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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일벌레 타령만 하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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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언제까지 일벌레 타령만 하고 있을 텐가"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10> 은행 영업시간 단축 논란에 부쳐

얼마전 금융노조가 영업시간 단축을 단체교섭의 의제로 삼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누리꾼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이기적이다'는 주장을 펴며 심한 반발을 했다는 소식을 멀리서 접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금융권 전체에 대한 질투, 영업시간 단축이 자신의 금융거래에 초래할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한 불평,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공론장에서 미운털이 박힌 노동조합에 대한 거부감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즉자적인 유사 집단행동이었다.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언론조차 누리꾼의 발언 일부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인용하며 은행영업시간 단축의 부당함과 노동조합 요구의 지나침을 비판했다.
  
  "노동시간 단축 요구, 지극히 정당하다"
  
  독일에 처음 와서 생활인으로서 가장 어색했던 것 중 하나는 상점마다 영업시간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짧은 것이었다. 심지어 많은 상점들은 주인 편의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영업시간이 가지각색이기까지 했다. 어떤 정육점은 오후에만 문을 열고 어떤 꽃집은 오전에만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영업시간이 많이 길어져서 토요일 저녁까지 수퍼마켓이 문을 열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장을 보려면 오전에 서둘러야만 했다. 오후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은 이렇게 짧게 일해서 언제 돈 버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일별로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대체로 월요일과 수요일은 오후에 2~3시까지 짧게 영업을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4~5시까지 조금 더 길게 문을 열며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게 보통이다. 은행이나 관공서는 토요일에 모두 문을 닫는 게 상식이다. 12시~2시의 점심시간에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그는 은행도 많다. 심지어 같은 은행이어도 도시마다 지점별로 영업시간이 다른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은행에 갈 때마다 언제나 요일별로 은행의 개점시간을 사전에 확인하고 가야지 안 그랬다가는 헛수고하기 십상이다.
  
  영업시간이 짧은데다가, 슈퍼마켓이든 꽃가게든 단 1분만 늦어도 "우린 영업시간 끝났다"며 절대로 물건을 팔지 않는 지독한 모습까지 보인다. 아랍이나 터키계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구멍가게(키오스크)들 중에 종종 예외적으로 안 그러는 곳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퇴근을 의미하는 단어인 '파이어아벤트(Feierabend)'를 속된 말로 '칼 같이' 지킨다. 이는 상거래상의 기본문화이자 해당 업소 종사자들이 누릴 철통같은 권리로 간주된다.
  
  서비스나 재화의 구매자의 입장에서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짧은 영업시간은 사실 성가시고 불편함이 많다. 하지만 그 동안 수 년간 독일에서 살면서 그러한 태도에 대해 소비자, 시민이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며 "영업시간을 늘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업주들이 로비를 해서 영업시간 확대를 꾀할 때마다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대를 했고, 노조의 지지를 받는 사회민주당(SPD) 같은 정당이 국회에서 이를 저지했다. 그 명목은 노동자에 대한 보호였다. 노동자가 낮에 8시간 일한 것만으로 정상적인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짧은 영업시간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필자도 이제는 이를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으들이고 있다. 하루가 밤과 낮으로 나뉜 것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라는 말이며, 서비스업 종사 노동자도 점심시간은 편하고 맛난 음식을 적절한 시간 동안 먹으면서 살아야 하고, 해지면 일을 놓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든지 자신의 여가생활을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고 즐겨야 한다는 보통의 생각을 사회적으로 실현해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일벌레가 미덕인 사회, 더 이상은 안 된다"
  
  서유럽이 대체로 35~36시간 내외의 짧은 노동시간을 유지하는 것은 그것이 노존조합 같은 이익단체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짧은 노동시간에도 높은 생산성과 사회적 분배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 나라들은 사회와 인간을 둘러싼 '시간의 전체성'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있다.
  
  그들은 노동시간의 양을 물론 소홀히 하지 않지만 그 측면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노동하는 동안의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직화하느냐, 즉 시간의 질적인 측면에 대해 고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간의 자율적인 운영이 결국 업무의 효율을 증진시킨다는 관념이 사회 전반적으로 공유되어 있다.
  
