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7차 협상에 앞서 지난 7~8일 이틀간 서울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에 대한 한미 간 기술 협의가 개최됐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이 협의는 미국이 한국의 양보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렬로 끝났다. 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 반송하고 나머지 물량은 그대로 유통하자는 한국의 양보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왜 자국산 쇠고기를 한국의 식탁에 올릴 수 있는 한국의 양보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 이태식 주미대사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뼛조각을 이유로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막으려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과연 그게 미국의 강경 자세의 배경일까?
뼈 안전성 놓고 한미 견해차 커
이틀간 열린 협의에서 한미 양측 협상단은 이른바 '뼛조각(bone chip)'에만 집중했다. 이 협의에서 미국은 계속해서 "뼛조각에는 광우병을 유발하는 위험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아 안전하다"며 "한국은 뼛조각을 검역 과정에서 문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 차례에 걸쳐 뼛조각 탓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데 대해 강한 유감도 표시했다.
미국의 속내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은 검역 당국의 역할에 대해 이견을 표시한 부분이었다. 미국은 허용할 만한 뼛조각의 크기, 숫자 등에 대해서도 수출·입 업체 간의 협의에 맡길 것을 제안했다. '한국의 검역 당국은 더 이상 뼛조각 문제에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미국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한국은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 되돌려 보내는 양보안으로 맞섰으나 미국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미국이 이런 한국의 양보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뼛조각은 물론 갈비뼈와 같은 뼈(bone) 자체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양보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뼈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한국의 우려를 수긍하는 것과 같다. 미국이 양보안을 거부하면서 "'한국이 뼈 있는 쇠고기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갈비 수출'
그렇다면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미국의 속내는 타이슨, 카길과 같은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 온 상·하원 의원의 요구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 측은 단지 뼛조각뿐만이 아니라 갈비와 같은 '뼈 있는 살코기'와 내장을 아무런 제한 없이 한국에 수출하길 원한다.
미국이 갈비와 같은 뼈 있는 살코기에 집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인이 유독 좋아하는 갈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기 전 수입 물량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실제로 미국산 쇠고기가 마지막으로 수입된 2003년 갈비는 그 해 수입 물량의 67%나 됐다. 미국은 한국인이 즐겨 먹는 소 내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런 미국으로서는 우선 뼛조각을 문제 삼는 한국의 검역 당국을 무력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이 당장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한국의 양보안을 거부하고 노골적으로 뼛조각 문제에 대해서 검역 당국이 손을 떼라고 요구한 강경 자세의 뒤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즉 '뼛조각은 뼈가 아니다'라는 미국의 궤변을 한국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뼛조각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뼈를 왜 문제 삼나'로 한발짝 더 나아가는 것은 불문가지라는 얘기다. 더구나 3개월 내에 이런 입장 변화를 가능케 하는 변수가 놓여 있다.
5월 이후에는 갈비, 내장 무차별 진입 막지 못해
미국이 이렇게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는 데에는 오는 5월 열리는 OIE 총회의 영향도 크다. 미국은 이번 총회에서 자신의 광우병 안전 등급을 한 단계 높이는 안을 관철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번 기술 협의에서도 "어차피 OIE 총회가 끝나면 쇠고기 검역 수준을 다시 협의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은 OIE 결정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뼈, 부산물 등을 문제 삼은 한국의 검역 기준도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런 미국의 입장은 농림부를 비롯한 한국 검역 당국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농림부의 '뼈 없는 살코기' 원칙이 '단지 3개월짜리'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농림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OIE 총회가 열리는 5월까지는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했다가, 총회가 끝나자마자 '뼈 있는 쇠고기에 큰 문제가 없다'며 검역 기준을 바꾼다면 국민의 식품 안전을 도외시한 결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박상표 국장은 "OIE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등급을 조정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한국의 검역 기준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농림부의 인식을 비판했다. 미국의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 근거를 내놓는다면 미국과의 개별 협상 과정에서 OIE 기준보다 더 높은 검역 기준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 예다. 일본은 2005년 12월 2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했다. 이것은 OIE에서 "30개월 이하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deboned skeletal muscle meat)'가 안전하다"고 한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다. 한국 정부가 딱 이 기준에 만족할 때 일본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더 엄격한 기준을 관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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