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그 동안 다양한 시각에서 한미 FTA에 대한 글을 기고해 온 송기호 변호사가 '한미 FTA와 농업, 그리고 위생검역'이라는 주제로 몇 차례에 걸쳐 기고문을 연재한다.
송 변호사는 기존의 논란을 뛰어넘어 아직 국내에서 잘 다뤄지지 않고 있는 주제인 미국 측 농산물 시장의 개방 수위, 광우병 쇠고기 논란의 새로운 측면, 유전자조작생물체(GMO) 위생검역 기준의 완화 등에 대해 글을 쓸 예정이다. 이 연재는 기고자의 요청으로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삼계탕을 찾았다. 식당이 아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발표에서. 한미 FTA를 추진한 통상관료들은 일찍이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삼계탕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삼계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농산물 시장이다. 2002년 미국이 수입한 농산물이 400억 달러가 넘는다. 하도 많이 농산물을 수입하다 보니,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순수출액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면 미국은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입국인 뉴질랜드와 태국에게도 밀릴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광대한 미국의 농산물 시장은 한미 FTA 협상에서 어떻게 처리됐을까? 놀랍게도 미국 측의 농산물 시장 개방 내용은 외교통상부의 '한미 FTA 분야별 최종 협상결과'에서도, 농림부의 대국회 보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예 통째로 빠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국 정부가 고의로 협상 결과를 숨기려고 그 결과를 통째로 발표에서 뺄 정도로 나쁜 정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경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미국 측 협상단은 협상장의 셔터가 닫히는 바로 순간에 미국 측 농업 개방안을 휙 던져 주곤 셔터를 내려 버렸다. 그리고 협상 타결 선언을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한국 측 협상단을 재촉했다. 아마 지금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던져준 최종안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발표에서 통째로 빠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정부에게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이라도 미국 측 최종 농업 개방안에 대해 협상을 계속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선 30개가 넘는 산업분야별 위원회에서, 700명이 넘는 산업계 대표들이 협정문을 검증하고 있지 않는가! 이들이 5월 2일까지 협정문을 검증하고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미국 통상법 절차가 가동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이 기간에 미국 측 최종 농업 개방안에 대해 검증하고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 측 농업시장 개방 협상은 종료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에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아직도 한국에서 도축되는 축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생 검역이다. 미국은 미국으로 축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해외 도축장(Eligible Foreign Establishments)'을 지정하는데, 여기에 한국의 도축장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은 축산물을 미국에 수출할 수가 없다. 게다가 미국은 닭에서 발생한 뉴캐슬 병원체를 이유로 멸균 처리된 삼계탕에 대해서도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삼계탕 발언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서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 광우병 미(未)발생국인 한국의 쇠고기 위생검역 조치를 완화하라고 압박하고 사실상 이를 관철했는지를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도 한국산 축산물에 대한 미국의 수입금지 조치를 완화하라고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은 외국산 쇠고기에 대해 26.4%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이같은 고율 관세 외에도 저율관세할당(TRQ, 정해진 수입물량에만 저율 관세를 적용하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자국의 쇠고기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2002년 미국은 4.5%의 TRQ가 적용되는 약 69만 톤의 쇠고기 수입량을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에 나눠줬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한국의 쇠고기 관세율 40%를 15년에 걸쳐 없애기로 했는지를 잘 봤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역시 미국이 한국산 쇠고기에 매기는 26.4%의 관세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미국이 외국산 농산물에 매기는 고율의 관세들, 이를테면 버터 80%, 무지방분유와 전지분유 53%, 돼지고기 17.4%, 가공식품 11.4%, 일부 야채 6.8%의 관세도 이와 마찬가지로 철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국은 '농산물 테러 방지법(Bioterrorism Act)'을 이유로 한국이 농산물을 미국에 수출할 경우 공장 등록제, 미국 대리인 지정제, 사전 신고제 등의 여러 가지 비관세 무역장벽을 쳐 놓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한국의 광우병 위생검역기준을 무너뜨렸는지 잘 배웠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농산물 테러 방지법과 같은 장벽도 철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혹자는 물을지 모른다. 한국산 농산물이 미국의 농산물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이런 분에게 일본 농림성의 '2006년 백서'를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일본 소비자의 50%가 자신의 식품 선택 기준은 '건강과 식품안전 지향'이라고 밝힌 반면 '가격 경제성 지향'은 25%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농산물 소비자는 가장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결코 싼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식품은 하나의 문화이며 습관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농산물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우선 허용돼야 한다.
필자는 미국이 협상 마감시한에 맞춰 한국에 최종 농업 개방안을 던지고 곧바로 타결 선언 기자회견장으로 간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자국의 민감 농산물과 위생검역조치를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미국은 호주와의 FTA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농산물의 19%인 342개 품목을 관세철폐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수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박사의 연구에서 인용).
지금 미국 측 농업 개방 협상은 협상 타결 선언의 덫에 갇혀 있다. 무리하게 타결 선언을 했다고 비판하지 않을 테니, 이제부터라도 미국 측 최종 개방안에 대한 협상을 제대로 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미국 농산물 시장을 열어주기 바란다. 김현종 통상본부장에게 애초 약속한대로 미국에 삼계탕을 수출할 길을 열어 줄 것을 요구한다. 대통령도 농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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