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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트로츠키 논쟁을 자주적 사고의 계기로"

[기고] 역사적 오류와 논쟁의 현실화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를 계기로 3주 가까이 트로츠키주의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찬반 공방이 진행되는 가운데 불가피하게 국내외 트로츠키주의자의 현실 인식과 활동에 대한 평가도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논쟁과 관련해 모스크바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현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사회학연구소의 박사 과정에 있는 정다신 씨가 논평을 보내왔다. 정 씨는 소련 몰락 후 공개된 볼셰비키 당시의 비밀문서 등 사료에 입각해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크론시타트 반란과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의존하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시도했다.

특히 정 씨는 이 글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국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며 "과거 혁명가의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편집자>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이러한 논쟁들을 접하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단 몇 마디로 '다함께' 류의 역사 왜곡을 교정해 줄 능력이 있는 역사학자들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여겨서인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함께가 '국제사회주의자(IS)'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절, 그들은 그나마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자신들의 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정성진에 대해 IS 그룹에 속해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만 살아있는 지식인 분자'로 취급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이토록 정성진을 옹호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관념론의 소산이자 자신들의 지주 격인 국가자본주의론을 자신의 조직원도 아닌 이가 풍부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 분자의 입은 어느새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그 누구보다도 저들에게 힘을 실어 줄 이데올로그로 전화하여 칭송받게 됐다. 이번에 <프레시안>을 통해 제기된 논쟁에 이들이 이렇게 핏대를 세우게 된 이유도, 그 동안 타 정파나 집단들이 무시해 오던 다른 때와는 달리,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다함께가 신주처럼 모시는 국가자본주의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토니 클리프에 의해 발명된 국가자본주의론은 저들이 항상 자신들이 트로츠키 교조주의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자신들이 비판에 열려 있고 심지어 트로츠키주의 그 자체까지도 비판하는 융통성 있는 활동가들임을 보여 주려고 애용하는 부분은 철저하게 클리프와 그 계승자들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교과서에 나온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누가 진정 역사를 왜곡하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 그룹, 아니 저들이 암송하는 영국 SWP의 이데올로그들은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든 혁명을 국가자본주의 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유일무이한 노동자 혁명이었다는 러시아 혁명을 계속 왜곡해 왔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늘 혁명 계급이 노동자 계급인지, 또 '무슨 무슨 주의'에 오염된 이들인지가 강조돼 왔다.

노동자 계급은 거의 예외 없이 볼셰비키를 지지했고 문맹에 가까운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무슨 주의에 물들고 무슨 주의자들인 양 과장, 왜곡하는 나쁜 습관은 이런 왜곡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 시기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은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고 농민을 비롯한 여타 계급은 철저하게 반 볼셰비키였다는 특유의 이분법 논리로 역사를 과장, 왜곡하는 일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이전 수병들과는 다른 농민 출신 신병들이 주가 되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이정구는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문서 운운까지 하며 이 점을 무슨 엄청난 일인 양 하고 있다. 바로 그 비밀문서에 나와 있는 당시 노동자 계급 주도의 수많은 반 볼셰비키 파업, 반란 등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말이다.

페트로그라드에는 푸틸로프 공장 하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수십 배는 더 되는 러시아에 도시가 페트로그라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트로그라드에는 노동자 계급 중에 상대적으로 볼셰비키 지지 세력이 많았다. 그럼에도 심지어 최대의 볼셰비키 지지 기반인 푸틸로프 공장마저 잔혹한 전시 공산주의 기간 내내 반 볼셰비키 파업이 진행된 사실을 이정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주로 식량 부족에 있는 것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버릇도 영국 이데올로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소비에트 선거에 대한 부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박정희까지 빗댄 부분을 보며 이정구가 진정으로 노동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인지조차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일부 반 볼셰비키 세력에 철저하게 조종된 농민 출신 신출내기들의 반란이 아니었다. 그것이 그 당시 전국적으로 줄을 이었던 노동자 계급의 요구였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되었다. 당시 푸틸로프 공장은 친 볼셰비키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간신히 파업이 마무리되었지만, 그 외 수많은 페트로그라드 공장들에서의 파업은 이정구의 주장과는 달리, 크론시타트 반란 당시에도 이어졌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때 내전은 유럽, 러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종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던 농민을 아사 직전으로 몰고 가던 곡물 징발은 계속되었고, 볼셰비키가 주장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비롯한 민주주의 약속은 파괴되었다. 크론시타트 반란을 비롯한 일련의 파업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지극히 정당한 노동 대중들의 항의 행동이었다.

