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요즘 부안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거명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한국 농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바꿀 희망을 부안에 가면 발견할 수 있다는 것. 2000년대 들어 '되는 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 지역을 주목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10일 부안을 찾았다.
유채 밭에서 '석유'를 캔다?
봄기운이 가득한 부안 들녘에서 노란 꽃들을 활짝 피운 유채 밭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안군에는 현재 모두 26만 평(88㏊)의 유채 밭이 있다. 부안의 유채 밭은 2004년 10만 평(33㏊)도 채 안 됐으나 최근 3년 새 그 면적이 크게 늘었다. 앞으로 부안의 유채 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농림부는 부안에 150만 평(500㏊)의 유채 밭을 새로 조성하고, 유채 재배 농가에 1㏊당 17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부안군도 별도로 그 절반 규모인 228㏊의 유채 밭을 조성할 계획을 검토 중이다. 현재 부안군에서는 402개 농가가 유채를 재배하기로 확정된 상태다. 계획대로만 다 되면, 앞으로는 유채 꽃을 보기 위해 제주도가 아니라 부안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부안에서 유채 재배가 늘어난 데에는 '유채 전도사'로 불리는 김인택(46) 씨의 공이 컸다. 그는 최근 '부안유채네트워크'를 출범시키고 회장을 맡았다. 오는 26일 출범하는 '전북유채네트워크'가 결성되기까지에도 그의 공이 컸다. 김 씨는 "1990년대 후반 환경 농업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저것 공부를 하면서 유채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유채 타령? 김 씨의 설명을 통해 유채가 가진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본 '유채의 힘'은 수송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었다.
"유채유(油)를 원료로 바이오디젤유를 만들면 디젤 엔진 자동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요? 유채를 재배하면 새로운 농가 소득도 창출하고, 동시에 환경오염이 적은 수송연료를 생산해 에너지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으니 이것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콩기름, 유채유 등 식물 기름을 원료로 바이오디젤유를 만들어 경유 대신 수송 연료로 쓰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정부도 지난해 7월부터 경유에 바이오디젤유를 0.5% 이하로 섞어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 씨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자동차, 농기구 등을 폐식용유로 만든 바이오디젤유로 가동하고 있다.
단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유채
김인택 씨의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 부안 지역에 유채 밭이 계속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유채를 사들이는 데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농림부의 지원을 받아 재배된 유채는 농협이 1㎏당 350원씩에 구매해 바이오디젤유 제조업체에 공급하기로 결정된 상태다. 군 차원에서 재배한 유채에 대해서도 인근의 바이오디젤유 제조업체에서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다. 170만 원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1㏊당 약 3000㎏의 유채가 생산되니 매년 부안은 연간 20억200만 원의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셈이다(350원×3000㎏×728㏊+170만 원×728㏊).
이같은 소득은 보리를 재배할 때의 소득의 80% 정도 수준이다. 현재 보리는 국제 거래 가격 1㎏당 176원 정도지만 수매 가격은 보조금 623원 더한 1㎏당 799원이기 때문이다. 20% 정도의 소득 감소가 있는 셈이다. 그러면 부안 농민들은 이런 '밑지는 일'을 왜 자청해서 하게 되었을까?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은 "보리의 경우에는 최근 몇 년째 가격이 폭락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농가에 안정적인 소득원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유채의 경우에는 전량이 바이오디젤유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 소득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앞으로 기름을 3배 가까이 더 짜낼 수 있는 품종이 본격적으로 재배될 경우 유채도 1㎏당 700원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이오디젤유 제조업체뿐만이 아니다. 김 씨가 소속된 주산사랑에서 재배하는 1만5000평(10㏊)의 유채 밭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다. 김 씨는 "유채 생산량이 좀 떨어지는 대신 이곳에서 재배된 유채를 원료로 고급 식용유를 만들고자 하는 식품업체에서 관심을 보여 가격(1㎏당 1200원)을 흥정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오디젤유 원료로 판매할 때와 비교해 4배에 가까운 값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채는 버릴 게 없다. 예로부터 유채는 대표적인 녹비식물(거름 대신 땅에 뿌리는 식물)로 꼽혔다. 이 때문에 유채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가축의 똥오줌과 2:8 정도의 비율로 섞으면 훌륭한 유기 비료로 재탄생한다. 이 비료는 국내 유기 농업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진 부안 곳곳의 유기 농업 공동체에서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유채 밭 곳곳에서 꿀을 따고 있는 벌도 유채의 또 다른 이득. 김기택 씨는 "4~5월 유채 꽃에서 나온 꿀은 가장 양질의 꿀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한창 벌이 유채 꽃에서 꿀을 딸 때는 유채 꽃을 보는 사람의 눈도 즐거울 때다. 김 씨는 "제주도처럼 부안군도 유채 꽃이 필 때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채 이익…최대 1조 원 진보정치연구소는 유채를 재배해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했을 때 얼마나 이익이 나는지를 상세히 분석했다. 국내의 유채 재배 가능 면적은 유채의 북방한계선인 대전 이남지역의 55만㏊(휴경지 4만7800㏊+보리 재배 면적 3만6000㏊+이모작 가능 면적 46만6200㏊). 이 지역 모두에서 유채를 재배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94만t의 바이오디젤유의 생산이 가능하다. 이같은 생산량은 2006년 기준으로 농업용 면세 경유의 57.5%를 대체할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이 바이오디젤유 94만t으로 경유를 대체할 경우 발생하는 이익은 3248억 원(약 3억5000만 달러)이나 된다. 이와 동시에 환경오염이 줄어드는 데에서 오는 이익은 연간 최대 1778억 원이다. 오염물질이 줄어들면서 그 피해 비용이 저감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유채 꽃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했을 때의 이익도 있다. 제주도의 경우를 대비해 추산할 때, 경관 개선으로 발생하는 이득은 연간 최대 4433억 원이었다. 결국 유채만 잘 키워도 1조 가까이 이익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장주영 연구원은 "이 분석은 대부분 정부의 보수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며 "유채 재배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유채로 경유 소비의 6% 대체 가능
쌀로 유명한 부안에서 유채를 재배할 수 있는 이유는 유채가 보리처럼 쌀과 이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채는 6월 초에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6월 20일경 모내기를 해야 하는 쌀농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는 바이오디젤유 생산을 목적으로 한 유채와 같은 작물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허용하고 있어 농업 지원에도 유용하다.
