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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교육연구소와 조성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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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충남교육연구소와 조성희 사무국장

[김정헌의 '예술가가 사는 마을']<33> 공주 우성면 봉현리

▲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충남교육연구소 전경. 아담한 폐교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이름이 말하듯이 충남교육연구소는 교육연구소다. 그러나 이 연구소가 봉현리 마을의 폐교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 이제는 이 마을의 문화거점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마을에 있던 학교가 폐교될 때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학생 수가 급감해서다. 봉현초등학교도 마찬 가지 이유에서 폐교가 되었다. 여기에 10 여 년 전 충남에 있는 교사들과 공주대 등 인근의 대학교 교수들이 중심이 되 설립한 충남교육연구소가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부터 이 연구소는 황폐화 되가는 농촌의 학교들에 주목하고 농촌의 학교와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와 관련된 교육과 연구사업을 주로 했다. 교사들의 직무 연수, 학생들의 특별 위탁교육 등 교육과 학교의 문제들, 청소년 연구 등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연구소의 주요 활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자연히 마을주민들의 문화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한 가운데 학교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과 결합한 것이다. 마을의 노인네들, 아주머니들, 농사꾼들, 학생들이 이 연구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들의 관심을 연구소는 여러 가지 행사로 묶어냈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의 삶과 이 연구소가 결합하게 된 것은 연구소의 사무국장인 조성희씨의 탁월한 실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 국장은 남편이 충남에 교편을 잡는 바람에 공주에 내려 왔다 이 연구소의 일을 맡았다. 처음부터 국장으로 일했는데 지금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어도 여지껏 '조국장'이다.

▲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각종 체험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고 한다. 서로 간에 아는 것을 나누는, 살아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주 가 보지 못했지만 나도 이 연구소에 이사로 되 있어 연구소가 벌리는 사업(이 연구소는 '배움과 실천'이라는 월간 소식지를 발행하고 이사진은 물론 회원들과 관계기관에도 배포한다)만 보더라도 조국장이 어떻게 일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이 연구소가 만들고 벌리는 모든 사업들이 모두 이 여자, '조국장'으로부터 나온다. 같이 일하는 스탭도 있고 많은 조력자가 있어 그런 분들한테는 섭섭한 소리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 여자가 없었으면 절대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그녀는 사람을 잘 꼬신다. 특히 주민들을 잘 '꼬득여' 자발적 조력자로 만든다. 그 만큼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그 친화력은 바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이 살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다.

이 연구소에는 각종교실이 있어 수 십 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주로 청소년문화학교 '느티나무'에서 하는 교실들이다. 교실에서 하는 수업도 있지만 주로 야외의 자연과 역사현장에서 하는 학교들이다. '농촌문화체험학교', '느티나무 계절학교', '느티나무 문화탐험대' 등 주로 청소년들을 위해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한다.

이런 체험교실에 적절히 마을 주민들을 배치한다. '배치'라기 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의 농촌문화체험에 마을의 연로하신 주민들이 직접 재래식 모심기를 통해 아이들의 농사체험 교사로 나선다. 이제는 없어져가는 재래식 농법을 어린이들이 체험하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례와 더불어 지역주민들과의 결합은 수시로 이루어진다.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봉현달밤영화제'를 꾸준히 열어 주민들의 문화생활에 윤활유를 치기도 한다. 이 영화감상프로그램은 이제 주민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이 외에도 노인들 20여명을 중심으로 풍물동아리가 소리로 마음을 맞춰가고 있고 이들의 지도 아래 짚동아리가 아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마을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연극동아리, 사진영상교실과 '악동밴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교육연구소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이 연구소는 마을의 주민들 프로그램을 잘 조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들을 조직하고 실제로 운용하는 데는 말할 것도 없이 예산이 필요하다. 결국엔 돈이 문제다.

