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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참 잘 생긴 보약이구나

[안병권의 고향보따리]<23> 서천 아리랜드 유기농 미니 단호박

음식을 먹으면서 오감을 만족시키게 된다면 그 음식은 이른바 '양생음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생음식(養生飮食)은 '건강 유지와 증진을 위한 음식'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또 중국에서는 섭생(攝生), 섭양(攝養), 보양(補養)등으로 부른다. 중국의 서민들은 공자의 가르침인 인(仁)과 의(義)보다는 편안하게 오랫동안 사는 불로장생만이 더 없는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 실질적인 방법으로 노자는 섭생, 장자는 양생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잘사는 삶의 요체는 잘 먹는 것, 건강한 것에 기반하는 것이니 우리가 매일매일 대하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 1주일에 한두번 우리집 아침밥상에 올라오는 단호박

우리 집은 고구마, 감자, 단호박, 가지, 당근…. 제철에 아주 풍성하게 나오는 뿌리채소와 열매채소를 자주 애용한다. 복잡한 요리로 만들어 먹기보다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익히거나 구워서 먹는다. 가끔 고기를 구울 때에도 이 친구들은 아주 요긴한 식재료로 등장하여 입맛을 돋군다.

그중에서 먹을때마다 감탄하는 재료는 바로 단호박이다. 엷게 편으로 썰면 써는대로, 두툼하게 자르면 자르는대로 적당히 배어나온 즙액이 표면을 싱싱하게 하고 짙은 녹색으로 시작하여 연두색을 지나 노란색으로, 급기야는 짙은 주황색으로 펼쳐지는 그 색의 향연에 늘 감동받는다. 그로 인해 함께했던 전체 재료들의 분위기까지 업그레이드 된다. 아주 간단한 것들이 훌륭한 성찬(盛饌)으로 탈바꿈을 하고 각 재료들이 갖는 고유한 본성과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섭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단호박은 내게 아주 친근하고 멋스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섭생의 멋쟁이 단호박

단호박의 달디단맛, 혀끝이 먼저알고
단호박의 초록껍질, 세상이 싱그럽고
단호박의 노랑노랑, 눈으로 꿀떡이다

단호박 너로 인해
고운맛을 더하고
색동옷을 입는다

그렇게
품위를 더하는 구나

모든재료 서로서로
모든차이 어깨동무
기꺼이 곁을 주니

어울려서 감흥을 부르고
눈으로 감동을 부른다

색으로
맛으로
뜻으로

그 자체로
풍성한 이야기가 된다


몇 년 전 전국 박과채소축제에 다녀온 기억이 있다. 박과채소(cucurbitaceae vegetables, 科菜蔬)는 1년생 초본식물이며 덩쿨성 식물로 호박, 오이, 참외, 수박, 박, 수세미 등의 채소를 일컫는다.

호박은 남과(南瓜)라 하는데 수박은 서과(西瓜), 참외는 첨과(甛瓜), 수세미는 사과(絲瓜), 오이는 황과(黃瓜)라 부른다. 오이는 언뜻 푸른색을 연상하지만 오이가 익으면 노란색을 띄므로 황과라 뷸렀다. 노각(늙은오이)이 그것이다.

수백종의 박과채소를 만나면서 우리농업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희망을 가졌던 기억이 새롭다. 먹을거리라는게 얼마나 다양한 존재적 가치를 지닌 '생명에너지'인지 실감했다. 또 그것들이 지닌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아무 조건 없는 넉넉함과 향기로 유년시절을 영글게 만들어 주었던 어머님의 품속처럼 생을 충만하게 해주는 '즐거운 현실'이구나 판단했다.
▲ 다양한 호박들

유기농업 일에 20년을 종사했지만 그저 오이, 수박, 참외, 호박 정도의 인식에 머문 채 '수집'과 '분산'에 바쁘기만 했지 이들 이외에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이야기)가 존재하는지 몰랐다.