  독일 노사관계에서는 이른바 '시간주권(Zeitsouveränität)'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연장이 언제나 노동시장 규제의 중요한 의제인 것이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화된 모습일진대, 시간주권 개념은 더 질적인 차원에서 노동시간의 의미를 조망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과정에서 노동자가 얼마나 소외되지 않느냐, 즉 직무에 대한 자율적인 운영이 어느 정도로 보장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생산성과 민주주의의 상호상승적인 관계를 미시적 수준에서 옹호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누군가 추가로 시간을 들이고 노동을 하는 것을 회사에서건 학교에서건 미덕으로 생각한다.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고용계약서에 몇 시간 일하고 얼마 받겠다고 사인을 하고도 대부분의 사람은 정해진 퇴근시간에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고용계약에 언급된 고용조건을 파기한다. 자발적으로 혹은 문화적인 압력에 의해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하는 사람을 근면한 사람으로 떠받들듯이 남들보다 더 공부에 시간을 들이는 학생도 무한한 칭찬의 대상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대체로 시간의 양에만 주로 집착하며 살아 왔다. 시간주권이란 애당초 그리고 지금까지도 낯선 개념이다. 장시간 노동과 추가노동은 미덕이요, 일벌레와 워크홀릭들은 부러움과 칭송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꾸려지는 시간들의 전체성을 살피며 정말로 그렇게 노동시간을 구성하는 것이 생산의 질을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지,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것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지에 대해 아직도 성찰이 부족하다.
  독일에서는 정해진 시간 이외에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결과로 간주한다. 그런 사람은 시간 운영에 무능하거나 아니면 일과 쉼의 변증법을 모르는 멍청한 사람이다. 일벌레는 연민의 대상일 뿐 절대 칭송의 대상이 아니다. 쉼이야말로 다음 노동을 위한 최선의 에너지 충전이며 쉼과 일함 간의 적절한 조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미덕이다.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은 길게 보았을 때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간주권이 존중되고 노동시간 엄수가 상식화되어 있으며 일과 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보편화된 독일 사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필자는 종종 한국이 혹시 '비효율적으로 구성된 과잉노동사회'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가 아무리 장시간 노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고 민주적으로 구성되지도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시간의 질적인 측면을 중시하며 사회적 노동시간을 알차게 구성하는 나라들을 따라잡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누리꾼의 즉자적 불평 그대로 옮긴 한심한 언론"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육성하며 살인적인 노동투입을 통해 노동자 개인의 인권을 말살하면서까지 산업화에 매진했던 시대는 우리에게 이미 먼 과거다. 이제는 노동시간이 짧으면서도 알차고 그러면서도 개인들의 여가가 충분이 뒷받침되어 노동과 쉼의 순환구조가 원활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한마디로 "얼마나 더" 혹은 "덜"을 넘어서서 "얼마나 잘"이 되어야 하며, 잘 할 수 있다면 굳이 더 할 필요도 없는 법이다.
  
  나아가 그러한 개혁은 단순히 법적인 수단을 통해 국가가 강제로 만들어내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할 문제가 아니다. 노사관계가 합리화되고 안정화되어 생산의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이를 형성해 나가야 하며, 다른 사회적 주체들도 그러한 방향을 인지하고 후원해야 한다.
  
  이번에 금융노조의 노동시간 단축 시도는 아마도 그것을 통해 시간의 질적인 측면을 고양시켜 은행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동시에 조합원들을 보호하겠다는 소박한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고 짐작한다. 다만 그러한 의도를 보다 더 사회적으로 강하게 부각시키고, 금융권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노동시장과 한국 사회 전체의 의제로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테크닉과 적극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과잉노동사회에서 조직화된 특정부문의 종사자들만 노동조합의 힘의 논리에 힘입어 노동시간 단축을 누리는 것에 질투를 하거나, 자신의 은행이용 시간이 줄어듦에 따른 불편함에 대해 불평을 하는 누리꾼의 반응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러한 문제의식의 표출이 내용적으로 즉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보다 나은 사회적 대안을 염려하는 대자적인 움직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이러한 현상에 접근하는 언론의 관점과 보도 행태이다. 그들은 금융노조의 행동에 대한 대중들의 즉자적인 불평을 모아 확성기로 나팔을 불며 노동운동을 편협하고 이기적이라고 낙인 찍는다. 노동운동을 고립시키는 또 다른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에는 노사관계와 사회발전에 대한 아무런 개혁적인 비전도 찾을 수 없으며, 크고 작은 노사현안들에 대해 질적으로 높은 논평을 통해 대중들의 의식이 합리적으로 발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기본사명조차 망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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