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심판>의 첫 시작이다. 죄 없는 K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 명의 형사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죄가 없다고 항변해 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가관인 것은 형사들의 반응이다. 그들 역시나 K의 죄를 모른댄다. 그러나 K는 여지없이 체포당하고 만다. <심판>은 이렇게 죄 없는 K가 자신의 '없는 죄'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상한 이야기다. 작금의 영화인들은 이처럼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되어 있다. 어느 날 아침에 잘 자고 눈을 떠보니 난데없이 죄인이 되어 체포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없는 죄'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K처럼 힘겹게 싸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영화 다양성의 기반이 되었던 핵심사업들을 송두리째 폐지했다. 어렵사리 잘 꾸려오고 있던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의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있는 중이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의 근간이 되었던 '독립영화제작지원'과 '예술영화제작지원' 등은 전액 삭감했고, 독립/예술영화 상영에 앞서왔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 영상문화의 저변 확대에 앞장섰던 영화단체들의 사업지원은 크게 감소시켰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폐지 이유로 들고 있는 사업들의 '죄'들은 이미 여러 지면을 통해 반박되고 있는 것처럼 타당성이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선정과정에서 보여준 불공정성과 최근의 독립영화제작지원사업에 대한 조희문 위원장 낯 뜨거운 외압설 등이 오히려 죄라면 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많은 영화단체와 영화인들은 마치 <심판>의 K처럼 난데없이 덮어 씌워진 '없는 죄'를 무죄라고 증명하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싸움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 영화의 K(들)이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 열폭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 영화 다양성의 기반을 송두리째 해치는 갑작스런 정책 변경과정에 있어서 그간 성실하게 일해 온 영화계의 입장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2011년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꾸려나가는데 있어서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영화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대화를 해 나가야한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영화'의 '진흥'을 위하는 곳 아니던가.
<심판>의 마지막은 더욱 끔찍하다. 자신의 '없는 죄'를 증명하기 위해 1년 간 고군분투하던 K는 아무런 성과 없이 누군가에게 끌려가 갑작스레 사형에 처해진다.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에. 아무쪼록 그런 끔찍한 사형 선고가 한국 영화의 '죄 없는 K(들)'에게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K를 체포한 '그들'에게 질문해 본다. 죄 없는 K는 왜 체포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아무쪼록 성실한 답변을 기다린다.
최진성 : <뻑큐멘터리 박통진리교>, <그들만의 월드컵>, <에로틱 번뇌보이>, <저수지의 개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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