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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한미FTA 뜯어보기 446 : 기고] 농업은 한미FTA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지난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다.

이날 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며 "민족적 감정이나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접근할 일은 아니다"라고 운을 떼며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미 FTA는 정부가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벌인 협상이었다"면서 "정부는 철저히 따져 이익과 원칙을 당당히 지켜냈다"고 말했다.

조중동의 '盧비어천가'

3대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다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협상이 타결된 당일 씌어진 기사와 칼럼 가운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미 FTA 체제는 한국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연결해주는 '글로벌 고속도로'를 의미한다." <조선일보>

"한국-미국 간의 무역 국경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 최강인 미국과 경쟁을 하게 됐고 이는 외환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가 자극을 받아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아일보>


특히 <중앙일보>의 문창극 주필은 '복 있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노무현 대통령을 '위대한 국가적 지도자'인 것처럼 칭송했다.

"현대사 50년에서 복 있는 나라를 찾는다면 아마 한국이 그 첫 번째로 꼽힐 것이다. (…)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반미적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한ㆍ미 FTA를 성사시켰다. (…) 정치인이 자기 정파를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정파를 벗어나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는 국가적 지도자(Statesman)라고 부른다. 결정적인 시기에 전혀 그렇지 않을 법한 대통령이 이런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복 있는 나라라는 증거다." <중앙일보>

한 노동자의 '분신'과 한 농민의 '총기 난사'

청와대와 조중동 등 유력 일간지의 희망찬 메시지와는 달리 협상 타결을 전후해 우울한 소식도 잇달아 들려왔다.

협상 타결 전날인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56살의 택시 노동자 허모 씨가 자신의 몸에 휘발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붙이고 분신을 시도했다. 이어 지난 3일 경북 예천에서는 협상 결과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던 한 농민이 공기총을 난사해 1명이 죽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바와 같이, "한미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며 "이익과 원칙을 당당히 지켜냈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농민들의 좌절과 시름은 깊기만 하다.

'개방'은 한국의 '민족적 신앙'?

미국과 구소비에트연방을 양대 축으로 한 동서이념 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이후 국제관계는 이익과 실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로 급속히 재편됐다. 국제화는 곧 개방화로 이해되었고, 인터넷의 발달은 그 촉매제 역할을 수행했다.

더욱이 1997년 말 한국이 경험한 외환위기는 '개방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을 촉발했다. 이제 '개방화'는 하나의 '민족적 신앙'처럼 숭상되는 듯 한 분위기다.

어느 누군들 '개방을 통한 국가 경쟁력의 강화'를 바라지 않겠는가? 문제는 개방이 언제나 농민의 희생과 눈물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한미 FTA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쌀 시장은 개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쌀 외의 모든 농산물이 협상의제가 됐고 결국 개방됐다.

농산품은 공산품의 한 종류가 아니다

'개방과 농업 보호',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또한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농업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역시 세계 제 1의 농업국가로서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공동 농업 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을 실시하고 있는 유럽연합(EU)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있어 농업 정책은 모든 정책의 근간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국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막대한 농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는 또 어떤가? 이미 별도의 'WTO 농업협정'이 체결돼 시행되고 있지만, 매 협상시마다 농업은 '뜨거운 감자'로 다뤄진다. 개별국가가 아니라 국제적인 통상기구인 WTO에서조차 농업은 왜 이렇게 중요한 사안으로 다뤄지고 있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농업이 '다원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농업은 무역을 통해 달성할 수 없는 농업만의 고유한 역할, 가령 식량 안보, 환경 보전, 전통 보존, 농촌지역의 경제 및 사회적 활력 유지 등의 역할을 한다.

이같은 역할을 하는 농업을 통해 생산된 농산품은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특정 국가 혹은 특정 지역의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를 '비(非)교역적 관심사항(NTCs, Non-Trade Concerns)이라고 한다. 즉, 농산품은 일반 경제 및 무역이론에 입각해 볼 때도 공산품과 동등하게 취급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대로 '철저히 경제적 실익'에 입각해 한미 FTA 협상 결과를 평가하면, 공산품 시장은 어느 정도 활성화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농산물 시장, 종국적으로는 우리의 농업과 농촌경제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쌀 시장 하나만 개방하지 않으면 능사인가"

개발론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경제적 효용이 떨어지는 농업은 포기될 수도 있고, 어쩌면 포기돼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농업은 경제적인 측면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농업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의 유지ㆍ보존 및 전승, 그리고 환경 보호의 맥락에서 파악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농촌 경제는 상당히 취약하고 불합리한 기반 위에 서 있다. 게다가 농촌 인구는 이미 노령화돼 있어 농촌 지역은 거의 활력을 잃은 실정이기도 하다.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는 총리 지명 전 인사청문회에서 "한미 FTA 협상에 쌀이 포함된다면 이번 협상은 깨진다"며 쌀 시장의 추가 개방은 불가능하다는 강한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과연 쌀 시장 하나만 개방하지 않는 것이 능사인가? 축산, 과수 등 기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는 어찌할 것인가? 소득보전직불금과 폐업지원금만으로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농업 보호는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한 찬반투표의 결과에 따라 취급될 문제가 아니다.

개발과 개방의 논리 속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우리의 농촌과 농민을 어찌할 것인가? 그 어느 누가 힘없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인가?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그들이 울고 있다. 우리의 형제자매인 그들이 좌절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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