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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시장과 농업시장 개방, 정부의 이중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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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시장과 농업시장 개방, 정부의 이중논리

[한미 FTA 뜯어보기 169 : 기자의 눈] 개방하겠다는데도 침묵하는 법조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에서 우리 측 협상단이 한미 FTA가 발효되는 즉시 우리나라 법률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듯' 나왔다. 하지만 이 엄청난 뉴스에 주목하는 언론은 별로 없었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법조계도 침묵을 지켰다.

법조인들에게 법률시장 개방 소식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법조인들이 법률시장 개방을 적극 찬성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들의 침묵은 최근 한미 FTA로 한의사 시장이 개방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의사들과 한의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과 대비된다. 이들은 이번 주말 '상경투쟁'을 통해 한의사 시장 개방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정부와 국민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사실 법률시장의 개방에 대해서는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시장 확대 및 고용 증대를 기대하며 개방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고,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며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변호사를 변호사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

한미 FTA 5차 협상 기간이던 지난 5일 우리 측 협상단은 현재 우리 측 유보안에 들어가 있는 법률서비스의 개방 시기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달라는 미국 측 요구에 응해 "법률시장 개방은 협정 발효 시부터"라고 적시했다고 밝혔다. 서비스 분과장인 김영모 재정경제부 통상조정과장은 "정부 내에서 외국법자문사법'을 입안해 논의 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가 지난달 19일 공개한 외국법자문사법 초안에는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내·외국인이 '외국법자문사'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자격증 취득 국가의 법률과 관계된 소송이나 국제공법 관련 소송을 맡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물론 외국법자문사는 국내 소송 업무는 할 수 없다. 사실 외국 변호사에게 국내 소송 업무를 맡도록 허락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외국법자문사법의 제정은 우리 법률시장의 개방과 동일시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초안에 따르면 외국 변호사의 국내 영업에는 큰 제약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외국 변호사는 자신을 '변호사'라 칭할 수 없다. 대신 '외국법자문사'(외국법을 자문해 주는 사람)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

외국법자문사가 되는 과정도 꽤 까다롭다. 외국법자문사는 자신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국가에서 3년 이상 실무경력을 쌓아야 하고, 우리나라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해야 한다. 또 외국법자문사는 연 180일 이상 국내에 머무른다는 '주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국내 변호사나 로펌과의 제휴·합작·동업·고용 관계를 맺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이 법은 관련 공청회를 거쳐 법무부 내의 검토·수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법무부는 원래 이 법을 연내에 입법예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다고 법무부 측은 밝혔다.

외국법자문사법 제정이 법률시장 개방과 같다고?

한미 FTA에서 굳이 법률시장 개방과 관련한 논의를 하지 않아도 우리가 '외국법자문사법'의 도입을 통한 자체적인 개방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 측 협상단의 논리다. 이에 대해서는 한미 FTA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자발적인 자유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정부 측에서도 나름대로 법률시장의 개방을 준비해 온 셈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같은 내용의 외국법자문사법을 국내에 도입한다 해도 미국 측에서 이것을 '법률시장 개방'이라고 인정해줄 것이냐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자랑하는 미국으로서는 활발한 해외활동을 펼치는 기업들을 다수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률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법률 관련 사안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 관계자는 18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5차 협상은 (서비스·투자 분야의) 유보안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외국법자문사법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가 있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앞으로의 협상에서 이 법에 대한 협의가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FTA와 상관없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의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 진척에 따라 법률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면서 "다만 국내 법률서비스 공급자들이 법률시장 개방으로 인한 시장 충격에 견디고 국내 소비자들도 갑작스런 법률시장의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도록 시장을 단계적으로 개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을 통해 외국법 및 국제법과 관련된 국내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19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외국법자문사법의 시행을 법률시장의 개방과 동일시하기는 힘들다"라고 반박했다.

송 변호사는 "그 이유는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과 외국 변호사에 대한 국내 변호사와의 동업 및 고용 불허 등 크게 2개로 나눠 봐야 한다"면서 "정부 측에서는 미국도 외국 변호사에게는 변호사라는 명칭 대신 FLC(Foreign Legal Consultant)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한다고 주장하지만 Consultant라는 단어가 바로 변호사라는 뜻이고, 또 외국변호사가 국내변호사와 동업 및 고용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국내 변호사들이 외국 변호사들과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이어 "외국법자문사법을 통해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에서 활동을 하게 되어도 이들이 대형 로펌 등 국내의 법적 기득권 집단과 경쟁을 할 수 없게 되거나 국내 대형 로펌들의 하위 단위로 편입하게 될 것이므로 실질적인 법률시장 개방이라고 보기 힘들다"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국내에서조차 '법률시장의 개방'에 대한 정의를 모호하게 놔두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모호함'의 문제는 법률시장을 개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개방한다면 어느 수준에서 개방할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국내 법률서비스 공급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 논의와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졸속' 개방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농업과 법률서비스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세계 최고의 법률서비스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동시에 세계 최대의 농산물 생산·수출국이기도 한 미국. 우리 정부는 이런 미국과의 FTA를 우리나라의 서비스, 특히 고급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 분야의 개방과 희생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법률시장과 관련해서만큼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는 어쨌든 우리 법조인들이고 외국 법조인들은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로 만족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것이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법률시장 개방'의 정의다. 얼핏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농업과 관련해서는 쌀밥과 된장찌개를 주식으로 하는 우리의 식문화에 비추어 식량을 공급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나라 농민들이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외국 농민들과 초국적 농산업체라는 논리를 펴지 않는다. 개방 시기를 조금 늦추고, 쌀은 개방에서 제외하고, 농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지만 일단 '농업시장 개방'의 정의는 '전면 개방'을 의미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생각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렇게 법률서비스와 농업을 직접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일까? 따지고 보면 법률서비스는 대부분의 경우 한국어로 된 우리나라 법으로 제공돼야 하지만 음식은 꼭 우리나라 것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는 반박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반박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음식은 꼭 우리나라 것'이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인 동시에 과학적 판단의 문제기도 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서부터 '우리 몸에는 정말로 우리 것이 더 좋은가'라는 케케묵은 논쟁을 포함해, 우리는 아직 이런 문제들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몇 달 전 농민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 FTA 탓 하지 말라. 한국 농업은 어차피 다 망하게 돼 있는 것 아니냐. 왜 경쟁력을 갖춰 미국 시장에 농산물을 수출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법률서비스 시장에 같은 논리를 들이대지 않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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