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도 '그것 봐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이다. 정부는 최근 한미 FTA를 선전하는 광고에 일본인이 "부럽스므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기까지 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14일 한국 경제에 정통한 일본 학자로 유명한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를 일본 현지에서 직접 만나 한미 FTA에 대한 일본의 시각을 들어봤다.
13일 부산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석했다가 이날 리츠메이칸 대학의 코리아연구센터가 주최하는 한국경제 관련 국제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교토로 날아온 후카가와 교수는 시종 진지하게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신고전학파' 학자로서, 기본적으로 FTA 등 무역 자유화에 찬성하는 입장인 후카가와 교수는 한미 FTA 타결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 FTA가 한국 경제를 획기적으로 선진화시킬 것'이라거나 '일본이 한미 FTA로 인해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편집자>
프레시안: 한미 FTA가 타결됐다. 전반적인 평가 부탁드린다.
후카가와: 상당한 고난 속에서 협상 타결까지 갔으니까, 일단 협상 자체는 잘 한 것 같다.
프레시안: 협상 결과 말인가?
후카가와: 결과도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협상 상대가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상대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정면돌파'로 나가며 그 정도 했다는 건 평가할 만하다.
프레시안: 국내의 전반적인 평가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미국 측이 한국과 같은 큰 경제권과 맺는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초라서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는 평가도 나온다.
후카가와: 미국은 단순한 한미 경제관계뿐 아니라 보다 큰 전략적 틀에서 한미 FTA를 진행했다. 이 점 때문에 일본이 긴장하는 부분도 있다. 특히, 농업 개방의 경우에는 (미국이) 한국을 교두보로 삼아서…, 다시 말하자면 이제 한국이 무너졌으니까 일본 측이 '우리 쪽에 확실히 확 다가올 것'이라고 좀 긴장하는 부분도 있다.
"자신감 넘치는 일본 경제, 한미FTA에 위협감 느끼지 않는다"
프레시안: 이와 관련해 "FTA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너무 팽배한 것 같다"는 언급을 하신 바 있다. 내셔널리즘은 차치하고서라도,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면, 경제 분야에서 한미 관계, 한일 관계, 일미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후카가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다지만, 실제로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려면 10~15년 정도는 걸린다. 특히 농·수산물 등 까다로운 분야의 개방에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는 셈이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다른 변수가 있을 것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가령, WTO 협상이라든지, 다른 나라와의 협상이라든지.
개인적으로는, 일본은 절대로 일미 FTA까지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미 FTA에 대응해) 몇 가지 개방·개혁 정책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변수들이 몇 가지 있으니까, 한미 FTA의 결과를 완벽히 예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한미 FTA가 변화의) 큰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프레시안: 일미 FTA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일본 언론에서는 "우리가 한국보다 늦었다', '뒤쳐졌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한국에서도 "그것 봐라, 우리가 일본보다 잘 하니까 일본이 부러워하지 않느냐", "일본이 위협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식의 자화자찬이 나오고 있다.
후카가와: (한미 양국이 FTA 협상에서) 합의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의, 아니 존중을 표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서) 한미 FTA를 부러워하는 분위기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 경제가 상당히 좋아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일본 사람들이 자국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한국 분위기와 완전히 다르다. 꼭 FTA를 해야 한다는 압력이 없어졌다. 오히려 그게 더 문제다.
프레시안: 경제는 그렇다 치고, 동북아 지역의 지정학에는 분명히 큰 여파가 미칠 것이다. 어떤가?
후카가와: 그렇다. 경제적 영향보다는 외교안보적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중국이 한중일 3국 동맹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자기네 중심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려고 했는데, 갑자기 한국이 미국 중심으로 가려고 하니 중국은 상당한 압력을 느낄 것이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이 한미 FTA를 통해 미국 쪽에 기우는 것이)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가는 것보다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경제 혁신은 해외생산이 아니라 국내시장에서"
프레시안: 일본 내에서는 한미 FTA가 일본 경제에 미칠 효과나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좀 있나?
후카가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일단 일미 관계라는 것을 봤을 때, 주력 산업의 기업체들은 이미 대부분 (미국) 현지 생산을 하고 있다. 물론 일본 생산 자체에 대한 영향이 어느 정도 있겠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 같다.
