다 보니, 깊이 있는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은 철학자 이정우가 해 왔다. 대학 강단을 떠난 후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지속적으로 열어 왔는데, 이를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접힘과 펼쳐짐>, <시뮬라크르의 시대 > 등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강의를 들은 학생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들어 있다. 이런 책의 거개가 강의 내용만을 싣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법한 질문과 답변이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독자 친화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말해놓으면,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책의 실체가 오롯해진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세계를 이룬 인물이 대중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 아마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강의이다 보니, 어렵기보다는 쉬울 터이고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준비한 대로 강의가 진행되기보다는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될 터이니 훨씬 생동감이 넘칠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이어서는 그리 큰 미덕이 되지 않는다. 청중의 뜨거운 반응이 필요하다. 들어도 모르겠으면, 무엇인지 확실히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근거가 타당하지 않으면 이를 비판적이고 공격적으로 질문한다. 강의자의 생각과 다르다면 왜 다른지 조목조목 따져 묻는다. 아연 긴장감이 돌 터이고, 이를 기록한 것 자체가 또 다른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다섯 실천적 지식인의 생각의 고갱이만 모았다
다섯 지식인이 말하는 소통과 공존의 해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여럿이 함께>(프레시안북 펴냄)는 내가 찾고 있던 책이다. 신영복, 김종철, 최장집, 박원순, 백낙청 등 스타급 지식인 다섯 명이 주제별로 강의를 하고, 이에 대해 질문과 토론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그러니까 나는, 예상되는 이 책에 대한 평가와는 사뭇 다른 논리로 이 책을 상찬하는 셈이다.
국가대표 축구팀이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것은 호화 선수진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이 보면, 이 책의 저자들에게 관심을 보일 법하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지적 화두를 던지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보기 드문 실천적 지식인들이기 때문이다. 선수들마다 서로 다른 기술과 특기가 있어야 경기는 흥미로워지는 법이다. 다른 사람이 보자면, 이 저자들이 보이고 있는 지적 관심과 실천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신영복은 동양고전에서 길어 올린 관계론으로 근대적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노력해 왔다. 김종철은 생태적 관점에서 기존의 세계관에 도전하고 있다.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논쟁점을 던졌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박원순은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늘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낙청은 더 이상 문학평론가가 아니다. 분단체제를 넘어서 통일시대를 여는 지적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점을 잘 알면서도 이를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 아는 사실이라서 그렇다. 신영복은 이미 <강의>에서 제 할 말을 다했다. 김종철은 <녹색평론>을 펴내며 의제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왔다.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기염을 토했다. 백낙청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으로 독특한 통일론을 선보였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지식인이라 해도 최근의 지적 고민을 담은 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강연 모음은 그런 점에서 자신들의 저서를 스스로 요약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요약이 가치 있는 것은, 왜곡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스스로 했으니, 고갱이만 가려 뽑았을 터다. 더욱이 강연에 맞게 줄이고 고쳤을 터니, 알아먹기 쉬운 것을 목표로 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 점에서 상당히 유익하다. 원저를 다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책만 보더라도 지은이들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시쳇말로 하면 거저먹는 셈이다.
지적 즐거움 주는 팽팽한 긴장
이제야 내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는 대목에 이르렀다. 강연자의 주제발표에 날카로운 비판적 질문을 던지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려면 각 강연자별로 한 권의 책을 내었어야 하리라), 고수들의 일합을 보는 지적 즐거움은 충분히 안겨준다. 나는 그것이 이 책의 백미라 평가하고 있고, 이 같은 경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강의나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는 일이 자주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옆길로 샐 뻔했다. 각설하고, 이런 점에서 이 책의 '눈'은 최장집과 백낙청 편이다. 어쩌면, 두 사람이야말로 우리 지식사회의 태풍의 눈인지 모른다. 한쪽은 저울추가 계급문제에, 다른 한쪽은 그것이 민족문제로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 지적 담론의 진원지일 수밖에!
