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빅스카이협상에서 '승부수'를 띄우는 모습을 연출한 무역구제 분과 협상의 마감시한이 사실상 5일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한시적으로 위임한 통상협상 권한, 즉 무역촉진권한(TPA)의 조건에 따르면 한미 FTA 미국 측 협상단은 무역구제 관련법의 제·개정을 요구하는 통상협상 사안에 대해서는 협정 체결 180일 이전까지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TPA가 내년 6월 말에 시한이 만료된 뒤 추가 연장되기 어렵다는 일반적 관측과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및 연말 휴가기간을 감안하면, 한미 FTA 무역구제 분과에서 미국 측 관련 법의 제·개정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협상의 마감시한은 사실상 오는 23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분과의 협상이 진전됐다는 '낭보'는 한미 양측 어디에서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무역구제 분과뿐 아니라 한미 FTA 협상 전체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에 대한 관심이 새삼 고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탄절 연휴에 들어가기 직전에 무역구제 분과 협상의 극적 타결이 이뤄지면서 한미 FTA 협상 전체에 새로운 모멘텀(추진력)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로 올해가 저물면, 우리 정부가 무역구제 분과에서 '안 되면 말고'하는 식으로 꼬리를 내리면서 무역구제 분과에서 제기했던 요구사항들을 없던 일로 하고 한미 FTA 전체 협상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센 한국 쪽 사정과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미 민주당의 압승으로 한미 FTA의 의회 비준이 어려워진 미국 쪽 사정을 동시에 감안해, 한미 양국 협상단이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 교착'을 명분으로 고위급의 정치적 타협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미 FTA 협상을 좌초시키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레 내다보기도 한다.
무역구제 분과, 뭘 하는 곳이길래?
한미 FTA 무역구제 분과에서는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크게 3가지가 논의된다. 반덤핑관세(anti-dumping duty)는 외국물품이 정상가격(수출국 국내시장의 거래가격) 이하로 수입돼 국내산업이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또는 외국 수출업자가 덤핑행위를 할 경우 정상가격과 덤핑가격의 차액 범위 내에서 해당 수입품에 부과되는 관세다.
상계관세(countervailing duty)는 수출국 정부가 자국 수출업자에게 지급한 보조금을 상쇄하기 위해 수입국이 수입품에 부과하는 특별관세를 의미한다. '긴급수입제한조치'라고도 불리는 세이프가드(safeguard)는 외국물품의 수입이 급격히 증가해 국내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때 수입물량 제한, 관세율 인상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은 애초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미국 측은 원래 이 분과의 명칭을 '무역구제(trade remedy)' 분과라고 부르는 것조차 반대하며 세이프가드 하나에 대해서만 협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다 지난 3차 시애틀 협상에서 미국 측이 이런 입장을 완화해 이 분과를 무역구제 분과라고 부르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간신히 관련 통합협정문안이 나왔다.
우리 측에서는 1년도 채 안 되는 그동안의 협상기간 동안 분과장만 2번 교체됐다. 지난 6월 12일 이 분과의 공동분과장인 심동섭 조사총괄과장이 백두옥 조사총괄과장으로 교체됐고, 8월 11일에는 역시 공동분과장인 김경한 외교통상부 한미 FTA 기획단 국내대응팀장이 김영재 주제네바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교체됐다.
우리 측 요구사항 15개에서 6개로
우리 측 협상단은 지난 3차 시애틀협상 때 '제로잉 금지' 등 10개의 요구사항을 미국 측에 제시했고, 이어 4차 제주협상 때 '상호합의에 의한 반덤핑 조사 중지' 등 5개의 요구사항을 추가로 제시했다.
하지만 우리 측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미국 측이 '협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우리 측은 지난 5차 빅스카이 협상에서 이 15가지 요구사항들 가운데 6가지만 골라 미국 측에 들이밀고 '다 수용하든지 협상을 관두든지(Take them all, or leave)' 하라고 요구하며 나름대로 강수를 뒀다.
