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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과학자들' 명단에 이름 올리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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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과학자들' 명단에 이름 올리려는가?

[기자의 눈] '원로'의 용기를 보여달라

최근 들어서 마치 봇물 터지듯 학계의 논문 '표절'과 같은 부정행위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 외서의 무단 도용이 확인된 <탐욕의 과학자들>(일진사 펴냄)의 경우에는 과학계 원로들이 이런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고자 낸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냥 넘어가려고도 했지만…

사실 <탐욕의 과학자들>를 꼼꼼히 검토하면서 안타까웠다. 필자들이 도용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김동광 옮김, 미래M&B 펴냄)의 원서는 과학계의 부정행위를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한 고전이라서 이런 책을 쓸 때는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자들이 머리말에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에 많이 의존했다"는 말만 넣었더라도 기사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학계의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고자 급하게 책을 준비하면서 추가적인 자료 조사에 신경을 쓰지 못한 사정이나, 이 정도의 '짜깁기'는 용인해 온 출판계의 관행 등을 고려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들은 이렇게 용인할 만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말에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훌륭한 선행 연구로 언급해 놓고 정작 본문에서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 기자를 아연실색케 했다. 단순한 사례뿐만 아니라 저자의 주장까지도 그대로 도용한 대목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과학계 원로의 이런 모습은 국내 학계 인사들이 표절과 같은 부정행위에 얼마나 둔감한지 보여주는 생생한 지표라고 할 만했다. 오죽하면 이런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리겠다며 책을 내면서 외서를 그대로 베끼는 행태를 보이겠는가? 기사가 나가고서 한 누리꾼이 "예외가 될 만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한 것도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원로'라는 이름에 맞는 행동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에서 비롯된 '황우석 사태'가 국내·외 과학계의 부정행위에 경종을 울렸듯이 이번 일 역시 과학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그런 계기가 될 리는 전혀 없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러려면 우선 이번 일에 책임이 있는 <탐욕의 과학자들>의 필자들이 힘들겠지만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번에 문제를 촉발한 당사자인 필자들이 '직접' 이번 일과 같은 표절을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사죄해야 한다. 부인으로 일관했던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지명자, 이필상 고려대 총리가 국민들에게 혐오감만 심어주고 학계에 상처를 남겼던 반면에, 제자의 시를 도작(盜作)한 마광수 교수가 깨끗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모범이 되었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필자들은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표절의 '내밀한 메커니즘'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출판계의 속사정에 둔감한 국민은 궁금하다. 이런 표절이 자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일인지, 출판사의 권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제3자의 개입에 의한 것인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이른바 '먹물'들은 어떤 때 표절의 충동을 느끼고 이를 용감무쌍하게 감행하게 되는지가 명확하게 공개될 때,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어떤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비로소 궁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필자들은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정말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후학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내보여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문제의 당사자들은 모두 국내 천문학계, 화학계의 대표적인 원로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한다면, 그리고 후학들을 정말 생각한다면 원로로서 '마지막 역할'이 무엇인지 신중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스스로 '탐욕의 과학자'가 아님을 증명하라

애초 과학계의 부정행위가 갖는 심각한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시작된 몇몇 원로의 다짐은 이 표절 사태를 통해 결국 또 다른 부정행위로 귀결되고 만 셈이다. 그나마 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이번 일이 쓴 뒷맛만 남기는 촌극으로 끝날지 아니면 과학계의 자기갱신에 조그만 징검다리라도 하나 놓는 결과가 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이들이 어떤 길을 택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들이 책에서 정리한 수십 명의 '탐욕의 과학자들'의 무리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하는 일만은 사후적으로나마 피하고 싶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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