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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진짜 바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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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진짜 바보는 누구인가?

[한미FTA 뜯어보기 468][송기호의 FTA 뒤집어보기(4)] '우리가 버린 것'의 실상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뭘 몰라서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이미 '경제연계협정(EP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자국만의 FTA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전문 숙련 노동력의 일본 진출을 수용하는 것을 포함해, 전체로서의 일본의 경제적 이익 달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EPA 전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본 농업에 대한 고려다. 일본은 2002년 1월 싱가포르와 최초의 EPA를 체결했을 때 싱가포르 전문 노동력의 일본 진출을 허용하면서도 일본 농산물 시장을 사실상 완전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일본의 FTA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METI)이 2005년 발표한 '일본의 EPA/FTA 정책'에서 미국과의 EPA 추진이 일정표에 아예 들어가지 않은 것도 이런 전략적 고려에서였다.

일본은 왜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나?

누군가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FTA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지배세력의 농업에 대한 관점 차이가 그 답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미 2002년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과 농업 개방을 포함한 FTA를 할 경우에는 그로 인한 충격과 후생 손실이 일본이 싱가포르, 한국, 중국, 아세안(ASEAN) 4개국 모두와 FTA를 할 경우보다 약 3.6배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스즈끼 노부히로 교수 저, <FTA와 식료>, 23쪽에서 재인용).

이런 연구 결과는 올해에도 다시 확인됐다. 일본의 내각설치법에 따라 구성된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지난 2월 27일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철폐해 일본 농업이 세계 농업과의 경쟁에 전면 노출될 경우, 일본 농업 생산액의 42%가 감소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또 이 보고서에서는 일본 농업이 세계 시장에서 완전경쟁에 노출될 경우 일본의 식료 자급률은 12%(칼로리 기준)로 떨어지고, 농민 포함 식품산업 관련 종사자 375여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됐다.

일본의 연구가 옳은지, 앞으로 일본이 내부 토론을 거쳐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농업을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쌀은 지키지 않았느냐고?

한미 FTA에서 쌀은 지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올해 한국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외국쌀은 모두 27만 톤이고, 이 의무 수입량은 매년 증가해 2014년에는 40만 톤이 넘는다. 문제는 일단 쌀 의무 수입량이 늘어나면, 이를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앞으로 4~5년 안에 쌀을 전면 개방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때 가서 미국과 다시 관세율 철폐 협상을 벌어야 한다.

게다가 <농민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쌀 소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했던 쌀빵과 찐쌀에 대해서도 한국은 10년 안에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관세철폐 기간을 15년이나 10년, 즉 장기로 두었다고 말하지 말라.

중요한 사실은 그 기간이 지나면 이들 농산물에 대한 관세가 영원히 없어진다는 점이다. 관세가 없어진다는 말이 당장은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 농업이 미국 농업과의 경쟁에 전면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는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13년째 되는 해다. 그 사이에 한국은 농산물 일반 관세율에 대해 평균 24%의 감축을 요구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의 관세철폐 기간이란 그 기간 동안 관세율을 100% 다 없애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보리, 옥수수, 감귤류, 후지 사과, 복숭아, 감, 고추, 마늘, 양파, 참깨 등에 대한 관세가 머지않아 완전 철폐된다. 이는 한국 농업이 경험하지 못한 근본적으로 다른 충격이다.

한-칠레 FTA도 괜찮지 않았느냐고?

한-칠레 FTA에서도 괜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게으른 자들이다. 한-칠레 FTA의 농산물 양허표(관세철폐 계획안)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자들이다.

한국과 칠레 양국은 양자 간 FTA에서 쌀, 보리, 콩, 옥수수, 쇠고기, 돼지고기(냉동 도체, 설육), 닭고기, 감귤, 오렌지 주스, 감, 사과, 배 등 대부분의 주요 농산물을 사실상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WTO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산 농산물 수입액은 FTA 발효 전인 2003년 약 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5000만 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칠레 농산물이 미칠 영향은 향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것이다.

저율관세할당(TRQ)이란 무엇인가

한미 FTA에서 우리가 지금까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한국이 미국에 약속한 무관세 수입량 쿼터, 즉 저율관세할당(TRQ, 일정 수입량에 대해서는 무관세 혹은 저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한국은 한미 FTA에서 미국에게 옥수수 등 여러 농산물에 대해 무관세 수입량 쿼터를 부여했다.
▲ ⓒ프레시안

워낙 중요한 사항이니 글이 조금 길어지는 데에 양해를 구하고 싶다. 무관세 수입량 쿼터의 맥락을 알려면 먼저 관련 WTO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WTO 체제에서 농산물 수입국은 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없애면서 높은 관세율(일반관세율)을 설정했다. 그 대신 일정 수량만큼은 아주 낮은 관세율(저율관세율)로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옥수수(사료용 및 기타용)의 일반 관세율을 328%로 매겼다. 그 대신 연간 약 610만 톤의 옥수수를 1.8~3%의 낮은 관세율로 수입하겠다고 WTO에 약속했다. 그러니까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두 개의 극단적 관세율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계속 옥수수를 사례로 들면, 한국은 2004년 기준 850만 톤이 넘는 옥수수를 미국과 중국, 브라질 등에서 수입했다. 이는 WTO에 약속한 수량 610만 톤에서 약 220만 톤이나 초과한 것이었다(수치는 서진교 대외경제정책 연구위원의 연구에서 재인용).

한국은 이 850만 톤의 옥수수 전량을 전부 낮은 관세율로 수입했다. 하지만 초과 수입 물량인 220만 톤은 한국이 WTO에 약속한 저율관세 적용 쿼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한국은 이 220만 톤의 옥수수에다는 고율의 일반관세율을 적용시킬 수 있었다.