이 6가지 요구사항을 들여다보면 양국 간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설치 등 미국 법령의 제·개정이 불필요한 것 1개, 상호합의에 의한 반덤핑 조사 중지 등 한미 양측이 합의하는 내용에 따라 미국 법령의 제·개정의 필요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 3개, 산업피해의 비(非)누적 평가 등 법령의 제·개정이 분명히 필요한 것 2개로 구성돼 있다.
△양국 간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설치=양국 무역구제 제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반덤핑 관련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상설위원회의 설치 (미국 법령 제·개정 불필요)
△상호합의에 의한 반덤핑 조사 중지(Suspension agreement)=반덤핑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이 가격인상 및 물량조절을 약속하면 반덤핑 조사 및 반덤핑관세 부과 조치를 미루는 것 (한미 양국 간 합의되는 내용에 따라 미국 법령 제·개정 일부 필요)
△조사 개시 전 사전통보 및 사전협의=조사당국 간 반덤핑 조사를 개시하기 전에 사전 문제해결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반덤핑 조사의 남발을 막는 것 (한미 양국 간 합의되는 내용에 따라 미국 법령 제·개정 일부 필요)
△조사당국의 추정자료 사용 제한=반덤핑 판정 시 '이용가능한 자료(fact available)'로만 판정하도록 해, 피소국의 제출자료가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피소국에 불리한 추정자료까지 사용하는 관행의 금지 (한미 양국 간 합의될 내용에 따라 미국 법령 제·개정 일부 필요)
△산업피해의 비(非)누적(Non-cumulation) 평가=덤핑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 시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된 동일물품도 조사대상으로 해 그 수입으로부터의 피해를 누적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금지하고 개별 수입국별로 산업피해액을 조사하는 것 (미국 법령 제·개정 필요)
△다자간 세이프가드 발동 시 상호간 적용 배제=여러 나라에 동시에 수입제한조치를 내릴 때 일정 요건 하에서 협정 상대국을 제외해 주는 것 (미국 법령 제·개정 필요)
6개 요구사항, 제대로 고른 것 맞나?
우리측 협상단은 최근 빅스카이 협상의 무역구제 분과에서 미국 측에 회심의 '한방'을 날리고 귀국했다고 선전했지만, 막상 국내에서는 우리 측 협상단의 협상전략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측이 기존의 15개 요구사항들 가운데 추려낸 6개의 요구사항에 대해 '정작 우리 업계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요구사항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 '한미 FTA 특별위원회' 소속의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4일 "우리 측은 미국이 지금까지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 이(무역구제 관련 조항)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는 점을 의식해 매우 형식적인 무역구제 조항만을 요구했다"면서 "업계가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요구했을 경우를 100점 만점으로 할 때 (우리 측 협상단이) 5차 협상에서 미국 측에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은 10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우리 측 협상단은 한미 FTA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올 초부터 제로잉 금지, 최소부과 원칙 등과 같은 무역구제 조치들을 한미 FTA에 도입해 대미 수출업자들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겠다고 선전해 놓고는 실제로는 이런 조치들과 관련된 요구사항들을 협상 과정에서 슬그머니 빼버렸다는 게 심 의원의 지적이다.
올해 6월 무역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측의 무역구제 조치로 인해 우리나라 업계가 입은 피해액은 1980년부터 2005년까지 16년 간 전체 대미 수출액의 6.8%인 373억 달러나 된다. 이런 실정을 감안하면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당연히 미국 측 무역구제 조치에 대응해 우리 업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하지만, 실상은 정부 협상단의 태도가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그동안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음에도 최근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 측 요구사항 목록에서 뺀 제로잉 금지 및 최소부과 원칙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의 소극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제로잉(Zeroing) 금지=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낮은 경우만 덤핑마진에 산입하고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은 경우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제로(0)로 간주해 덤핑관세율을 높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
△최소부과 원칙(Lesser Duty Rule)=산업피해를 제거할 수 있다면 덤핑마진과 피해마진 중 액수가 작은 것만큼만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
사실 이 두 가지 제도는 우리나라가 기존에 체결한 다른 FTA에는 이미 삽입돼 있는 것이다.