박과채소 분야만 하더라도 일상에서 익숙한 채소 말고도, 맛있고 영양 많고 거기다가 농촌어메니티 요소도 많아 소비현장이나 생산현장에서 '섭생(攝生)의 멋'을 입으로 몸으로 느낄수 있게 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을 하나하나 제철에 맞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욕심이 들었다.

조류독감, 중국산 발암물질파동, 말라카이트그린사건, O-157세균, 광우병, 환경호르몬, 사스 등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전 지구적 환경오염의 단면들이 우리들을 슬프게 하는 가운데 '여주와 동아', 애호박, 단호박, 참외, 메론, 수세미, 쓴오이, 늙은오이, 국수호박, 국좌호박, 무종피호박, 먹참외,기기묘묘한 수박 등등 수십가지 박과채소들이 우리 곁에서 우리들 인생의 구미를 돋구고 있다.

놀라운 생명짓 , 거침없는 유기체_ 호박
▲ 호박덩쿨손(호박손), 놀라운 생명의 촉각을 지닌 녀석이다. 무엇이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끝에 닿는 것은 모조리 감아 돌린다. 달팽이처럼 말아 돌아간 저 의미는 아주 의미심장하다.

▲ 지난해 5월 30일, 호박모종을 심었다. 놀라운 기세로 주변텃밭을 점령하고 호박꽃을 피우고 벌들의 잔치 한바탕 벌인 후에 9월 20일경 호박이 달리기 시작했다.

호박은 기후조건에 대한 적용범위가 넓고 토질을 별로 가리지 않아 모래땅에서 참흙까지 재배가 가능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난다. 건조기에도 강하지만 물 빠짐이 좋은 곳이라야 한다. 자체적으로 수분을 많이 저장하기에 건조에는 이길 수 있지만 수분이 지나치게 많으면 상하기 쉽다.

텃밭에서 호박을 키워보면 호박의 부피생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 뼘 정도 되는 호박모종을 심어놓으면 주변식물들이 맥을 못 출 정도로 호박이 무성하게 세력을 펼쳐나가는 것을 본다. 옛날에는 호박을 심기 전 인분(人糞)을 흠뻑 뿌려주면 더욱 잘 자랐다. 낮은 야산언덕배미에 똥바가지 들고 거름을 뿌려대던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풍겨오던 그윽한(?) 향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부숙(腐熟)이 덜된 인분은 다른 작물에 주면 고사하지만 호박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수분과 양분을 맘껏 흡수하며 발산량 또한 다른 식물들보다 많다. 손톱보다 작은 호박씨로 시작해서 수천수만배 부피생장을 하는 셈이다. 온 나지막한 야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왕성하게 살아간다.

외국의 어느 호박대회 자료사진을 보면 사람키만큼 큰 호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호박의 흡비력(吸肥力)이 다른 식물보다 좋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 시골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중인 늙은 호박의 모습이 정겹고 아직 매달려 있는 수세미의 정감이 올망졸망 잘 어울린다.

호박의 주요성분은 수분이 90%를 차지하며 채소가운데 녹말이 가장 풍부하다. 비타민A가 많고 비타민B,C도 함유되어있다.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은 이유는 호박의 당분이 소화흡수가 잘되기 때문이다.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친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호박의 주성분은 녹말이고 그 성분은 감자와 비슷하다. '뒤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고 잎은 나물로 쌈을 싸먹고, 애호박은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여 먹는다.

호박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데 늙은 호박이 갖는 범용성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낳은 산모의 산후조리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몸의 기가 쇠잔해지고 입맛이 없어지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얼굴은 푸석푸석해지고 윤기가 없어지게 된다.

호박은 그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소화기를 보호해주는 작용을 하고 이뇨를 원활하게 해주고 갈증을 없애준다. 그외에도 말려서 쓰는 호박고지, 호박범벅, 호박가루, 호박찜, 호박죽 등 전통의 요리법도 많다.

