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전 감사는 1980년대 후반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노 대통령의 제주도 선거 운동을 책임진 당사자다. JDC(이사장 김경택)는 제주도의 각종 개발 사업을 위해 2002년 5월 창립된 건교부 산하의 공기업. 이 JDC의 2007년 예산은 2840억 원에 이른다.
수백 억 원 아끼고 해임…건교부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소송'
양시경 전 감사가 이렇게 노무현 정부와 정면 대결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06년 7월 감사로 취임한 그는 곧 JDC가 헬스케어타운(예산 3150억 원)을 짓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동 일대 30만 평을 사들이려는 계획을 알게 됐다. 당시 JDC는 한국감정원의 예비 감정 평가에 의거해 평당 15만 원대에 이 부지를 매입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 토박이로 현지 사정에 밝은 양 전 감사는 바로 의문을 갖게 됐다. 70% 이상이 외지인 소유인 그 부지는 아무리 땅값을 높이 쳐도 평당 8만 원 이상이 나올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곧 매입 추진 가격에 의문을 갖고 감사로서의 당연한 의무라 여기며 다른 감정평가원 2곳에 개인적으로 감정을 의뢰했고, 실제로 평당 8만 원대의 감정 결과를 받았다.
사실 이 8만 원대의 감정 결과도 높은 것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지난 3월 말 부지 내의 일부 땅이 법원경매에서 평당 2만 원대에 낙찰됐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도 2006년에 매입 예정 부지에서 동쪽으로 3㎞ 떨어진 곳의 부지 43만 평을 평당 4만 원에 매입했다. JDC의 2005~2006년 다른 제주 지역 토지 매입 가격도 평당 2만~7만 원에 불과했다.
양 전 감사는 곧 이런 토지 매입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련 내용을 건교부 감사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 알렸다. 이렇게 양 전 감사가 별도로 감정 평가를 실시한 것은 '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건교부도 2006년 11월 산하 기관에 보낸 공문을 통해 "감정평가 의뢰 전 사전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땅값 부풀리기 실상 들여다보니 <제주의소리>는 최근 JDC의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의 땅값 부풀리기 의혹을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 한 번 더 제기했다. 애초 JDC는 한국감정원이 예비 평가한 표본을 공개하지 않아 필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강의 비교는 가능하다. 부지 내 동홍동 2066번지(임야)에 대해 제주지방법원(대일에셋감정법인)은 1만7190원(낙찰가 2만6399원)으로 평가했다. 한국감정원은 바로 옆에 있는 2061번지를 14만8500원으로 평가했다. 2070번지 역시 마찬가지다. 법원(대일에셋감정법인)은 2만496원(낙찰가 2만7444원)으로 평가했다. 한국감정원은 바로 옆에 있는 2050번지를 13만2000원으로 평가했다. 이 2070번지에 대해서는 다른 감정사의 평가 결과도 있다. 제일감정원은 3만9600원, 가온감정원은 3만9600원으로 평가했다. 한편 토지 주인이 본 감정 평가 기관으로 추천해온 나라감정원은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부실 감정기관'으로 판정받았다는 것. <제주의소리>는 "나라감정원이 높은 평가액을 산정해 다른 평가 기관의 토지 감정 가격을 덩달아 상승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보도했다. |
평당 2만 원대 땅을 7배나 비싸게 산다고?
양 전 감사의 노력으로 210억 원(7만 원×30만 평)을 절약할 수 있게 됐는데도 JDC는 계속 기존의 매입 계획을 밀어붙였다. 건교부, 청와대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결국 JDC가 사실상 매입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본 감정평가기관을 확정하려 하자, 양 전 감사는 지난 12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의혹을 제기했다.
JDC의 토지 매입 계획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의문이 제기되어 오고 있었다. JDC가 2005년에 1억300만 원을 들여 일본 노무라연구소 등에 의뢰해 얻은 용역 보고서는 제주헬스케어타운(제주웰빙테마타운)의 최적지로 7곳을 권장하고, 토지 매입 가격으로 평당 10만 원대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JDC는 이 용역 보고서에서 권장한 7곳이 아니라 동떨어진 동홍동 부지를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로 선정했다는 것.