가령 얼마 전 발효된 한-싱가포르 FTA의 협정문 '제6장 무역구제'에는 "반덤핑마진이 가중평균의 기초 하에서 설정될 때 모든 개별적 마진은 양의 값이든 부의 값이든 평균 계산에 포함돼야 한다"(2절 3조 가항)는 '제로잉 금지' 조항은 물론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을 취한 경우 그런 결정을 취하는 당사국은 덤핑마진보다 낮은 관세를 부과해도 국내 산업에 대한 피해를 제거하기에 충분할 경우 그런 낮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낮은 관세 규칙'을 적용한다"(2절 3조 나항)는 '최소부과 원칙' 조항이 들어가 있다.
이밖에 우리측 협상단은 기존 요구사항 중 △버드 수정안 경과규정 폐지(미국이 외국업체로부터 거둔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금을 국내 피해업체들에 재분배하는 것 금지) △종료재심 남용 금지(반덤핑관세 부과 기한이 자동 종료될 경우 '예외적인 연장 사유'를 악용해 반덤핑 조치를 연장하는 것 금지) △공익조항의 의무적 고려(반덤핑 조치를 내리기 전에 국내산업의 경쟁력과 물가 등을 고려하는 것) 등을 5차 협상 때 철회했다. 우리나라 수출업자들이 한미 FTA에 꼭 들어가기를 바랐던 것들이 아예 우리 측 요구사항에서 빠져버린 것이다.
무역구제 분과에서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제외해버린 이유에 대해 우리측 협상단 측은 "그런 사항들은 이미 다자간 통상협상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뺐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미 FTA가 아니라도 WTO(세계무역기구)의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에서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니 굳이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에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측은 13일 "정부는 기왕에 DDA 협상 타결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FTA로 방향을 선회하겠다며 FTA 명분론을 쌓아왔는데 이제 와서 FTA 협상의 어려운 부분은 DDA 협상에서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정부의 협상전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무역구제-자동차·의약품' 빅딜 논리, 어떻게 봐야 하나?
물론 우리 측 협상단도 미국 측에 양보를 하거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 주고받기)'를 할 권한이 있다. 사실 우리 측이 무역구제 분과의 요구사항 갯수를 줄인 것보다 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정부가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과 자동차 작업반 및 의약품·의료기기 분과의 협상을 서로 연계시키는 전략을 분명히 드러냈다는 데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측 협상단은 5차 빅스카이 협상 중 무역구제 분과에서 미국 측이 우리 측 요구를 거부하자 무역구제 분과는 물론 자동차 작업반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도 '자발적으로' 중단시켰다고 했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11일 KBS1 라디오의 '라디오 정보센터 김원장입니다'에 출연해 "무역구제 분야에서 우리 측 요구사항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만 자동차와 의약품 등 미국 측 관심사항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자동차업계는 '미국 반덤핑제도의 개선 없이 한미 FTA에 찬성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기아차의 미국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자동차업계가 한미 FTA 협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상당히 줄어듦에 따라, 미국 측 반덤핑제도 개선과 관련된 국내 자동차업계의 요구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협상은 미국 측에서 우리 측의 무역구제 관련 요구사항을 전부 또는 일부 수용하면 우리 측이 의약품· 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서 연내에 실시될 '건강보험 약값 적정화 방안'에 미국 측 요구사항들을 다수 수용해 주는 것과 지적재산권-의약품 연계협상에서 미 제약회사의 의약품 특허권을 연장해주는 방안을 여럿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추가로 대기 오염도를 낮추기 위해 도입된, 배기량을 기준으로 한 우리 측 세제에 '살짝' 손질을 가하는 방법이 포함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에서 미국 측 무역구제 조치나 제도의 완화를 '찔끔' 얻어내는 것은 우리 자동차업계에 돌아갈 수 있는 '약간의 이익'과 국민 모두가 건강(건강보험 제도의 후퇴 및 약값 상승)과 환경(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의 변경) 측면에서 '엄청난 희생'을 교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적인 한미 간 이익의 균형 측면에서 봐도 손해이지만, 국내에서 이익을 보는 당사자와 손해를 보는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는 전형적인 '대내 불공평 협상'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말로는 국내 소비자들의 후생 증대를 위해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한다면서 실제 협상장에서는 국내 생산자들의 작은 이익을 위해 대다수 소비자들에게 손해를 초래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래서 나오고 있다.
