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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타결의 제물로 삼기엔 너무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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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타결의 제물로 삼기엔 너무나 위험하다"

[한미FTA 뜯어보기 364 : 기고] '비위반 제소'의 진실과 거짓말

미국의 통상법에서 정한 협상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한국 협상단은 양보안을 보따리로 내 놓았다. 쇠고기나 자동차와 같이 협상 자체를 깰 수 있는 일부 사안들을 제외한 나머지 쟁점들을 정리한 후 최고결정권자의 '결단' 수순을 밟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협상 타결 자체만을 위한 양보안에는 공공 정책의 포기 선언에 가까운 것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비위반 제소'란 어려운 법률 용어로 포장된 제도다.

더 큰 문제는, 한미 FTA의 숱한 쟁점에 대해 그 동안 해 왔던 것처럼 비위반 제소에 대해서도 정부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거짓말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비위반 제소'에 대한 정부의 2가지 거짓말

첫째, WTO나 GATT와 같은 국제통상규범에서 인정하고 있는 제도를 한미 FTA에서 받아들인 것 뿐이고, 둘째, 공공정책이 훼손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통상규범에 들어 있는 비위반 제소와 미국식 FTA에 포함된 비위반 제소를 서로 비교해 보면, 정부측의 거짓말이 금방 드러난다. 만약 정부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정부측의 주장은 미국식 FTA의 비위반 제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서 협상을 하는, 그야말로 협상 능력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닐 비(非)'와 '위반', 이 두 단어가 결합된 '비위반'이란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위반 제소'는 협정 위반이 아닌 경우에 생기는 분쟁을 말한다. FTA 협상도 일종의 약속이므로, 한쪽 당사자가 약속을 어기면 상대방이 분쟁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지도 않았는데 분쟁을 제기할 수 있다니, 참으로 상식에 어긋난다. 이처럼 상식에 반하는 비위반 제소는 GATT/WTO나 FTA와 같이 국가간의 무역을 대상으로 삼는 국제통상법 이외의 다른 국제법 질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질적인 제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초로 성립한 다자간 통상협정인 GATT는 협상 결과를 보전하기 위해 협정국들 사이의 '이익 균형'(balance of interests)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그래서 GATT 체제에서는 협정 위반을 분쟁 제기의 원칙으로 삼는 대신, '협정으로부터 합리적으로 기대한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를 분쟁 제기의 기본 원칙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기대 이익의 무효화/침해'를 분쟁의 기본 원칙으로 삼게 된 것은 GATT 체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GATT는 관세장벽을 낮추기 위해 관세와 관련된 규범들 위주로 짜여 있어서 GATT에서는 규율하지 못했던 관세 이외의 다른 합법적인 조치(예를 들면, 보조금 지급이나 경쟁정책에 따른 조치)로 인해 관세 협정으로부터 기대한 이익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비위반 제소란 이질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합리화할 논리 구조를 위해 '기대 이익의 무효화/침해'를 분쟁 제기의 원칙으로 내세운 것이다.

한편, GATT/WTO의 비위반 제소에는 체제의 유지를 위한 한계가 있다. GATT/WTO 체제는 주권 국가들 사이의 협정이므로 아무리 기대 이익의 무효화/침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주권 국가의 재량적 정책들이 비위반 제소로 인해 제약을 받게 되면 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하여 체제 자체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특수성과 한계로 인해, GATT/WTO의 비위반 제소는 위반 제소와는 다른 별도의 분쟁해결 절차를 두어 제소국에게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한다. 또한 분쟁 해결 방식도 위반 제소와는 달리 설사 다른 국가의 이익을 무효화/침해하는 조치라고 인정되더라도 해당 조치를 철회할 의무가 없고, 보상을 해 주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GATT/WTO 체제의 비위반 제소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실제 비위반 분쟁을 담당했던 패널은 '기대 이익'의 범위를 '관세 양허'로부터 기대되는 시장 접근과 관련된 이익으로 매우 좁게 해석했다. 이를 벗어나 '기대 이익'의 범위를 확장해 비위반 제소를 인정한 패널 결정이 몇 건 있었지만 이 결정들은 회원국들의 거부로 채택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비위반 제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예외적인 구제 수단이라는 제한적 해석론이 자리를 잡았다. 또한, 비위반 제소는 제소국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고 설사 분쟁에서 이기더라도 조치 자체를 철회시킬 수 없기 때문에, 분쟁을 제기할 매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점들이 미국식 FTA의 비위반 제소와 GATT의 비위반 제소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고, 미국식 FTA에 들어 있는 비위반 제소의 위험성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점에서 출발한다.

WTO와 한미FTA에서 '비위반 제소'는 대단히 다른 제도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비위반 제소는 미국-호주 FTA 협정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호주 FTA의 비위반 제소에는,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별도의 절차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분쟁해결 방식도 이익의 무효화/손상을 회복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익의 무효화/침해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비록 합법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즉, GATT/WTO 체제의 비위반 제소 제도를 지탱하던 근거들이 미국식 FTA에서는 모두 사라진 것이다.

