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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에게 진짜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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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에게 진짜 배워야 할 것

[기자의눈] 드라마보다 더한 내부 고발자 현실

지난 21일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35)가 한국을 찾았다. 극중 이름 '스코필드'를 본뜬 '석호필'로 불리는 그는 2박3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무려 30여 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입소문만으로 퍼진 이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 폭스TV에서 2005년 8월부터 방송 중인 인기 드라마다. 현재 '시즌1(22편)'이 끝나고 '시즌2'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러나 실타래처럼 얽힌 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드라마 때문에 밤잠을 설칠 이들이 많을 듯하다. 심지어 감독이 '시즌5'까지 이야기를 준비해 놓았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 부통령의 동생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형을 구출하기 위해 일부러 범죄를 저질러 같은 감옥에 들어간 동생(마이클 스코필드)의 탈옥기다. 죽기 직전의 형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생의 노력이 눈을 뗄 수 없는 극적 전개와 함께 펼쳐진다.

국내에서는 2006년 연말에 시즌1이 한 케이블TV를 통해 소개됐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국내 팬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시청했다. 실제로 폭스TV에서 매주 월요일에 방송되는 시즌2는 그 다음 날이면 자막까지 붙어서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 회원 수만 20만 명에 이르는 이 드라마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됐다.
▲ <프리즌 브레이크>의 마이클 스코필드(오른쪽). ⓒ프레시안

드라마 속 온갖 내부 고발자 사연

미국의 대표적인 상업 방송의 인기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것은 그 내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주의' 등 미국식 가치관으로 범벅이 된 드라마라고 무시하기에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드라마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휘슬 블로우어(whistle blower)'들이다.

이 드라마에는 흔히 '내부 고발자', '공익 제보자' 등으로 불리는 '휘슬 블로우어'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몇 명만 열거해보자. 스코필드가 탈출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전직 마피아 우두머리에게 접근할 때, 그가 스코필드에게 내건 조건은 그의 범행을 증언한 뒤 현재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의 은신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스코필드의 탈옥 계획을 눈치 채고 동참하는 전직 이라크 파병 군인은 어떤가? 그는 이라크의 한 포로 수용소에서 이뤄지는 포로에 대한 학대를 보다 못해 그 부당성을 상관에게 지적한다. 그는 결국 괘씸죄로 불명예 전역한 후 감옥까지 오게 된다. (드라마의 포로 학대 장면은 바로 2004년 큰 논란이 됐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학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스코필드 형제가 이처럼 죽도록 고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내부 고발 탓이다. 시즌1의 막바지에 드러나듯이 스코필드의 형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데는 미국을 좌지우지하려는 거대 집단의 음모를 고발한 스코필드 형제의 아버지의 내부 고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이 아버지의 노력은 두 형제의 고군분투로 이어진다.

미국은 일찌감치 각종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잘 마련했다. 그러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이런 제도적 장치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데 그다지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수많은 미국인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이 거대 권력에 희생당하는 영화 속 인물 군상의 사연이 곧 자기 얘기라는 생각에서일 수도 있다.

드라마보다 더한 한국의 내부 고발자의 현실

그렇다면 <프리즌 브레이크>에 열광하는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잘 알다시피 내부 고발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도 불과 수년밖에 안 됐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부 고발자의 억울한 사연이 언론 매체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렇게 오르내린 대부분의 내부 고발자는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황우석 사태의 제보자들을 들 수 있다. 그들은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을 언론에 제보한 대가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오랫동안 직장을 얻지 못했다. 더구나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는 이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계속 신분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황우석 논문 조작' 제보자 돕기 모금 운동).

고등학생이라도 알아챌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결국 교수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이른바 '석궁 사건'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도 그런 내부 고발자 중 한 사람이다. 만약 그가 침묵했더라도 성균관대가 교육자로서의 처신을 문제 삼으며 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을까? 많은 국민은 그 진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나는 왜 김명호 교수에 공감했나").

얼마 전 <프레시안>을 통해 최초로 보도된 유종열 씨의 안타까운 사연은 어떤가? 그는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 안전 단속에 도움을 줬다가, 엉뚱하게 단속 대상이 된 업체로부터 '신용 훼손' 혐의로 고발 당하기에 이른다. 식약청은 유 씨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식약청에서 신원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뇌며 유 씨를 노숙인 신세로 내몰았다(☞ 관련 기사 보기 : 대한민국 '공익 제보자'의 끝은? 노숙인 신세?).

이밖에도 억울한 공익 제보자의 사연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전직 이라크 파병 군인이나 김명호 교수처럼 괘씸죄로 '응징'되기도 했을 테고, 마피아 우두머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숨어 지내는 이나 황우석 사태의 제보자처럼 세상의 눈을 피해 있기도 할 것이다.

내부 고발자 보호에 관심을

다시 <프리즌 브레이크>의 얘기로 돌아가자. 스코필드가 멋있는 것은 그의 출중한 외모뿐만 아니라 이런 억울한 이들을 저버리지 않는 마음가짐에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발가락을 잘리는 상황에서도, 또 탈옥 계획이 다 엉망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피아 우두머리에게 내부 고발자의 은신처를 발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프리즌 브레이크>의 등장인물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힌 억울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내부 고발자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수 차례의 사건을 통해 각 기관의 감사실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보다 색출에 앞장서는 곳이라는 게 드러났다. 심지어 국가청렴위원회조차 내부 고발자의 '믿을 만한' 친구는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나도 저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부 고발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스코필드가 <프리즌 브레이크>를 통해 온 몸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노력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심이 모일 때, 한국 사회는 좀 더 살만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식 하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덕분에 유종열 씨의 '신용 훼손' 건이 기각됐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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