고유가 상황에서 유채유를 원료로 만든 바이오디젤유의 경쟁력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만약 '석유 생산 정점(Peak Oil)' 사태가 도래하면 경유, 휘발유와 같은 수송 연료를 대체하는 바이오디젤유의 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현민 시민발전소 소장은 "정부가 미래를 대비하고자 한다면 에너지 작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오디젤유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 대비해 온실 가스를 저감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바이오디젤유 역시 연소하면서 경유와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유채와 같은 원료가 되는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대기 중 CO₂를 소비하기 때문에 똑같이 자동차를 움직이면서도 대기 중 온실 가스의 총량에는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이오디젤유는 경유와 비교했을 때 오염물질도 적게 배출한다. 바이오디젤유는 연소 효율이 높아서 미세먼지, 탄화수소 등의 오염물질을 경유보다 10~35% 적게 배출한다. 민주노동당 에너지 담당 장주영 연구원은 "경유 100만t을 바이오디젤유로 대체할 경우 환경오염에 따른 비용을 최대 1778억 원까지 절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 바이오디젤유지만 이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유채를 재배할 수 있는 땅의 면적은 최대 55만㏊다. 여기서 생산할 수 있는 바이오디젤유는 94만t 정도로 2006년에 전국에서 소비된 경유의 6.37%에 해당한다.
더딘 정부, 분통 터지는 농심
김인택 씨는 "그나마 이마저도 하지 않으려는 게 바로 한국 정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현재 산업자원부가 5개 정유업체와 협약을 맺고 연간 9만㎘의 바이오디젤유를 공급하고 있다"며 "이러다보니 바이오디젤유 생산업체는 생산 능력(30만㎘ 수준)만큼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산자부가 하는 모습을 보면 바이오디젤유를 일종의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할 미래 에너지로 보기보다는 단순한 하도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으니까 마지 못해서 도입하는 첨가제 정도로 보는 것 같다"며 "이렇게 산자부가 바이오디젤유 보급 속도를 늦추니 농림부도 2007년부터 겨우 1500㏊를 대상으로 유채 재배 지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림부는 2014년까지 10만㏊로 유채 재배 면적을 늘리겠다고 하는데 그 안에 경유와 같은 수송 연료 수급에 큰 문제가 생긴다면 외국으로부터 바이오디젤유 연료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현재 국내에서는 바이오디젤유 생산업체가 유채를 사용하고자 해도 조달할 곳이 없는 상태다. 2005년 현재 전국의 유채 재배지는 부안을 포함해 약 100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안은 벌써 저만큼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구조가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마치 2003년 '부안 사태'를 연상시키는듯 했다.
그때도 부안 주민들은 원자력 에너지 대신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주장했었다.
"산업자원부 잘 좀 하자" 현재 국내 바이오디젤유 생산업체는 총 11개 사다. 이 주에서 폐식용유를 이용하는 업체는 1곳뿐이고 나머지 업체는 전량을 해외에서 대두유를 수입해 생산한다. 그러나 폐식용유는 수거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대두유의 경우에는 세계 곡물 가격의 변동에 따라 출렁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주영 연구원은 "바이오디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업자원부가 9만㎘로 제한하고 있는 바이오디젤유의 연간 생산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게 필요하다"며 "더 나아가 정유업계가 독점하고 있는 바이오디젤유의 공급권을 바이오디젤 생산업체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일하게 폐식용유를 이용해 바이오디젤유를 생산하는 에코에너텍의 경우 정유업체 3곳과 거래해 납품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코에너텍의 경우 현재의 9만㎘를 2배 수준으로 늘려도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장 연구원은 "산자부의 물량 확대가 얼마나 바이오디젤 육성에 시급한 일인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유채 재배를 확대한 것과 함께 폐식용유 수거 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폐식용유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가정에서 폐식용유는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환경부에서 폐식용유를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으로 분류해 놓고도 가정용 폐식용유의 경우 따로 분리 수거를 하지 않고 있다. 장 연구원은 "연간 20만t으로 추정되는 폐식용유를 체계적으로 수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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