7년 후 관세율…중국산 옥수수는 328%, 미국산 옥수수는 0%

이러한 현실에서 한미 FTA를 읽자. 한미 FTA에서 한국은 옥수수에 대한 관세를 7년에 걸쳐 폐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향후 7년 간 해마다 미국산 옥수수에 대한 일반관세율이 45%포인트씩 자동으로 낮아진다.

반면 미국산 옥수수와 경쟁하는 중국산 옥수수에는 여전히 328%의 일반관세율이 부과된다. 한중 FTA가 없다면, 7년 후에 미국산 옥수수는 무관세인 반면에 중국산 옥수수에는 328%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 얼마나 극단적인 특혜인가?

한국은 이미 옥수수 850만 톤 전부를 저율관세율로 수입하고 있지 않냐고? 앞서 보았듯, 한국은 WTO에 약속한 수량 610만 톤을 초과한 220만 톤에 대해서는 고율의 일반관세를 매길 수 있다. 머지않아 미국은 한국에 이를 요구할 것이다.

만일 한국이 이를 수용한다면, 한국이 WTO 약속 수량을 초과해 수입하는 옥수수는 모두 미국이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328%의 관세가 부과되는 중국산 옥수수는 FTA 특혜관세를 적용받는 미국산 옥수수와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한미 FTA를 자유무역이라고 부르는가?

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자유무역이라고 부르는가? 이 협정은 자유무역의 왜곡이다. WTO 다자주의 질서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이 협정은 세계 4위의 거대 농산물·식품 시장인 한국에서 미국의 이익을 차별적으로 보장하는 인위적 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한미 FTA로 한국이 미국 시장을 선점했다고 하는가? 무슨 시장을 선점했는가? 섬유 시장? 미국으로부터 섬유 FTA 특혜 관세를 부과 받는 나라는 이미 70개 나라가 넘는다.

'선점'이란 한국 농산물 시장에서의 미국을 위한 단어일 수는 있어도 미국 섬유 시장에서의 한국을 위한 단어일 수 없다. 미국은 이러한 특혜 구조에 더해 7년 간 총액 약 169만 톤의 옥수수(기타용)를 무관세 수입량 쿼터로 배분받았다.

그런데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놓고 중국, 캐나다, 브라질, 호주 등과 경쟁하고 있는 미국이 무관세 수입량을 따 낸 분야는 옥수수뿐만이 아니다. 식용 콩, 식용 감자, 감자분, 보리, 전분, 팥, 고구마, 오렌지 등이 더 있다.

이처럼 한국의 농산물·식품 시장에서 미국에게 극단적 특혜와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한미 FTA이다.

이른바 농산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즉 미국 농산물의 수입이 급증해 국내 농업이 피해를 볼 경우 긴급 관세를 매기는 제도를 따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이미 WTO가 보장하고 있는 제도다.

게다가 중국 마늘에 부과했던 이 조치를 중국과의 이면합의로 무력화시켰던 한국 정부가 아닌가. 이런 정부의 태도로 볼 때, 한국이 미국을 대상으로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것으로는 기대되지 않는다.

지금은 우쭐거리는 한국, 그러나…

한미 FTA가 실제로 발효되면 호주, 중국, 유럽연합(EU), 브라질 등 한국의 농산물·식품 시장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농산물 수출국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우쭐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앞에는 고통스런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 농업을 저가 시장에서부터 고가 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킬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장기간 보장할 것인가?

필자는 한국의 지배 세력이 농업 시장을 국제경쟁에 전면 노출시키겠다는 지금의 겉모습과는 달리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무엇을 근거로, 일본과 달리 농업을 국제경쟁에 노출시키기로 결심할 수 있었을까? 과연 그들은 대책이 있는가?

조금만 부지런한 독자라면, 농림부가 지난 4일 국회에 보고한 '한미 FTA 농업 부문 협상 결과 및 대책방향'이 한국이 1993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내놓았던 농업 대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투융자 예산을 재조정하겠다'는 문구도 동일하며, '규모화를 촉진하겠다'는 단어도 같다. '농가유형별 차별화된 정책지원을 하겠다'는 것도 같다. 이를 위해 그때는 '농가대장'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농가등록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20년이나 묵은 농업 대책

한국에서 '개방을 통한 농업 경쟁력 강화론'이 대두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다. 그 시기가 미국 농업이 과잉 생산과 수출 감소로 미증유의 위기를 겪은 때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한국의 지배세력의 대책은 20년이나 낡은 것이다.

필자는 2004년에 출간한 졸저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에서 농업을 WTO에 맡길 수 없으며, 한국 농업의 특징을 담을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식료 체계의 마련을 촉구했다. 또 농업 담당 세력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즉, 농업인들이 소비자의 변화에 맞춰 농업 자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미 FTA가 바로 이러한 질적 전환에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농업의 이익과 어긋나는 미국식 식료 체계를 이식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 농지를 단위면적당 약 55배 싼(2004년 기준) 미국 농지와의 경쟁에 전면 노출시킴으로써 아예 농업 자원으로서의 한국 농지가 지닌 의의를 전면 부정하기 때문이다(수치는 농촌경제연구소 자료에서 인용).

한국은 집안 대들보를 찍어 'FTA 불'을 때고 있다. 옆집 일본이 놀라는 모습을 내심 즐기고 있다. 중국이, 유럽이 불을 쬐려 달려들자 우쭐대고 있다. 진짜 바보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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