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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브리핑>의 나발소리와 무례한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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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브리핑>의 나발소리와 무례한 광우병

[한미FTA 뜯어보기 209 : 갈림길에 선 FTA 협상(2)] 미국과 '광우병의 부끄러움'

지구에서 한국보다 더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는 나라가 몇이나 있을까? 일본 농림수산성의 2006년판 <식료·농업·농촌 백서: 공세적 농정의 실현을 향한 개혁의 가속화>에 따르면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 이렇게 세 나라밖에 없다.

순수입액으로 따져 한국은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이 2003년에 미국에서 수입한 8억600만 달러어치의 쇠고기는 그 해 미국으로 수출된 한국산 의류 46.5%의 수출액에 해당한다.

미국이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하겠다고 나선 속셈의 맨 앞에는 농업이 있다. 미국은 중국, 호주, 캐나다 등 경쟁국에 앞서 한국의 거대 식료시장을 선점하기를 갈구한다. 생각해 보라!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쇠고기의 값은 40%나 떨어진다.

일본엔 '공손한' 미국

그러나 문제는 미국 안에 있었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 미국 쇠고기는 수입금지 대상이 됐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랬다. 일본은 2004년 일본과 미국 양국의 전문가들과 당국자들로 작업반을 구성해 미국의 광우병 관리 실태를 조사했다. 이 작업반이 그 해 6월 발간한 보고서는 미국의 광우병 검사와 위험부위 제거 방법 및 위험사료 통제 방법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은 소의 '생리학적 성숙도'를 근거로 미국 소의 월령(생후 몇 개월인지의 숫자)을 판단하는 연구를 진행해 그 연구의 결과물을 일본에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으로 수출할 쇠고기를 대상으로 한 '안전성 담보 정책 프로그램(USDA Export Verification Program Specified Product Requirements for Beef-Japan, 약칭 Japan EV Program)'을 만들어야 했다.

이를 토대로 일본의 식품안전위원회는 정부 당국자가 일본 각지 소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의 '의견 교환회'를 개최했다. 2005년 12월 마침내 일본은 미국이 'Japan EV Program'을 정확히 시행하는 조건으로 20개월령 이하 미국소의 근육살(muscle cuts), 잡육살(trimmings), 내장(offal)에 대한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 대신 등뼈와 같은 특정위험부위(SRM)의 수입은 금지했다.

이같은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령 이하의 '뼈를 제거한 골격 근육살(deboned skeletal muscle meat)'이 안전하다고 평가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 2.3.13.1.조)보다 더 엄격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1월 일본에 도착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발견되자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다시 금지됐다. 미국은 2006년 6월 'Japan EV Program'이 빈틈없이 시행되도록 특별한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일본에 해줘야 했다. 이 약속에는 일본으로 수출될 쇠고기 도축장으로 하여금 '수출 허용 부위 목록' 매뉴얼을 도입하도록 하고, 도축 인부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토론의 광장을 점령한 <국정브리핑>의 나발소리

한국은 어떠했는가? 2006년 3월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미국과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함으로써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완료했다. 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 미만의 소에서 '뼈를 제거한 골격 근육살(deboned skeletal muscle meat)'을 수입한다는 것이었다(위생조건 1(4)항).

만일 한국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같은 안전조건이 한국적 특수성, 즉 일본과 달리 광우병 미발생국이며 소 뼈 요리를 즐기는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로 적합하고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광범위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쯤 국민들 사이에서 합의된 안전기준과 그 과학적 기초를 사회적 자산으로 가지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이러한 사회적 합의 과정을 짓밟아 버렸다. 토론의 광장을 <국정브리핑>의 나발소리가 점령했다. <국정브리핑>은 이렇게 선언했다. "OIE는 뼈의 유무를 상관없이 30개월령 이하의 소에 대해 안전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보다 더 강화해 30개월령 이하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2006년 7월 22일)

이같은 논리는 '선진화 국민회의'가 발행한 <한미FTA 대한민국 보고서>에서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OIE는 뼈의 유무를 상관없이 30개월령 이하의 소에 대해 안전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보다 더 강화해 30개월령 이하의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뼛조각이 뼈가 아니면 살코기란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 뼈가 문제였다. 미국의 몇몇 도축장은 쇠고기에서 뼈를 제거하기로 한 한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못했다. 놀랍게도 미국은 해당 도축장을 잡도리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에게 합의 조건을 따지기 시작했다. '뼈'를 제거하기로 합의했지 '뼛가루'까지 없애기로 약속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미국 대부분의 도축장에서 기계톱이 사용되기 때문에 살코기에 뼛조각이 섞일 수밖에 없다. ⓒ KBS

그런데 만일 <국정브리핑>의 홍보대로 '뼈의 유무와 상관없이 30개월령 이하의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이 국제기준이라면 미국의 '뼛가루' 구별론에는 기댈 언덕이 있다.

그러나 <국정브리핑>의 서술은 참이 아니다. '뼈의 유무와 상관없이 안전하다'는 국제기준은 없다. 앞에서 살폈지만, 국제기준에도 쇠고기에서는 뼈를 제거하도록 돼 있다. 광우병을 유발하는 물질인 프리온 단백질이 뼈의 척수 등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뼈를 제거하기로(deboned)' 한국과 합의했다. 이미 협상이 끝난 일이며, 미국이 할 일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 도축장이 고의로든 실수로든 근육살코기 포장에 집어넣은 '뼈'는 크든 작든 '뼈'이지 '살코기'가 아니다.

미국의 무례함은 한국이 '자초'한다

임기응변이 잘못 되면 대개 더 큰 화를 부른다. 미국은 이제 한국의 안전기준을 바꿔 아예 '뼈'가 붙은 쇠고기도 수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게 한 것을 일본에게 한 것과 비교해 보면 미국이 얼마나 한국에게 무례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 탓이다. 한국에는 미국산 쇠고기 안전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독자적인 과학적 자료가 없다.

한국이 미국에 광우병 발생의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못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한미 FTA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조건이 사회적 합의와 독자적인 과학적 자산 대신 불량배의 공격과 흥정 대상으로 전락한 것도 바로 FTA 때문이다. 이런 식의 FTA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의 존엄을 위해 뼈 속까지 뜯어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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