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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독일판 이산가족 찾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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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독일판 이산가족 찾기' 바람

2차대전 후 '연합군 사생아' 10만명 넘어…50대 들어 '아버지 찾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 년 사이 적군이었던 미 연합군 병사들과의 사이에서 10만 명 이상의 사생아가 태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는 "독일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 10여 년 동안 당시 서독 여성과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연합군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는 최소한 6만6700명이며, 당시 동독 지역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사생아가 태어났으며 이들은 소련군 병사를 아버지로 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적군과 관계를 맺어 사생아를 낳은 여성은 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생아가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군의 사생아를 낳은 것으로 알려진 여성들은 창녀 취급을 받았고, 그들의 자식은 '개자식'으로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50대의 나이가 된 사생아들이 '아버지 찾기'에 나서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슈피겔>은 헤르베르트 해크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올해 54세인 해크 씨는 요즘 인터넷 사람찾기 사이트에 "1952년 독일 슈바인푸르트에 배치됐던 검은 머리의 미군 병사, 성은 모르고 이름은 찰스"라고 쓴 광고를 올려 놓고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해크 씨에 따르면 찰스는 전쟁이 끝난 직후 한 나이트클럽에서 22살의 바이에른 출신의 하나라는 이름의 여성과 만났다.

그 후 두 사람은 너덧 차례 데이트를 가졌으나 찰스는 한국으로 전출됐다. 그 해 말 하나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은 헤르베르트로 지었다. 현재 해크 씨는 낮에는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택시 운전을 하고 밤에는 찰스를 찾는 서류 작업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슈피겔>은 "해크 씨의 사연은 이곳에서는 흔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독일 외교부나 당시 연합국의 독일주재 대사관들은 이들에게 매우 비협조적"이라고 전했다.

또한 연합국에 속한 정부들도 관련 문서에 대한 사생아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 군사문서 보관소는 2차대전 종전 후 독일에 주둔했던 프랑스 병사들의 자녀에 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만 프랑스법 상 이 문서는 자녀가 60세에 도달한 이후에만 열람이 허용된다.

미국 미주리 주에 있는 국립개인기록보관소에는 미군 병사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1973년 화재로 인해 2차대전 종전 이후의 자료 대부분이 소실됐다.

독일 적십자사의 사람찾기 담당자인 하인리히 레베르크는 거의 매일 연합군 병사 아버지를 찾고 싶다는 편지를 받는다고 밝혔다.

레베르크는 사생아들이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지만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혀 중단했다가 이제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아버지를 찾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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