이뿐만이 아니다. 양 전 감사의 기자회견으로 논란이 일자 지난 12월 13~14일 이틀간 JDC를 상대로 감사를 실시한 건교부는 "JDC의 권 모 팀장이 (예비 평가 전) 한국감정원의 직원에게 '여건이 좋은 금성목장(전체 매입 예정 부지의 54%)도 15만 원 수준에서 최대한 조정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확인했다. JDC가 평당 15만 원대의 고가의 평가액을 요청한 것이다.
양 전 감사는 17일 "금성목장(약 15만 평)의 토지 주인은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 인근에 45만 평을 소유하고 있다"며 "이 곳에는 현재 서귀포 제2관광단지가 개발될 예정이라서 조만간 한국관광공사가 부지를 매입한다"고 말했다. 그는 "JDC가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 매입 가격에 따라 한국관광공사의 매입 가격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사 역할 충실히 한 '죄'로 해임
JDC와 한국관광공사가 궁극적으로 수천억 원을 절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지만 양 전 감사에게 돌아온 것은 '된서리'였다. 건교부는 감사를 실시한 후 "이사회가 충분한 토의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서둘러 제주도에 감정평가를 요청하기로 의결함으로써 대립이 고조됐다"고 지적하면서도 "양시경 감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사회적 파장이 발생했다"며 양 전 감사의 책임을 물었다.
건교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이사장, 양시경 감사, 사업부서가 이사회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해결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두루뭉술한 해법을 제시했다. 지난 2월 JDC에 대해 특별 감사를 실시한 감사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특별 감사를 맡았던 감사원 관계자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건교부 감사 결과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고 말을 흐렸다.
이런 상황에서 JDC는 지난 1월 18일 아예 양 전 감사의 해임을 건교부에 건의했다. 당시 JDC는 "과도한 경영 간섭, 직무상 취득한 자료를 대외 유출, 부적절한 언행 등을 통해 JDC 이미지를 훼손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을 가로막아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해 손실을 가져왔다"고 해임 건의 이유를 밝혔다.
결국 건교부는 2개월 만인 3월 9일 양 전 감사를 해임했다. 건교부는 "양 전 감사가 사업비 추정을 위한 표본 감정 결과를 마치 보상 가격인 것처럼 문제를 제기하고, 직무상 비밀(표본 감정 결과, 사업 부지 위치도)을 공개해 사업 추진을 방해했다"며 "공공기관 감사로서 직위 남용 및 직무상 의무 위반 사실이 확인돼 해임한다"고 밝혔다.
양 전 감사는 "건교부의 해임 결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11월 29일 열린 제43차 이사회의 회의록에 JDC 직원이 '토지 주인도 상당 부분 (토지 매입 가격을) 알고 있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며 "토지 주인도 알고 있는 표본 감정 결과가 무슨 기밀 유출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양 전 감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었다"며 "하지만 청와대, 건교부 등에 이미 보고를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안 돼 수백억 원의 국고 손실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의혹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는 감사 본연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기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양 전 감사는 "이런 꼴 보려고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다"며 "이 정부의 타락에 분통이 터진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JDC "감사 통해 문제 없다는 사실 밝혀졌다"
한편 이런 양 전 감사의 소송 제기에 대해 JDC 측은 "소송을 막을 수는 없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JDC 관계자는 "양 전 감사가 예비 감정 결과를 가지고 대단한 부패 행위라도 있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건교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의혹은 단지 의혹일 뿐"이라고 양 전 감사의 주장을 일축했다.
