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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대학, '상업화'와 '대박'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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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대학, '상업화'와 '대박'의 사이에서

[화제의 책] 데이비드 F. 노블의 <디지털 졸업장 공장>

지하철에서 사이버대학 광고를 보면서 캠퍼스 없는 대학의 미래를 상상한 적이 있는가? 2001년 처음 선을 보인 사이버대학은 현재 2만3000여 명의 학생이 17곳에 재학하고 있을 정도로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얼핏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든 이에게 대학의 문턱을 낮추는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판적 역사학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F. 노블은 최근 번역된 <디지털 졸업장 공장>(김명진 옮김, 그린비 펴냄)에서 이런 환상을 여지없이 깬다. 온라인 교육으로 상징되는 대학 교육의 자동화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고등 교육을 상업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편 교육, 온라인 교육…반복되는 역사

노블은 사이버대학과 같은 온라인 대학 교육의 문제를 살피기 전에 우선 19세기 말부터 수십 년간 불었던 우편 교육 광풍을 되짚어본다. 당시의 우편 교육은 오늘날의 온라인 교육 운동과 놀랄 만큼 똑같은 방식으로 홍보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교육,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스스로의 학습 속도에 맞춘 진도…."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 뒤에는 기계화되는 산업 활동에 직면한 노동자를 등쳐서 돈을 벌어보려는 상업적 목적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런 식이다. 새로운 훈련이 필요한 노동자를 상대로 화려하게 포장된 우편 교육을 선전해 학생을 모집한 뒤, '저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물론 저질의 교육에 실망한 노동자들이 중도 탈락하면 교육기관은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 <디지털 졸업장 공장>(데이비드 F. 노블 지음, 김명진 옮김, 그린비 펴냄) ⓒ프레시안

이런 우편 교육이 돈이 될 것으로 판단되자 시카고 대학, 컬럼비아 대학, 하버드 대학과 같은 이른바 명문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학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교육"보다 '양질'을 약속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노블은 "단 한 곳의 대학도 우편 교육을 통해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편 교육이 시작한 지 몇 개월도 안 돼 강의는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대학원생, 강사 등의 몫이 되었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많은 양의 과제물을 맡아야 했고, 애초에 학생과의 '개인적 접촉'을 제공할 여력도, 의지도 없었다. 저질의 대학에 실망해 중도 탈락한 학생은 환불도 받지 못한 채 땅을 치며 후회해야 했다.

결국 각 대학이 주도했던 우편 교육은 "훌륭한 대학이 사기꾼으로 전락했다"는 맹렬한 비판에 직면한 뒤, 1930년대 말 몰락했다. 의욕적으로 우편 교육을 시작했던 컬럼비아 대학은 장밋빛 환상으로 치장된 그간의 홍보에 대해서 이렇게 반성했다. "부적절하고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후, 우편 교육은 다른 옷을 입고 부활한다.



대학 상업화, 온라인 교육과 만나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앤젤레스, UCLA)은 1997년 교양·과학 강좌 3800개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온라인 강좌를 열 것을 발표했다. 미국의 수많은 대학이 그 뒤를 이었다. 불과 반세기 전의 우편 교육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던 컬럼비아 대학의 한 학장은 온라인 강좌의 미래를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했다. "부정적인 측면은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낙관론을 비웃기로하도 하듯 온라인 교육은 시작하자마자 삐걱대기 시작했다. 우선 교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세 번째로 큰 요크 대학의 교수들이 온라인 교육에 반대해 두 달간 파업을 진행한 것은 가장 두드러진 예다. 그들은 온라인 대학의 전면화가 대학 '교육'의 상업화를 여는 신호탄으로 여겼다.

노블은 온라인 교육이 과거 자동화 탓에 발생한 노동자의 '탈숙련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다. 온라인 교육은 교수의 경험을 강의, 과제물, 시험 등으로 분해한 뒤 일종의 상품으로 만드는 상업 활동이다. 이 안에서 교수는 대학의 감독과 규율 강화, 노동 조건의 질적 저하와 탈숙련화, 지적 재산권의 박탈 등을 감수해야 한다.

온라인 교육이 실제로 이뤄진 현실은 노블의 지적에 부합했다. 교수의 저항과는 별개로 학생들도 온라인 교육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각 대학의 온라인 교육의 등록률은 채 50%가 되지 않았다. 교육의 질이 낮은 데다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가 결코 "전자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에 온라인 교육이 약속했던 '대박'도 허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UCLA가 온라인교육 기업과 맺은 계약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은 연간 5000만 달러에서 계속 줄어 40만 달러까지 내려갔다. 계약한 지 5년이 되는 1999년에는 심지어 이마저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뉴욕대학의 한 학장이 비꼰 대로 "온라인 교육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등교육의 '불안한' 미래

이런 실패의 경험에도 여전히 온라인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의 상업화를 꾀하는 대학-기업 복합체가 건재한 데다, 컴퓨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노블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기술 광신자'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일사천리로 온라인 교육이 확대되고 있는 한국은 그 생생한 현장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졸업장 공장>이 온라인 교육의 확대를 통해 그리는 암울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온라인 교육의 확대와 같은 고등교육의 변화를 온 몸으로 막는 과정에서 나온 이 책의 서문에서 노블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디지털 졸업장 공장>은 그가 1990년대 후반 온라인 교육을 막기 위해 언론, 인터넷에 발표한 글이 골격이 되었다.)

"노동계급 출신으로 공공 고등교육의 수혜를 받은 1세대이자 플로리다 대학 졸업생으로서, 나는 대학의 미래를 둘러싼 투쟁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예전부터 잘 알고 있다.

(…)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나 같은 배경을 가진, 즉 집안이 넉넉지 못한 젊은이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고, 진정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저 드문 부류의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에도 끼기 어렵게 될 것이다. 대신 그들은 온라인에서 훈련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가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지금 투쟁을 벌이는 것은 이처럼 우울한 미래의 도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는 직업의 안정성, 학문의 자유, 학자로서의 진실성, 그리고 대학의 제도적 유산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걸려 있는 투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하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비용으로 접근 가능한 양질의 교육을 계속 제공하고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한 투쟁이다."


노블은 누구인가?

데이비드 F. 노블은 30여 년간 과학기술의 발달 뒤에 감춰진 정치·경제·문화적 배경을 파헤치는 데 노력해 온 이다. 그가 쓴 <생산의 힘(Forces of Production)>, <설계된 미국(America by Design)> 등은 과학기술사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 교육의 자동화에 대해서 한 마디 할 수 있는 최상의 학문적 업적을 갖춘 셈이다.

노블은 탁월한 학문적 업적에도 미국, 캐나다의 대학 재단이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학기술 발달과 대학 교육의 상업화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MIT,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해고당했다. 심지어 하미머드 대학의 학생들이 졸업식 연사로 초청하자 총장이 이를 가로막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토론토 요크 대학에 재직 중이다.

<디지털 졸업장 공장>을 제외한 노블의 책은 번역된 것이 없다. 1995년에 나온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송성수 엮음, 녹두 펴냄)에 '기계 설계에 있어서 사회적 선택'이라는 논문이 번역돼 있다. 이 논문에서 노블은 '수치 제어 공작기계'가 경쟁하던 '녹음 재생 공작기계' 대신 선택된 과정을 통해 자동화의 이면에 숨은 이유를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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