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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분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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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먹을거리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분명한 이유"

[도시인을 위한 농업 이야기·8] 먹을거리 공동체

그동안 농산물은 시장을 통해 교환되었다. 농민은 생산된 농산물을 시장에 판매하였고 소비자는 필요한 농산물을 시장을 통해 구입하였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는 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농업에 대해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농업과 시장 사이의 모순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며 상품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회다. 즉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농산물 역시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그 연장선에서 농산물은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럴 때 비교우위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시장과 그것의 세계적 확장으로서 자유무역은 농업이 지닌 다원적 가치를 부정한다. 시장은 오로지 상품화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논 농사의 경우 상품화 가능한 쌀만 가치를 인정받을 뿐 상품화되지 않는 생태 보전, 산소 공급, 홍수 조절 기능 등의 다원적 기능은 가치 평가에서 배제 된다.
  
  문제는 농업 생산 활동은 상품화 가능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분리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쌀 생산을 포기하는 순간 논이 수행해 온 다양한 기능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점은 국제무역의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면 상품으로서의 쌀은 수입 가능하지만 생태 유지 등 논의 다원적 기능은 결코 수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산물이 자유무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 근거한다.
  
  그동안 정부 인사나 학자들,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는 개방농정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으로 생태농업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출발부터 자유무역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상업적 환경농업을 추구하는 농민들 숫자가 늘어 왔다.
  
  이는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생태농업이 처음부터 시장경쟁의 포로가 될 때 결국은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한 소수만이 살아남게 된다. 생산성에서 뒤떨어진 나머지는 망하거나 다시 지겨운 관행농업으로 복귀하고 말 것이다. 결국 생태농업으로의 전환은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전 국민적인 먹을거리 공동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하고 그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장경제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산물이 자유무역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생산-유통-소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 국민적인 먹을거리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먹을거리 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은 일차적으로 지역순환경제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지역순환농업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줄여준다. 공간적 의미에서 거리를 좁히는 데 머물지 않고 도시농업 활성화를 통해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인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정한 지역 안에서 생산된 것을 직접 배달이나 농민장터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생산과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통합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생산 활동을 원만히 보장하자면 필요한 기금 확보 등 다양한 장치를 반드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역책임농업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선구적 실험이 진행되어 왔다. 친환경 먹을거리 공급을 목적으로 삼는 도시 지역의 생활협동조합은 지역책임농업의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역순환경제는 그 자체로 모든 문제를 완결 지을 수 없다. 도시 지역의 경우는 식량을 위시하여 필요한 먹을거리를 조달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보다 큰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도 지역순환경제와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즉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가 직접 결합하고 생산과 유통을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도시 곳곳에 매장을 갖추고 있는 농협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사례가 많은 참고가 된다. 일본의 농업협동조합은 18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 일본 농민은 생산물의 거의 60% 가량을 농협을 통해 판매한다. 이런 농협들은 점차 직영매장과 농민장터를 세우거나, 또는 조합원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판하고 있다.
  
  일본의 농협이 작동시키고 있는 여러 장치 중에서 농민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테이케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직역하면 '협력관계'가 되는데,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결합하는 먹을거리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테이케이가 종종 농민의 얼굴이 새겨진 먹을거리로 통용되는 이유가 있다. 최근의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 800에서 1000개의 테이케이 단체가 있으며, 그 조합원은 1500만 명, 연간 매출액은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 이 중 대부분은 먹을거리의 질이나 상점에서의 값비싼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여성들이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소규모 단체들은 10~30가구가 농민 한 명과 함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큰 단체는 140만 이상의 회원과 일본 전역의 농민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여러 나라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 국민적인 먹을거리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회의 촉매제로서 먹을거리 공동체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유사 이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 활동이다. 그만큼 사회 각 방면에 미치는 영향이 깊고 넓다. 지금부터 먹을거리 공동체가 일으킬 수 있는 파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안전성은 먹을거리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생산 과정을 함께 책임지는 전국적 먹을거리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가 일치되고 통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농업생산 활동은 기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것을 위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 국민적인 먹을거리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전 국민적인 생태 네트워크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인간 삶의 양식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에 해당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시장경제에 중독되어 있는 현대인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 구실을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원리는 기본적으로 수많은 사적 소유자 간의 끝없는 경쟁이다. 이에 반해 먹을거리 공동체는 '공유와 협력'이라고 하는 사적 소유와 경쟁에 대립되는 원리를 기초로 삼고 있다.
  
  생활협동조합 등 먹을거리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은 결코 특정 개인의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참여자 모두의 공동자산이다. 유통기업으로 변질되는 조짐도 없진 않지만 대세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먹을거리 공동체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 구성원 간의 협력이 우선하고 있다. 개인적 소유와 시장경쟁이라는 장치가 여전히 작동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보조적 의미가 있을 뿐이다.
  
  시장 이외의 질서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한낱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래서 진짜 뜬 구름 잡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1854년, 미합중국 대통령 피어스는 백인 대표단을 파견하여 원주민(인디언) 부족이 살아 온 땅을 팔 것을 제안했다. 지금의 워싱턴주에 해당하는 인디언들의 삶터를 차지하는 대신 인디언 보호구역을 주겠다는 것이 백인 정부의 제안이었다. 그러자 몸집이 장대하고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다고 전해지는 시애틀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늘이나 땅의 온기, 공기의 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쌀 한 톨 속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 한 톨의 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하늘이 내리는 비와 바람, 땅의 온기, 반짝이는 물 등과 수많은 작용을 거친다. 이 과정 전체를 시장에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평가를 절대시한다면 이는 사람을 노예로 팔고 사고 인간의 성을 매매하는 것처럼 측정 불가능한 가치에 가격을 매기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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