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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가 돼지 탓에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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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가 돼지 탓에 생겼다고?"

[화제의 책] 돼지의 모든 것, <돼지의 발견>

연초부터 언론은 '황금 돼지의 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정작 '진짜' 정해(丁亥)년은 18일 설날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얼떨결에 돼지의 해를 벌써 두 달 가까이 살아 온 우리 이웃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과연 정해년은 희망의 해가 될 수 있을까?

설날에 맞춰 나온 새러 래스의 <돼지의 발견>(김지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답답함을 위로하는 책이다. '돼지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세계 각지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각종 돼지 사진만 봐도 저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여기에 더해 돼지에 얽힌 수많은 사연은 덤이다.

돼지가 더럽고 부정하다고?

돼지가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것은 기원전 5000년 경부터다. 이집트, 중국 등 이른바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공통으로 이 시기부터 돼지를 기른 흔적이 발견된다. 한국에서 돼지가 사육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이다. 동아시아의 제일 끝인 한국까지 돼지가 전파되는 데에 50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 돼지는 길들여서 집에서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인기가 있다. 개처럼 주인에게 산책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돼지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호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 ⓒ뿌리와이파리

돼지는 대부분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었다. 고대인에게 돼지는 소, 말, 닭과 같은 가축들과 달리 살아서는 쓸모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중국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신선한 돼지고기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중국에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전해 내려오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젖먹이 돼지(애저)의 조리법이 있다. (중국은 오늘날도 세계 1위의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돼지가 모든 곳에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유대교, 이슬람교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이유를 서남아시아 지방의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찾았다. 돼지는 이런 기후를 잘 견디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고기는 냉장하지 않으면 금세 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단백질을 공급할 소, 양이 있었다.

이런 설명을 듣고 보면 돼지가 '부정하다'는, 성경에서 기원했을 법한 편견은 시정될 필요가 있다. 이런 편견은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뭐든 가리지 않고 먹어 치우는 돼지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 수메르인은 물론 비교적 초기 인류의 풍속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파푸아뉴기니 지역의 원주민은 이런 돼지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숭배했거나 숭배하고 있다.

<오디세이아>부터 <동물농장>까지, 돼지의 예술사

사람과 같이 지낸 기간이 무려 700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돼지는 숱한 예술 작품의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도 그의 명작 <오디세이아>에 돼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를 유혹해 돼지로 바꿔버린 마법사 키르케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가? 바로 이 얘기는 아직껏 전해져 내려오는 돼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 비아트릭스 포터의 동화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의 표지 그림. 포터가 창조해낸 상상의 돼지들은 명랑하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 ⓒ뿌리와이파리

돼지가 나오는 문학 작품 중에서 돼지의 타고난 지능(돼지는 길들여 집안에서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좋은 편이다)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오웰은 이 책에서 돼지의 지적인 탁월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농장의) 교육, 조직, 관리는 자연스레 돼지들의 몫이 되었다. 돼지들이 보통 가장 영리한 동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동화 작가 비어트릭스 포터(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 포터>의 그 주인공이다!) 역시 돼지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 작가다. 그는 아예 돼지를 치고 살면서 돼지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동화를 쓰곤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현재 전 세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 이야기 <피글링 블랜드 이야기>다.

나중에 환경운동에도 참여한 포터는 젖먹이 돼지를 그리면서 이렇게 썼다. "불쌍한 꼬마 천사의 웃는 모습은 너무나 다정했지만, 다른 점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어린 것을 죽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왜 커다란 베이컨용 돼지에 대해서는 감상적인 기분을 갖지 않을까?"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될 뻔한 돼지, 피가수스

돼지는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반전의 기운이 팽배했던 1968년 돼지도 반전 운동에 한몫 했다. 그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일련의 반전주의자들은 반전 행사를 주도했다. 이 행사에서는 피가수스라고 불린 돼지가 등장했다. 반전주의자들은 이 파가수스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대중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중은 전쟁에 'No'라고 하지 못하는 기성 정치인을 조롱하면서 이 피가수스에게 경의를 표하며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결국 경찰까지 나선 이 전당대회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로써 피가수스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가 될 뻔한 유일한 돼지로 역사에 남게 됐다.
▲ <돼지의 발견>(새러 래스 지음, 김지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7)

세계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동네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돼지의 관계도 흥미롭다. 아직 뉴욕이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리던 시절,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바로 돼지 떼를 방목하는 곳이었다. 이 돼지 떼가 주거지로 오는 것을 막고자 사람들은 길게 벽(wall)을 세웠다. 바로 이 벽을 따라 거리가 닦였고, 바로 이 거리에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예전에 돼지 떼가 뒹굴었던 곳에서 세상의 모든 돈을 삼켜도 허기진 이들이 24시간 눈에 불을 켜놓고 살아 간다는 점은 아주 흥미롭다. 흔히 우리는 유난히 탐욕스러운 이들을 보면서 '돼지보다도 못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한 때 월스트리트를 누볐을 돼지와 월스트리트의 경제인 중 누가 더 기분이 나쁠까?

"오직 고기만을 위해서 키워졌지만…"

간단히 소개한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는 말 그대로 돼지에 대한 모든 게 담겨 있다. 미국에서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 책 뒤에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으로 재직 중인 천진기가 '한국의 창'을 별도로 집필했다. 책 중간에 옮긴이가 한국의 사정에 맞게끔 새로운 정보를 끼워 넣은 것도 책의 공들인 정도를 알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친 대목 하나. 돼지는 사람을 제외하면 알코올(술)을 유일하게 마시는 동물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 책을 펼쳐라.
말…말…말

"돼지에게는 비극적인 색채가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오직 고기를 위해서만 키워졌는데도 돼지들이 아직까지 영리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두 손 들었다. 그래서 돼지를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조지 밀러, <꼬마돼지 베이브>의 감독)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그지 않은 문으로 들어온 돼지 한두 마리를 빼면 말이다. 돼지들은 여름에 시원한 마룻바닥을 좋아했다. 알지 몰라도, 사람들은 대개 꼭 가야 할 때가 아니면 교회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는 다르다."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중)
▲ 올챙이배돼지는 1960년대에 개량되었다. 이 품종을 캐나다로 처음 수입한 키스 커넬의 목적은 원래 연구실, 동물원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중 한 마리가 애완동물로 팔리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열풍이 일어났고, 1986년에는 시가가 수천 달러까지 치솟았다(왼쪽). 이 돼지는 어렸을 때는 작고 품에 쏙 안긴다. 그러나 이 돼지의 평균 무게는 45킬로그램에 가깝고 개중 어떤 것들은 들어오리거나 안아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오른쪽). ⓒ뿌리와이파리

"먹을 수 있는(edible) : 먹음직한, 그리고 소화에 좋은, 개구리에게 지렁이처럼, 뱀에게 개구리처럼, 돼지에게 뱀처럼, 사람에게 돼지처럼, 그리고 지렁이에게 사람처럼." (앰브로즈 비어스, <악마의 사전> 중)

"돼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퇴비 더미 근처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해리 트루먼,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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