JDC 측은 이미 지난 1월 31일 보도 자료를 통해 "JDC 직원이 한국감정원에 '15만 원 수준에서 최대한 조정 역할을 해 적정 가격을 도출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은 토지 주인이 추천하는 감정평가원의 감정가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국감정원이 '적정 가격(지나치게 높거나 낮지 않은 가격)을 도출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였다"고 양 전 감사의 의혹에 답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JDC의 제42차(10월 31일) 회의록, 제43차(11월 29일) 회의록을 입수했다. 관련 부분을 일부 발췌해 소개한다. 이 회의록에는 이른바 '행담도 사건'의 당사자였던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이 등장해 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제42차 이사회 회의록 : 2006년 10월 31일 (양 전 감사가 평당 15만 원대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사업전략실장 : 이 말씀은 꼭 드리겠습니다. (토지 주인) 81명을 접촉을 했는데 기대치가 상당히 높습니다. 제2관광단지가 편입된 땅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2년 후에는 인·허가를 다 받으면 도시 지역으로 되기 때문에 땅값이 뜹니다. 그리고 이건 말씀 안 드릴려고 했는데요. 우리 감사님 자꾸만 의혹을 제기하시는데, 저는 하늘을 두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에 유착이 되고 우리 직원들이 유착이 되었다면 금성목장 땅값 확 높여줄 수 있습니다. 요건 비밀로 하십시오. 금성목장 토지 쭉 그림으로 보면 맹지가 없어요. 그럼 우리 30~40만 원 줘야 해요. 그리고 이걸로 인해서 땅을 못 사는 일이 발생하면 저는 책임 못 지겠습니다. 사업전략실은. 기록 분명히 해 놓으세요. 감사님이 추진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가겠습니다. 꼭 그렇게 원하신다면 이걸로 인해 연내 땅을 못 사시고, 이 사업이 무산이 된다면 감사님이 책임을 지셔야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저와 약속을 하신 게 있으세요. (싼) 그 가격에 못 사면 사표를 쓰시겠다고. 문정인 이사 : 그리고 양 감사도 이사회 올 때 싸우듯이 얘기 하지만. 대통령 가깝다고 협박하는 거 같잖아…. (…) 문정인 이사 : 이사장님 그럼 이렇게 합시다. 분명히 적어놨으니깐. 우리 백 실장께서 사업 여부하고 관련해서 감사가 추천하는 대로 해서. 사업전략실장 : 아니요. 위원장님. 요거는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감사님이 하자는 대로 했을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땅 못 삽니다. 100% 못 삽니다. 8만 원, 9만 원 나와서는. 그리고 또 감정 평가 이루어질 수도 없고요. 그러면 사업이 안 됩니다. 아니죠. 아니죠. 다 알아 봤습니다.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이 문제는 이사장님께서 결심을 해 주셔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그렇게 의심이 되시면 사업전략실 인원 교체를 하십시오. 그리고 추진하셔도 됩니다. 일이야 어느 누가 해도 일은 됩니다. (…) 사업전략실장 : 위원장님 이 땅을 못 사게 되면 어떤 문제가 되느냐 하면. 서울대병원도 떠나고, 국책 사업 유치도 무산이 되고요. 그리고 또 서귀포 시민들에 대한…. 제43차 이사회 회의록 : 2006년 11월 29일 (사업전략실장이 보고한 뒤) 양만식 이사 : 또 하나는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감정할 때 감정을 토지주한테 사전에 이것이 감정이 끝나기 전에 토지주한테 공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또 제가 지적하는 것은 개발센터만의 문제가 아니고 관광공사에서도 같은 땅을 사야 합니다. 그러면, 도 입장에서는 앞으로 이렇게 됐을 때 상당히 앞으로 개발센터 때문에 한국관광공사도 상당히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 문제는 현명하게 잘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정인 이사 : 지난번 이사회에서 연내 매수 결정을 했고, 대신 투명성 보장을 하기 위해서 투명성 보장에 관한 양 감사께서 열심히 뛰었고, 양 감사 탓할 건 없고 가급적 적은 돈 주고 토지 매입하자는 좋은 의도를 가져서 시작한 거고 그래도 이 정도 나왔으니깐 그래도 많이 내려갔다고 보고. 우리 사업전략실장은 실장대로 일을 빨리 추진해야, JDC에서 하는 일이 없다고 하니깐 빨리 추진해야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보고. 지금 여기서 양 감사하고 사업전략실장하고 불신이 있고 그건 이사장께서 해소해야 될 문제이긴 하지만 이사회에서 결정을 한 사항이에요. 그것은 이사장의 재량권을 갖고 집행할 문제고. 그리고 양 감사께 지적하지만 양 감사께서 이것에 대해 승복하지 못했을 땐, 건교부 장관에게 정식으로 서면으로 보고하면 되는 거니깐. 그것에 대한 책임은 이사장이 지면 되는 것인데 이걸 갖고 자꾸 이사회에서 재탕 삼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사업전략실장 : 감사님께서 나서주셔서 순기능도 많이 있었습니다. 당초에 이 가격보다 높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요. 예상 가격보다 상당히 낮아진 게 사실인데, 이게 너무 낮아져 가지고 조정이 안 되는 겁니다. 서로 조정이 안 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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