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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령화사회를 재앙이라고 하나"

[도시인을 위한 농업 이야기·5] 고령화사회와 농업

도시농업이 낯설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품는 수많은 의문 중의 하나는 과연 누가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것이냐의 문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들의 경우는 대체로 실업자들이 생계수단으로 도시농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농업으로 유명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역시 실업자들에 의해 도시농업이 개척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많은 직장인은 주말농장 형태로 나름대로 도시농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도시농업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실업자의 생계수단으로서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나 여건이 성숙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도시농업의 주체는 바로 노인들이다. 60세 이상 도시 거주 노인의 다수는 농촌 출신으로서 농사 경험이 있다. 이들에게 농사는 노동 강도만 적절하게 조절하면 가장 적합한 사회 활동이 될 수 있다. 경제 자립, 건강 관리, 정서 함양, 사회 공헌, 등 노인들이 안고 있는 숙제를 상당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도시의 노인들 모두를 도시농업으로 흡수하기는 힘들다. 가능한 도시농업의 규모에 비해 노인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농업은 새로운 노인복지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 최대 이슈 중 하나인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열쇠, 바로 도시농업이다.

고령화사회, 재앙 아니다

대략 2023년을 지나면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이런 초고령사회에서는 소수의 경제 활동 인구가 다수의 노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초고령사회가 다가오면서 노령층, 비노령층 모두 심리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우선 경제 활동을 하는 비노령층은 저 많은 노인을 자신의 손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암담하다. 반대로 노령층은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죄라도 짓는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균 수명 연장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불길한 조짐은 이미 국민연금 문제로 불거졌다. 머지않은 장래에 국민연금이 바닥 날 것이라는 심상치 않은 경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갖가지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속 시원한 답이 못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이 뚜렷한 사회활동 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본인들이 의사나 능력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것은 '오륙도', '사오정'이라는 말 속에서 드러나듯이 조기 정년퇴임을 강요하는 구조의 결과다. 충분히 일할 수 있고 또 일하기를 원하는 노인들을 강제로 앉혀놓고 밥을 떠먹이는, 참으로 우스꽝스런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노령층을 사회적 부양 대상으로 전제하는 한 결코 해답이 나올 수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노령층을 부양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생산 활동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즉 노령층을 자립적이며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능동적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사회복지는 이러한 활동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도시농업은 바로 그러한 노령층의 자립적 생산 활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도시농업을 통해 노령층이 자신을 부양하면서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전통사회 속에서 새로운 사고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향약 공동체가 던져주는 시사점

농업은 오랫동안 지역 공동체의 기반이었다. 오늘날에도 농업의 주요한 가치 중의 하나로 지역 공동체 유지를 꼽는다.

전통적인 농업은 가족농 간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가 없었다. 모내기 등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요구될 때는 부락 단위 공동노동이 필요했고 수자원과 삼림 등을 공동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로부터 두레와 같은 노동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은 그러한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는 농업 생산 활동을 원만하게 보장하면서 동시에 포괄적인 사회복지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여러 가지 형태의 지역 공동체가 모색돼 왔다. 조선 시대에 와서 그런 노력은 향약 공동체로 꽃을 피우게 됐다.

지역 공동체로서 향약은 세계 역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연한 체계를 갖췄다. 향약은 봉건지배 체제 아래 놓여 있었다는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발언하고 대표자를 선출했다는 점에서 매우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향약 공동체의 이념은 대동사회 구현이었다. 중국 고전 예기에는 대동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에는 공의가 구현된다. 현자를 (지도자로) 뽑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관직을) 수여하며 신의와 화목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인으로 하여금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하며 장년은 일할 여건이 보장되며 어린이는 길러주는 사람이 있으며 (의지할 곳이 없는) 과부와 홀아비를 돌보며 병든 자도 모두 부양받는다. 남자는 남자의 일이 있고 여자는 여자의 일이 있다.

재화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꺼려 하지만 반드시 (사적으로) 저장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노동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자기만을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려는) 음모가 생기지 않으며 도적이나 난적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집집마다) 바깥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이런 상태를 대동이라 한다."


이러한 대동사회 이념은 향약의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등의 자치 규약으로 구체화되었고 다양한 실천 강령을 낳게 되었다. 이중에서 오늘날 지역 사회복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환난상휼은 공동체 성원들이 철저한 무보수 원칙에 입각해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을 지향했다. 그럼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은 매우 끈끈한 인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는 푸근한 시골 인심의 원천이기도 하였다.

향약 자치 공동체에서 기본 단위가 되었던 것은 대가족이었으며 이를 기초로 리더십을 발휘했던 집단은 바로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대가족 단위로 보육과 교육, 건강관리 등을 책임졌으며 협동 노동을 지휘 감독하였고 관혼상제 등 공동체 문화를 주관하였다. 또한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도덕률을 확립하는 것 또한 노인들의 몫이었다.

이런 점에서 향약 공동체에서 노인들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는, 단순한 부양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엄밀히 말해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 집단이었다. 노인들의 한마디가 곧 법이고 명령인 사회였다. 경로사상이 특별히 강조되었던 것은 그러한 공동체의 지도력 확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향약 공동체의 운영 원리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곧 노인들이 관장하는 지역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갖가지 사회복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앙으로서의 초고령사회가 아닌 축복으로서의 장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도시농업은 매우 의미 있는 촉매제 구실을 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연재를 기대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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