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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상만 끝나면 모든 오해가 풀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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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FTA 협상만 끝나면 모든 오해가 풀린다"고?

[한미FTA 뜯어보기 328 :기자의 눈] 한미FTA 찬반론과 한국사회의 의사소통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만 공개되면 이 모든 오해와 억측이 일거에 사라질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이 한창이던 올해 초 한국 측 협상단의 고위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지금은 협상 중이니 협상 내용을 일일이 공개할 수 없지만, 협상이 끝나 협상 타결 결과가 공개되면 한미 FTA 반대 진영도 '무조건 반대'를 접고 협상 성공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래서일까? 협상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현재까지도 협상장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협상장 안팎에서 '낭보'라고 부를만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기껏 나왔다는 낭보가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은 한미 FTA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였는데 그 뒤에는 '금융정보의 해외이전을 허용하고, 신용평가업의 상업적 주재 요건을 완화한다'는 대형 비보가 한 묶음으로 전해졌다.

언제부터 FTA '개방 협상'이 '지키기 위한 협상'이 됐나?

협상이 30일 밤 타결될 것이 거의 확실한 가운데, 한미 FTA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한미 FTA 협상 결과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협상 결과가 공개됐을 때 찬성론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반대론자의 주장이 억측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할 만한 소식들이 정말로 쏟아져 나올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재 협상 테이블에 오른 의제에는 미국 시장을 열어 제치기 위한 한국 측 '공격 포인트'는 거의 없다시피 한 반면 현재 상태만이라도 유지하게 해 달라는 '수비 포인트'는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측 협상단과 한미 FTA 찬성론자들이 협상 초기부터 전면에 내세웠던 대표적인 공격 포인트로는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관세 조기 철폐 △섬유·의류 제품의 관세 조기 철폐 및 '원사 기준 원산지(얀포워드)'의 대폭 완화 △비합산(non-cumulation, 덤핑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 시 중국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된 동일물품으로 인한 피해도 누적해 계산하는 것 금지) 등 미 반덤핑법의 남용 방지 △미 전문직 비자 쿼터의 확보 △개성공단산 상품의 한국산 인정 △존스 액트(Jones Act, 미국 내 인적·물적 자원은 미국인 소유의 미국산 배에 의해 수송돼야 한다는 규정)의 완화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얻어 낸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게다가 이번 주에 열리는 마지막 협상에서도 1~2개의 요구사항을, 그것도 조건부로 받아낼 가능성만 보일 뿐이다. 특히 현재 'U(관세철폐 이행기간 15년 이상) 품목'으로 분류돼 있는 승용차 관세 2.5%의 경우 잘해봐야 5~10년 내 철폐로 갈 가능성이 높다. 관세가 일 년에 0.25~0.5%포인트씩 낮아진다는 이야기니 사실상 관세 철폐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협상단은 벌써부터 '관세 2.5%가 있어도 얼마든지 대미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논리 개발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반면 현재 이번 고위급 협상에는 '꼭 지켜야 할 것은 지키게 해 달라'는 수비용 요구사항들은 쌓여 있다. △쌀 시장 개방 불가 △외환 세이프가드(safeguard)의 인정 △우체국 보험의 특수성 인정 △스크린쿼터의 미래유보(필요시 스크린쿼터 일수를 늘릴 수 있는 정책권한 유지)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적용 예외 △혁신적 신약에 대한 약값 결정권 유지 △기간통신 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49%) 유지 △외국방송 재송신 채널의 한국어 더빙 불허 유지 등이 이에 속한다.

한미 FTA를 무리하게 체결하려고 들지만 않으면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들이지만, 한미 FTA로 국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가자. 그렇다 하더라도 협상 전망은 암울하다. 이 모든 것들을 한국 협상단이 다 지켜낼 수도 없고, 몇 개 지켜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분명 '더 큰 대가'가 따를 것이다. 산업은행을 지키기 위해 한국 국민들의 금융정보를 미국 은행 본사에 통째로 내주기로 했듯이.

통상교섭본부, 협상 기술 대신 변명 기술만 개발했나

그렇다면 한국 협상단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한미 FTA 협정문을 공개하면 한미 FTA에 대한 반대가 수그러들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그들의 '변명 기술'이 우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정교하다는 말의 다른 뜻이 아닐까?

정부가 그동안 공개된 협상 결과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와 이에 대한 변명의 사례를 몇 개만 보자.

-한미 FTA와 관련된 법의 제·개정 시 입법예고기간(현행 20일)을 왜 연장하기로 했나?

"우리 법에도 통상 관련법의 입법예고기간은 60일이 좋다고 권장하고 있다." (당초 입장 : "입법예고기간은 정부 고유 권한이므로 바꾸기 곤란하다.")

-한미 FTA의 핵심이라던 제로잉(Zeroing,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은 경우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제로(0)로 간주해 덤핑관세율을 높이는 것) 금지 요구는 왜 사라졌나?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므로 굳이 한미 FTA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당초 입장 : "다자간 협정인 WTO 협상이 부진하니 양자 간 협정인 FTA를 체결해 미국의 반덤핑 조치 남용을 막겠다.")

-최혜국 대우(MFN treatment, 협정 당사국들이 제3국에 해주는 대우보다 더 나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를 한미 양국이 '미래'에 FTA를 체결한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적용하게 된 이유는 뭔가?

"한국이 미래에 체결할 FTA는 한미 FTA를 기준으로 할 것이므로 '최혜' 대우가 별 의미가 없다." (당초 입장 : "미래 FTA 체결국에만 최혜국 대우를 적용할 경우 중국, EU 등 거대 경제권과 동시다발적인 FTA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불리하다.")

정부가 내놓는 변명의 양식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수치로 내놓을 실적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질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다. 둘째, 한미 FTA와 상관없이 원래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려고 했다. 셋째, 한미 FTA에서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WTO 협정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때 이른 감은 있지만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변명을 예상하는 것도 쉽다.

-자동차 관세를 즉시 철폐하겠다더니 왜 5년 이상 장기 철폐가 됐나?

"일단 한미 FTA가 체결되기만 하면 대미수출이 자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미국 측 자동차 관세는 2.5%밖에 되지 않으므로 관세 철폐가 큰 의미가 없다." (정부의 초기 논리: "관세 2.5%가 낮아보일지 몰라도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미수출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

-얀포워드 적용을 받지 않는 섬유 품목은 당초 85개에서 왜 이렇게 줄어들었나?


"85개는 원래부터 한국 업계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협상 과정에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부 원래 입장: "섬유 제품에 적용되는 얀포워드 기준을 아예 다른 기준으로 바꿀 것이다.")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결국 20년이나 연장하기로 했는데?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해도 한국이 입는 피해가 크지 않으며, 우리나라도 지적재산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 왔다." (정부 원래 입장: "현재로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어렵다.")

한미 FTA의 성과는 결국 '한미 FTA' 그 자체?

결국 오는 30일 협상이 타결돼 협상 결과가 속속 공개되면 한국 협상단은 '한미 FTA 타결 자체'가 한미 FTA 협상의 최대 성과라고 포장하려 들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앞서 미국과 먼저 FTA를 맺은 게 어디냐'는 말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이 1년2개월에 걸친 경주의 결승선 앞에 섰다. 그 경주에서 보여준 한미 FTA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의 논리 싸움은 한국 사회의 '의사소통 불능' 상태가 어느 수준에까지 다다랐는지를 보여주는 예였다. 한미 FTA 협상이 30일께 타결돼 협정문이 공개되면 이 의사소통 불능 상태가 해소될까? 유감스럽지만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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