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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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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화제의 책]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경제 일변도의 문명을 이번 기회에 인간 중심의 문명, 생태 중심의 문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필요하다면 이것에 상응하는 임금 삭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딱 10년 전 경제 위기 때 서강대 교수 손호철은 "단순히 경제 위기를 극복해 고도성장을 회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이 기회에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고, 조금 더 가난하더라도 자기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문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다시 10년이 지난 후 그는 "이런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의 이런 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손호철이 최근 펴낸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이매진 펴냄)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 답하는 책이다. 그것은 흔한 여행기의 하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넘어서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모색하고자 고민하는 한 좌파 지식인의 자기 고백으로도 읽힌다.

참여 민주주의 실험장 베네수엘라…차베스는 장기 집권으로?

이 책에서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역시 정치학자 손호철의 남아메리카 정치 현실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다. 특히 반미 노선을 앞세우며 석유를 이용해 자신만의 정치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에 대한 그의 평가는 특히 궁금하다. 이미 국내외의 많은 좌파 지식인에게 차베스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손호철의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일단 호의적이다. 특히 그가 2004년 12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열린 '인류를 지키기 위한 세계 지식인과 예술가의 만남' 회의에서 직접 차베스를 만나 그의 얘기를 전해주는 부분에서는 '새로운 혁명'을 꿈꾸는 정치인 차베스의 매력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손호철 지음, 이매진 펴냄, 2007). ⓒ프레시안

"민중민주주의(PD)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동어반복인 셈이죠. '민주주의(Democracy)'란 말이 원래 '데모스(Demos)', 즉 민중의 지배라는 뜻인데, 왜 민주주의 앞에 또 민중이라는 말이 필요합니까? 민주주의란 원래 민중적인 것이고 민중적이지 않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런 "학자도 하기 어려운 주옥같은 말들을 쉬지 않고 털어놓는" 정치인에게 어찌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손호철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같은 조어를 경솔하게 내뱉었다가 나중에 수하의 사람을 내세워 "일종의 조크였다"고 변명하는 정치인이 개혁을 상징하는 대통령으로 행세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손호철이 단순히 차베스의 치적만 읊는 것은 아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가장 주목한다. 이것은 정치학자로서 당연한 관심이다.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시장 중심의 세계화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정작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정치가 그 실체를 드러낸 곳은 베네수엘라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손호철은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는 참여 민주주의에 깊은 관심과 공감을 표시한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 또 다른 대안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은 제1의 원칙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우곤 했다. 손호철의 눈에 비친 베네수엘라는 그 참여 민주주의가 '날 것'으로 실험되는 공간 중 하나다.

그러나 손호철은 차베스를 보면서 걱정한다. "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는 그의 기질,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성 지지자들의 차베스에 대한 광신적 사랑을 생각할 때 그가 장기집권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좌파 지식인의 얘기하는 '문명의 전환'

손호철이 쏟아내는 온갖 사연과 문학, 미술, 음악 등을 가로지르는 박학다식에 놀라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곳곳에서 "지구가 지나온 억겁의 세월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근본적인 문명의 전환에 대한 그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스터 섬에서, 파타고니아에서, 마추픽추에서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가'라는 질문을 되새긴다.

손호철은 이스터 섬에서는 생태 균형의 파괴가 결국 한 사회의 파멸을 가져온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탐욕에 찌든 근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덕분에 태고의 환경을 간직할 수 있었던 파타고니아에서는 '지구가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에 속해 있을 뿐이다'라는 옛 인디언의 말이 가슴을 두드린다.

손호철의 성찰은 이른바 '라틴적 삶'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아메리카의 한인 중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성공한 편"에 속하는 브라질의 한인은 하나같이 "궁색하게 살지 않으면서도 브라질에서 산 반평생 동안 사람이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게 원 없이 즐기며 살았다"고 말한다.

"한국,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경제적 성공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본말이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 경제적 성공만 바라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브라질의 라틴적 삶이 아닐까?"

얼마 전 시민발전 박승옥 대표는 <녹색평론> 최근호(2007년 3-4월)에 기고한 '진보는 없다'는 제목의 글에서 "이제 민주화 운동과 진보 운동이 아니라 '사회전환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의 전환, (…) 재생가능 에너지로 평화롭게 자립하는 사회, (…) 맑은 공기와 안전한 먹을거리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얘기했다.

이런 주장은 손호철이 남아메리카를 둘러보고 얻은 결론과 과히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앞으로 손호철은 같은 출판사에서 세계 곳곳을 돌며 보고 듣고 사색한 내용을 갈무리해 계속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국내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지적 여정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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