미 무역구제 제도, 꼭 나쁜 것이기만 한가?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미국의 무역구제 제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이냐는 문제다. 한미 FTA 협상단과 재계 등 한미 FTA를 지지하는 진영은 물론 한미 FTA 저지 범국본 등 한미 FTA 반대운동을 하는 진영도 공통적으로 미국의 무역구제 제도를 '절대악'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무역구제라고 번역되는 '트레이드 레머디(trade remedy)'는 사실 '무역교정(矯正)'으로 번역돼야 본래의 뜻을 더 잘 전달된다. 주류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되는 자유무역(free trade)은 어떤 조건 하에서도 교역을 하는 나라들을 두루 이롭게 하는 '환상적인'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국가 간 힘의 불균형과 정보의 비대칭성, 그리고 각국 무역관련 제도 및 법의 허점을 이용한 '무역사기(fraud)'나 '무역법규 위반(violation)'이 왕왕 일어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국내 산업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이런 제도가 시행되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구제 제도도 분명 이런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다만 미국의 무역구제 제도가 본래의 도입 취지대로 자국 업계의 피해를 구제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고 힘 없는 국가의 수출업체들을 차별하고 이들의 정당한 대미수출도 가로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한 무역구제 제도 논란은 일반적인 무역구제 제도 전체에 대한 평가와 분리해 현재 집행되고 있는 '현실의 미국 무역구제 제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진행돼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결국 盧대통령이 '독박' 쓸 수도
18일 현재까지도 미국 측은 무역구제와 관련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무역구제 관련법의 제·개정을 가져올 수 있는 협상을 할 권한은 미국 측 협상단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원칙적인 이유와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보호무역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함으로써 한국 측 요구를 들어주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자국 내 정치적인 상황을 내세워 강경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카틀로스 구티에레스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12일 중국으로 가는 길에 우리나라에 들러 "미 행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법률을 어떻게도 개정하지 않는 선에서 FTA 협상을 타결하라는 미 의회의 위임을 받았다"며 "(미국 측 협상단이 한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미 의회에) 법률 개정을 요청할 경우 모든 것이 중단될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못박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딜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결렬 요인)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그리 많지 않다.
무역구제 분과의 공동분과장인 백두옥 산업자원부 조사총괄팀장은 지난주말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측이 무역구제 분과에서 어떤 진전된 입장을 내놓았느냐'는 질문에 "협상기간 중에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상하 양원의 의원들, USTR(미 무역대표부) 고위 관계자들, 업계 대표들을 만났고, 이번엔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미 상무성 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층을 접촉하는 등 한미 양국 간에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백두욱 팀장은 '미국 측이 우리 측의 6가지 요구사항 중 몇 개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럴 경우 우리 측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미국 측이 미 의회에 제시한 'Range of proposal(제안의 범위)'를 봐야 '기브 앤드 테이크'를 할 수 있는 협상범위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은 18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미국이) 무역구제 부문에서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성과를 꼭 낼 것"이라면서 "우리가 몬태나에서 (무역구제) 협상을 깬 것은 법 개정이 불가하다는 (미국 측) 입장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며, 그러면서 미국 행정부가 미국 의회와 이야기할 입지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 장관은 지난 주에 방한한 칼로스 구티에레스 미 상무장관이 "행정부 차원에서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미 양국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앞으로 미국 측은 미국 법령의 제·개정이 필요한 요구사항은 거부하고 미국 법령의 재·개정이 불필요한 요구사항을 들어줌과 동시에 우리 측 요구사항보다 낮은 수위로 새로이 작성한 문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측의 요구사항 중 양국 간 협력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요구사항 1개만 관철되는 것으로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이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조금 더 양보한다면 양국 간 협력위원회 설치 외에 △조사 개시 전 사전협의 △상호합의에 의한 반덤핑 조사 중지 △조사당국의 추정자료 사용 제한 등 3개의 요구사항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를 우리 측이 추가로 받아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미국 측이 무역구제 분과에서 이런 수준, 또는 그 이하의 수준에서 꿈쩍하지 않는다면 한미 FTA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양국 협상단은 이를 고위급, 나아가 양국 행정수반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독박'을 쓰는 셈인데 과연 그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