지지하기 애매한 집단마저도 '비판적 지지' 운운하는 다함께가 감히 굶어 죽어 가는 생존권과 관련된 항의 행동을 억지로 노동자와 농민으로 나누어 한 쪽을 반동으로 몰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해 당시 여타의 공장에서의 파업과 시위에는 볼셰비키 지지 노동자들의 볼셰비키에 대한 항의 행동이 즐비했다는 것만은 꼭 알아 두기를 바란다.

이정구가 정직한 활동가이고 진정한 유물론자라면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에서만의 일부 농민 출신 수병의 반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크론시타트 반란은 크론시타트 외의 전 러시아에서까지 벌어졌던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크론시타트 수병들의 반란은 정당했다. 진압 이후 볼셰비키가 전적으로 전시 공산주의를 폐지하고 수병들의 주장 중 중요한 부분인 농업과 가내 공업 등의 자유시장경제 요구 등의 맥락에서 시장 요소를 도입한 신경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이정구의 말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요구가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농민뿐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볼셰비키에 대한 실망과 반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완전한 흑백 논리로 이 당시부터 소련 붕괴 때까지 지속되었던 크론시타트 반란에 대한 거짓을 그대로 인용하여 크론시타트 반란을 왜곡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이 트로츠키주의이기는커녕 스탈린주의의 교조에서 한 발 자국도 못 벗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약 크론시타트 반란의 주역들이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다함께 동지들은 또 무슨 이유를 댔을까? 혁명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 한 후진 노동자들, 멘셰비키 영향 하 노동자들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제발 현실로 돌아오라!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노동자의 군대화, 노동조합의 국가 기관화 등등 명백한 반사회주의적 조치들을 옹호하려거든 똑같은 맥락에서, 아니 맥락은 그만 두더라도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알고 주장하기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국 SWP와 같은 외국의 이데올로그가 발행한 교재가 아닌 사료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며, 자신이 발 딛고 선 곳에 대해 독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자주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초를 갖는 것이다. 영국에서 내려 온 거 그냥 아무거나 무조건 외지 말고 사료를 근거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국 SWP의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가장 핵심적인 주장들과 거리가 멀다. 트로츠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고 자평하는 클리프의 주장만 절대적으로 따르는 다함께에 그들이 좋아하는 '~주의'를 갖다 붙이자면, 트로츠키주의자라기보다는 클리프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싶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한 관념론의 극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신들을 클리프주의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라고 치장하는 데에도 조금 더 나을 듯 싶다.

이재영이 틀린 건 단 한 가지다. 저들은 마르크스 훈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저 클리프 교과서를 암송하는 관념론 집단일 뿐이다. 이미 오래 전에 파산 선고를 받은 국가자본주의론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이론일지는 몰라도 현실 사회주의의 모습과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70년은 우리가 그리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자본주의와 닮은 점은 더욱 없었다는 점을 이 땅의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있다. 영국 SWP에서 소련 붕괴 직후 파견한 전문가들조차 소련 땅에 발을 디딘 직후 현실과 맞지 않는 자신들의 관념론을 뼈저리게 깨닫고 자기비판하고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조직원으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도 유독 이들만이 최소한의 뿌리조차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그 이유를 정녕 모르겠는가?

이정구를 비롯한 다함께는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논쟁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번 논쟁이 더욱 많은 활동가들, 연구자들로 하여금 국가자본주의론과 그를 뒷받침하는 역사 왜곡 등에 반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투쟁에 헌신하는 이들은 많다. 문제는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이들이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혁명을 외친다고 해서 운동권적 도덕률에 있어서 우위를 점한다는 착각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소련 체제를 지키고자 했던 트로츠키조차 저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저 오류 정도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들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그의 이름을 빌려서 그나마 '오류' 정도로 완곡하게 표현할 뿐,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날선 용어로 비판했을 것은 자명하다.

다함께가 진정한 변혁 운동가 집단이라면 과거 혁명가들의 사상과 주장에서 취할 것은 취하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진정한 트로츠키주의주의자로 거듭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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