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위원회가 27일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개정안을 승인함으로서, 지난 18년 간 논란의 대상이었던 '생명보험사의 증시 상장'이 가능해졌다. 여기에는 '상장차익은 주주들만의 것'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시장은 그동안 적극적인 상장 의사를 표명해 온 교보생명이나 동부생명이 첫 상장 생보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어느 생보사가 첫 상장사가 되느냐'에 못지않게 '삼성생명 상장'의 파장에 쏠려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9년 삼성차 채권단에 약속했던 대로 삼성생명을 상장할 '때'가 드디어 도래했기 때문이다.
애초 삼성 측은 삼성차 채권단에 2000년 말까지 삼성생명을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생보사 상장시 발생하는 차익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상장이 계속 미뤄져 왔다. 결국, 논란은 삼성의 주장대로 '상장차익은 보험계약자에게는 나눠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삼성생명의 상장 문제는 '상장차익의 규모 및 배분방식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뿐만 아니라 '삼성생명과 삼성에버랜드를 양대 축으로 하는 삼성의 순환출자형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제로 주목 받고 있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삼성의 지배구조가 흔들린다고?
삼성생명의 상장으로 주목받게 될 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울보증보험 등 14개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삼성차 채권단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350만 주(17.5%)다. 다른 하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67만 주(13.34%)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9년 삼성차 채권단에 주당 70만 원으로 평가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건네주고 2000년 말까지 삼성생명을 상장해 보유주식을 현금화 해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상장차익의 배분방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상장이 지연되면서 채권단은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삼성 채권단의 주식 350만 주가 증권시장에 풀려 다른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삼성생명의 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25.6%를 보유한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형 지배구조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증시 관계자들은 삼성가가 오랫동안 삼성생명의 상장을 준비해 온 만큼 상장이 되자마자 삼성차 채권단에 넘겼던 삼성생명 지분을 되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상장차익 '주주'만 독식하면, 삼성家는 '1조원대 대박' 올리게 돼
그렇다면 문제는 이건희 회장 등 삼성가가 삼성차 채권단의 주식 350만 주(17.5%)를 되살만한 거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삼성가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에 있다. 삼성가가 51%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지분만 267만 주(13.34%)다. 이 지분의 상장차익을 '보험 계약자'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주주'인 삼성가만이 독식할 경우, 삼성은 어마어마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증권가는 삼성생명의 주가가 주당 100만 원 안팎에서 책정될 것이며, 이 경우 삼성가는 수천 억 원대에서 최대 1조 원대의 상장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은 이 상장차익 등을 이용해 삼성차 채권단이 시장에 풀어놓은 삼성생명 지분을 필요한 만큼 사들일 수 있다는 것.
삼성이 지난 18년 간 삼성생명의 상장차익을 보험계약자에게 나눠줄 수 없다고 버틴 것은 상장차익을 독식하기 위한 단순한 '욕심'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삼성은 현재의 순환출자형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생명의 상장차익을 독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일한 걸림돌은 '금융지주회사법'
그런데 이런 구상에 유일하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금융지주회사법'의 존재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상장으로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의 주가가 급등할 경우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된다.
그러면 삼성에버랜드는 비금융 사업을 정리해야 하며, 에버랜드의 자회사인 삼성생명 역시 '비금융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게 된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깨지는 셈이다.
그러나 주식 시세가 반영되는 '지분법'이 아니라 주식의 액면가를 따지는 '원가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을 해석하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는 걸 피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등 벌써부터 '기발한' 해법들이 나오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런저런 해법을 모색한 후,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삼성생명을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삼성은 삼성생명의 막대한 상장차익을 독식하는 동시에 현재의 순환출자형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복안을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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