먼저, 최장집편을 보자. 그는 민주화 '운동'이 민주 '정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를 주제로 강연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민주화 이후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정당과 정당체제가 중요합니다. 현대 민주주의란 간단히 말해 정치적 대표의 체제가 어떠한가를 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권위주의에 대한 거울 이미지로만 민주주의가 발전함으로써, '민주 대 반민주' 혹은 '개혁 대 수구'와 같이 이분법적 대립축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그 주변에서 지난 20년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시민운동의 흥기는 정당의 쇠퇴와 맞물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당 갖고 되겠느냐 하는 생각은 정당을 부패하고 타락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해서 현대 민주주의에서 인민주권의 기본제도라 할 수 있는 정당과 정당체계가 한국의 경우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전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최장집의 '카운터파트'로 나선 이는 조희연. '민주화 세력의 집권으로 망가진 대한민국'이라는 진단에 대해 비판하며 또 다른 현 정부의 위기요인을 말해달라고 주문한다. 이에 대해 최장집은 이렇게 답한다. "현재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을 외부요인을 불러들여 설명하다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런 것을 알리바이론이라고 하는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다른 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고 해야 할 것을 회피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꼭 노무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 있냐는 의문에 대해, "민주주의에서 주권자는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대표에게 위임하는데, 이를 통해 다수표를 얻은 정부는 다수 유권자의 요구를 실현해가야 할 책임을 갖게" 된다며 "지금 정부가 얼마나 다수 지지자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가 있었는지 묻는다고 할 때, 거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백낙청은 시민이 참여하는 '한반도식 통일'의 해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백낙청은 남북 정상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점진적 통일 방안에 일정하게 합의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의 연방제든 중간단계를 거쳐 간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 한반도식 통일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백낙청은 앞의 것이 통일과정의 형식상 특징이라면, 내용상 특징은 시민참여형 통일 혹은 민중주도형 통일의 가능성이라 말한다.
이 강연에서 주목할 점은 북한 핵실험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백낙청의 제언이다.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인 만큼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이 발표에는 토론자로 박경순과 이대훈이 나섰다. 토론자의 입장이 서로 달라 백낙청이 양쪽에서 공격받는 모양새인데, 이를 헤쳐 나가는 백낙청의 중용적 자세가 돋보인다.
박경순은 백낙청이 북한 핵실험의 부정적 영향을 강조했다며, 색다른 주장을 편다. 북한 핵실험은 방어적 자위적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며, 유엔 결의안 1718호를 엄격히 제안해서 지지하자는 주장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북핵 실험으로 북미 대결에서 미국의 입지가 약화되고 북한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미국의 부분적 또는 전면적 후퇴와 양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것이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이대훈은 핵무기 논란에서 대량살상 무기의 윤리적 문제를 제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주장에도 기존 핵보유 국가의 범죄적 성격을 인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진보진영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순의 말에 대해 백낙청은 유보적이라고 말했다. 이대훈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역할분담론을 내세웠다. 정부 당국자가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곤란한 점을 이해하자는 입장이다.
자본의 힘에 휩쓸리지 않는 출판 보여주길
지적 즐거움은 팽팽한 긴장에서 비롯되며, 그 긴장은 논쟁과 토론을 통해 가능하다. <여럿이 함께>는 그런 점에서 소통의 해법을 잘 찾아낸 책이다. 입말이 우세종으로 등극할 시대에 여러모로 참조될 만하다는 뜻이다. 서문에도 나오듯 이 책은 <프레시안>이 출판 사업도 하기로 결정하고 내는 첫 책이라고 한다.
"저널리즘으로 담기 어려운 좀 더 근본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과제, 그리고 문화 분야 등을 중심으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출판동네에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 적지 않게 우려하는 바도 있다. 그것을 일일이 여기에 밝힐 필요는 없을 터. 그저 이 책에 나오는 신영복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끝까지 지켜나가길 당부한다. 그럴 적에야 자본의 힘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뜻을 펼 수 있으리라 믿어서다.
"목표는 길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이끌고 나아가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특히 언론은 이런 생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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