▲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 즐겁고 생생한 교육을 하고 있는 청소년 문화학교 '느티나무'. 아침부터 밤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학원을 다니느라 방학이 더 피곤하다는 도시 아이들의 풀 죽은 얼굴이 생각난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조성희 사무국장의 힘이다. 이 여자가 돈이 많은가? 아니면 이 연구소가 돈이 많은가? 아니다.

해답은 정부 기관이나 여러 기업에서 지원을 받는 방법이다. 이 지원을 조성희사무국장이 여직껏 잘 해결해 왔다. 어떻게 이런 지원을 잘 끌어내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여기 연구소의 이사로 있으면서도, 실제로 운영에 참여하는 이사라기보다 명의만 올라 있는 이사로서 그 동안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마을길을 걸으며 자연을 다시 보고 역사 현장을 찾고 영화도 찍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활기가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렇지만 내가 중앙의 대표적인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이 아니었던가? 또 이런 마을과 관련하여 연구소(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도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동안 이 연구소에 지원과 관련하여 조국장이 나에게 한 번도 상의한 적이 없다. 아는 척도 안했다.

결과적으로 조국장은 나에게 소위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그 동안 조국장은 지원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노하우도 축적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위에 성과도 좋고 열심히 하다 보니 정부 기관에서 알아보고 상을 준다. 또 상을 받다보니 그 다음 지원에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뭐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사업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지 만 무엇보다 그녀의 열성과 의지가 이런 사업들을 성공시켰다.

지금까지 10년 째 이어져 오는 연구, 교육과 관련된 사업들, 지역사회와의 결합, 마을 주민들과의 생활문화공동체 사업 등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성희 사무국장은 연구소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5월 어느 날 나는 혼자 연구소를 방문해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같이 먹고 1시간 이상을 조국장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연구소의 지원사업들은 대부분 1년 전부터 준비(사업계획을 기획하고 만들어야한다)해 신청을 하게 되면 먼저 그 해의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야 한다(신청자나 단체가 많아 사업에 선정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용케 선정이 되면 그 사업을 운영하고 그 것으로 사업성과를 만들어 보고서를 제출하고, 사업비를 정산해서 영수증 처리(어떤 사업들은 몇 백 원 짜리 영수증 처리가 안 되었다고 다시 정산해서 제출할 것을 끝까지 요구 받고 있다고도 했다)를 해야 한다. 그 것으로 일단 그 해 사업이 마무리 된다.

조국장은 이런 사업들이 계속사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년도부터 부지런히 준비해서 사업계획을 세우고, 지원신청을 또 되풀이해야한다고 한숨을 쉰다. 위원장을 했던 내가 이런 점을 왜 모르겠는가?

▲ 미래를 만들어낼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에 마음을 모으고 이곳에서 농촌교육의 희망을 빚어가려는 노력이 10년 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빛나는 결실에도 불구하고 지원에 의존하는 운영은 한해한해 불안하기만하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과 농촌 사회 또한 앞으로의 과제는 '자립'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제도화 된 정부 기관의 지원사업들 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사회공헌기금들이 지원하는 것도 거의 모두 이런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불편하고 짜증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불편과 짜증스러움을 못 참겠다면 지원을 끊는 수밖에 없다. 즉 지원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립이 과연 가능할까?

지금 이 연구소에서는 작년부터 사회적일자리창출사업으로 선정되어 '농촌청소년문화학교'를 운영 중이다.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다 자립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늦은 봄날 차를 마시면서 연구소의 자립과 마을에 더 확실히 뿌리내리기에 관한 여러 생각을 주고받았다. 마을 주민들과의 결합은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지 만 조금 더 그들의 삶의 내력들을 듣고(채집하고) 그 것을 문화예술로 각색하는 작업을 권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살아 온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만화, 시각예술, 소리, 춤, 영상, 연극, 마임 등 전문가들이 좀 더 폭 넓게 참가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을 그녀에게 주문했다.

연구소의 자립기반은 지금 당장 안 되더라도 '사회적기업의 등재'처럼 지금부터 하나 둘 다져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둘의 결론이었다.

(☞바로 가기 : 예술과마을네트워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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