단호박

호박은 멕시코남부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동양계호박(C. moschata), 라틴아메리카 원산의 서양계호박(C. maxima), 멕시코북부와 북아메리카원산의 페포계호박(C. Pepo) 3종류로 나뉜다. 단호박은 이 가운데 쪄서 먹거나 건강식으로 먹는 서양계 호박을 일컫는다. 맛이 밤처럼 달아 밤호박이라고도 부른다.
▲ 녹말과 무기염류가 풍부하고 비타민B, C가 많이 들어있어 주식대용으로 먹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80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도입해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도입해서 널리 재배하고 있다.

우리집 식단에서 단호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용하게 쓰여진다. 특히 아침식사에서 단호박이 갖는 의미와 눈으로 보이는 맛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풍성하게 해준다.
▲ 고구마, 감자, 버섯, 당근 등을 구울 때 같이 사용한다. 단호박이 갖는 칼라풀한 감성은 입맛을 좌우하는 키포인트가 된다. 진노랑, 혹은 진주황이 갖는 식감자극도 일품이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단맛은 섭생의 의미를 한층 멋스럽게 만들어 준다.

▲ 주식겸 간식으로 쪄 내오면 녹색과 진노랑색이 곁들여지는데 그 자체로 일품먹거리가 된다.

▲ 서천 아리랜드에서 생산한 미니단호박이다. 달걀크기와 견줘보니 앙증맞기 그지없다.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데다 단호박이 갖는 타 식재료와의 친숙성으로 인하여 강호에는 수백수천가지의 개성 있는 단호박 요리들이 가가호호 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드는 사람 각자각자의 성질이 들어가고, 손맛이 들어가고, 아이디어가 보태지니 단호박요리의 종류는 만드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것이다.

단호박 찜, 단호박 샐러드, 단호박 경단, 단호박 쿠키, 단호박 죽, 단호박 피자, 단호박 그라탕, 단호박 푸딩, 단호박 치즈구이, 단호박 조림, 단호박 돼지고기조림……

바이오다이나믹농법(생명역동농법)

충남 서천 아리랜드 정의국씨 내외가 아리아랑 미니단호박을 키워낸 농법이다. 정농회회원들은 1994년부터 생명 역동농법을 도입하여 실천하고 있다.

매년 행성들의 주기를 파악하여 농업에 바이오다이나믹 달력을 사용하는데, 달이 점점 커가는 음력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작물의 씨를 뿌리면 발아도 잘되고 생육이 균일하며, 보름이 지나 그믐까지는 수확을 하여 저장하거나 식용할 것을 추천한다.

즉 쉽게 이야기하면 아래와 같이 작목별로 날을 가리고 작목을 구분하여 농사짓는 것이다.

● 열매의 날 : 곡물, 콩류, 수박, 오이, 가지, 피망, 호박,고추...
● 꽃의 날 : 모든 꽃과 허브류
● 잎의 날 : 시금치, 배추, 양배추, 쑥갓, 부추...
● 뿌리의 날 : 무, 당근, 생강, 양파, 마늘, 감자, 고구마...
● 휴경의 날 : 농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시간

1924년 루돌프슈타이너박사(Rudolf Steiner, 1861~1925)에 의하여 독일에서 시작된 농법으로 하늘의 힘이 땅을 살리고, 작물과 균형 및 조화를 이루어 살아있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게 되므로 이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살릴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주와 지구, 달과 지구 및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관계를 농사에 적용하여 실천하는 농사를 일컫는다.

물량중심의 이익에 눈멀어 땅으로부터 모든 것을 수탈하는 농업생산방식이 아니라 사람과 땅과 하늘이 조화롭게 운행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정농회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단호박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생산과정에서, 주방에서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한가지 작물이 자리를 잡게 되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따라서 생겨나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야기들은 엄마의 입에서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갈 것이다.

반대로 고유한 우리종자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도 사라진다는 이야기일 테니 대저 우리농업을 귀하디 귀하게 여겨야 할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되겠다.

'섭생의 멋'과' 양생의 맛'을 일깨워준 단호박이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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