또 일본 업체들, 특히 미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들에 한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개 60% 정도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한국 측에서 보면 일본과 한국 간에 굉장히 치열한 경쟁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거꾸로 일본 쪽에서 봤을 때는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FTA라는 것에는 여러 가지 역동적인(dynamic) 요소들이 있다. 경쟁이 가격 경쟁만 있는 건 아니다. 서비스 품질 등 품질 면에서의 경쟁도 있다. 이런 면에서 (일본은 나름의)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일본 경제의 자신감'이라고 요약하면 되나?
후카가와: 일본 기업의 혁신은 해외생산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모두 국내시장에서 일어났다. 이런 점이 향후 일본의 한계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자기 나라 시장이 어느 정도 크다 보니까 무리해서 FTA를 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일본산 제품에 대한 한국의 관세는 이미 0%"
프레시안: 한국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인식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도 이에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깊다. 한미 FTA로 인해 이런 역학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이는데?
후카가와: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할 것인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지식 기반이니 고도 서비스, 즉 물류니 금융이니 그러면…. 물류의 경우, 일본의 생산성이 미국보다 높아졌다. 금융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아직도. 한국이 어떤 부분에 관심이 있는가에 따라 당연히 관심 대상도 달라질 것이다.
프레시안: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고, 한미 FTA가 발효되면 어쨌든 미국산 농산물과 공산품, 특히 자동차 부품, 전자기계 등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던 원자재나 중간재 관련 산업에서 미국의 경쟁력이 단기간 높아질 것이다.
후카가와: 당연하죠.
프레시안: 그래서 한국 내에서 일본이 한국과의 FTA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있다.
후카가와: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게, 일본의 환율이 계속 약세다. 한국의 관세가 8% 정도고, 수출 산업이 쓰는 수입 원자재나 중간재에 대부분 '관세환급 제도(수출용 제품 생산에 쓰이는 수입 원자재나 중간재에 대한 수입관세를 환급해 주는 제도)'가 적용된다. 사실상 일본 기업들에 있어 한국의 관세가 제로(0)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큰 충격이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한국이 그동안 일본산 제품을 써 왔기 때문에 갑자기 미국산 제품으로 바꾸려면 익숙해지는 데 비용(cost)이 들어갈 것이다.
프레시안: 소위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를 지적하는 것 같다. 이런 시각이 일본 재계나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인가?
후카가와: 물론 우리가 무작정 안심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어떤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 접근(market access) 등에서 변화가 생기는 게 시장의 당연한 반응이니까. 한국 측에 상당히 유리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시험대가 된 한국? 그 반대도 가능했다"
프레시안: 미국의 무역구제, 특히 반덤핑 조치가 한미 FTA의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이 얻어내지 못하면 경제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협정이 될 것이라고 하신 바 있다. 무역구제 위원회의 설치 등 지금 협상 결과가 일부 나왔다. 어떻게 평가하나?
후카가와: 무역구제는 한국 측이 기대했던 만큼 다 얻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원래 그런 것이다.
WTO(세계무역기구)라는 다자 간 체제가 있는 한, 아무리 양자 간 FTA라고 하더라도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수혜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WTO에 대한 준수(compliance) 자체에도 미국은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비판받는데, (미국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무역구제 관련 수혜를 줬다고 하면) 또 시끄러워질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EU(유럽연합)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측에서도 한국이 한미 FTA에서 획기적인 뭔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프레시안: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 등 개성공단 관련 협상 결과는 어떻게 보나?
후카가와: 두고 봐야 한다. 미국이 아주 애매하게, 어떤 식으로든 이해할 수 있도록 굉장히 전략적으로 협상을 했기 때문에. 결국 북미 관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미국이 (개성공단 관련 한국 측 요구를) 다 받아줬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
프레시안: 후카가와 교수의 발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 "한미 FTA, 우리에겐 좋은 기회다. 일본이 미국이나 한국과 FTA를 맺으려고 할 때, 한미 FTA가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약간 기분 나빠 하는 말이기도 하다.
후카가와: (웃음) 일본과 한국의 산업구조가 비슷하니까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에게 먼저 가라고 등을 떠민 적도 없고, 한국이 스스로 해주는 거니까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했다. 일본이 먼저 (미국 등과) FTA를 맺어서 한국이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었겠는가.
프레시안: 오늘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후카가와: 한미 FTA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중요하다. <프레시안>을 잘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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