미국은 'WTO 플러스'를 FTA의 목표로 한다. GATT/WTO 체제에서 비위반 제소를 논의할 때부터 비위반 제소에 대해 위반 제소와는 다른 절차 규정을 두는 것에 반대했다. 이런 미국이 FTA를 통해 위반 제소와 비위반 제소의 차이점을 없앤 것은 GATT/WTO의 비위반 제소에 들어 있던 한계와 제약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식 FTA는 관세 양허 이외의 포괄적인 경제규범을 만들어 투자 자유화와 무역자유화의 확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GATT/WTO에 비해 합리적으로 기대한 이익의 수준이 훨씬 더 높다. 따라서, 미국식 FTA는 WTO와는 달리 비위반 제소의 절차가 간편하고 구제수단이 더 강력하며 '기대 이익'의 개념도 확대되기 때문에 제소 가능성과 승소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여기서 한국 정부측의 첫 번째 거짓말로 되돌아가 보자. WTO나 GATT와 같은 국제통상규범에서 인정하고 있는 제도를 한미 FTA에서 받아들였다는 정부측의 첫 번째 거짓말은, 농업과 상품, 서비스, 원산지, 정부조달에 대해 미국의 요구대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하더라도 국제통상규범에 확립된 제도를 수용하였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미국식 FTA의 비위반 제소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모르지 않고서는 펼칠 수 없는 주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공정책 훼손'이 결코 없다고?

정부측의 2번째 거짓말은 비위반 제소로 인해 공공정책이 훼손되는 일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비위반 제소에 대한 예외가 미국식 FTA에서 어디까지 인정되는지에 대한 무지와, 비위반 제소의 근거가 되는 '합리적 기대'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식 FTA에도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을 위한 조치, 환경보전을 위한 조치,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 등과 같은 공공정책에 대해서는 예외(GATT 1994 제20조의 일반예외)를 인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예외는 FTA 협정문 전체에 적용되지 않고 협정 일부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미국-호주 FTA에서는 '내국민대우와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농업', '섬유', '원산지 규정', '통관절차', '위생검역', '기술장벽'에 대해서만 일반예외를 인정한다. 또한, 협정 일부에만 적용되는 일반예외도 비위반 제소에 대해서는 또 다시 제한적으로 적용되도록 한다. 미국-호주 FTA에서는 비위반 제소에 대해서는 일반예외가 적용되는지 아닌지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미국-오만 FTA에는 비위반 제소가 인정되는 5개 분야 중 '서비스'와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만 일반예외가 적용된다고 명시한 것과 다른 점이다. 이처럼 미국식 FTA에서 비위반 제소에 대한 일반예외의 적용을 이중 구조로 짜놓은 점에 비추어 보면, 일반예외를 적용한다는 명시적 표현이 없는 미국-호주 FTA에서는 일반예외가 비위반 제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일반예외의 포괄적인 적용을 규정한 GATT에서도 일반예외에 해당하는 조치에 대한 비위반 제소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하며, 패널 결정(EU-석면 사건)에서도 일반예외에 해당하는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에 대해, 이것을 비위반 제소의 대상 자체의 문제로 다루기 보다는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로 이익 감소를 예상할 수 있었는지의 문제로 좁혀서 보고 있다.

얘기가 복잡해지니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한미 FTA 협상 도중에 한국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식약청에서 시판 허가한 의약품을 모두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기존의 제도를 변경하여, 시판 허가된 의약품의 경제성을 평가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인정되는 의약품만 선별하여 건강보험에 등재하겠다는 것이다. 즉, 제약사가 약효에 비해 높은 약값을 요구할 경우 약값을 떨어뜨려 건강보험에 등재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하면, 이러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측은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 이익침해의 가능성을 예견되었으므로 비위반 제소는 인정되지 않으며, 공중건강을 위한 조치는 비위반 제소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먼저, 공중건강을 위한 조치가 비위반 제소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반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제소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정부측 주장은 잘못되었다. 설사 일반예외가 비위반 제소에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공중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아니라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FTA 분쟁해결을 담당하는 패널은 통상법 전문가들이지 보건의료나 공공정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반박을 수용할 가능성도 높다.

둘째, 약제비적정화 방안이 이미 시행된 제도이므로 이익침해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는 정부측 주장은 미국식 FTA에서 정한 '기대 이익'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지적재산권 협정은 특허권자에게 시장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로부터 미국 제약사가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시장독점 가격이다. 한국 정부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의약품의 경제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고, 특허권자의 의약품에 대해서는 특허 기간이 만료된 다음에 약값을 재조정한다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특허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는 지적재산권 협정으로부터 기대한 시장독점 가격이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의해 침해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시민단체가 법리도 모른다는 거짓말은 제발 그만두라"

비위반 제소는 규정 자체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공공정책의 훼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FTA의 찬반을 떠나 통상법 전문가들도 많이 제기하는 문제다. 또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는 그 위험성 때문에 국제통상규범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비위반 제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얘기를 근거없는 주장이라거나 법리도 모르고 하는 우려라는 거짓말은 제발 그만두라.

그런 거짓말을 위해 동원할 논리를 짜낼 노력이라면 제대로 된 협상을 하는 데에 쏟는 편이 더 낫다. 협상장에서 공공정책의 훼손 가능성을 차단할 포괄 예외를 만들거나, WTO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를 수용하지 않을 논리를 개발할 노력을 보여야 '대한민국 정부'라는 소리라도 들을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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