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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농업, 없는 셈 치자…라고요?

[한미FTA 뜯어보기 144 : 왜 한미FTA에 반대하냐고?(2)] 농업 포기로 잃게 될 것들

가을걷이도 이제 끝났다. 들녘에는 마른 볏단만 한가하다. 저렇게 겨울을 맞겠지. 다소 신산한 기운의 들녘은 봄, 여름, 가을의 기억을 품고 겨울로 투신할 것이다.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언젠가 반동의 날이 오면 대지를 뚫고 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지.

봄이 시작한다고 지겨워 할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경이롭기 때문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어제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늘 영광이다. 자연과 대지는 그걸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거의 '지혜'의 수준이다. 저들에게서 배우는 지혜는 어쩌면 너무도 단순하다. 그 단순함 때문에 그것의 대단함을 쉽게 망각한다.

이런 망각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농업이다. 여린 볍씨 하나는 혼자서 흙을 움켜쥐고 움 튼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농업은 이렇게 생명의 교감을 통해서 이뤄진다.
▲지난 4월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의 한 텃밭에서 쑥쑥 자라던 마늘 싹. ⓒ 프레시안

농업과 다른 산업은 어깨동무를 할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한참이다. 우리는 많이 양보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야 나름대로 '폼'이라도 갖추고 싶겠지만 그게 그리 쉽겠는가. 저들과 체급별 경기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많이 때리지 말라고 미국에 주문하는 것도 공허하다. 링에 오르면 치명타를 맞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 치명타는 다름 아니라 농업의 파산이다.

누구는 "그까짓 농업, 지금도 있으나 마나 한데 뭐 없는 셈 치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낡은 세간살이가 볼품이 없으니 그냥 버리라는 것이다. 정부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들은 이걸 경제원리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농업은 결코 여러 개의 산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그리고 농업. 이런 식의 배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농업이 기생물일 뿐이다.

농업은 결코 그런 식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농업은 하나의 산업이기 이전에 대지를 구성하고 보존하는 하나의 장치다. 이 땅과 들과 산은 농업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농업의 대지 관리는 공장에서의 기계 관리와 다르다. 농업에는 기계처럼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는 여분의 공간이 늘 함께 있다. 흙이나 공기는 늘 교감한다. 들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은 기계적 계산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자연은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을 선물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런 선물을 통해 공동체의 원형을 배운다. 그것은 삶을 훈련하는 하나의 단계다. 인간이 자연과 공유해야 할 연대감을 농업은 가르치고 있다.

농촌이 사라진 대한민국은 어떤 곳이 될까?

한미 FTA는 단지 경제구조의 조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 재조정이다. 이것은 일종의 반칙이다. 경제적 손익을 운운하면서 사실은 삶의 방식 자체를 저당 잡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파괴적인 결과는 농촌 공동체의 파괴를 통해서 쉽게 드러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농업을 포기한다면 저 풍요로운 들녘은 어떤 곳으로 변할까. 저 푸른 시내와 강물은 무슨 색이 될까. 도시 바깥에 있는 땅에 온통 공장을 세울 수 있을까. 내친 김에 모든 곳을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안 될 것이다. 과거의 농촌은 '도시의 주변'이나 '버려진 곳'이 되기 십상이다.

농업이 사라지고 농사 짓는 일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한가롭고 기분좋게 시외를 달릴 수 있을까. 아마 도시의 주변으로 전락한 농촌은 도시에서 쏟아지는 산업폐기물이나 오염된 공기가 채울 것이다.

우리는 농업의 역할이 단지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농업은 생태계를 지키는 중요한 장치다. 농업은 생태계의 순환을 북돋우고 확인한다.

아울러 인간은 농업을 통해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다. 생태계와 인간은 농업을 통해 단일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인간과 생태계'가 아니라 '인간 속의 생태계'이자 '생태계 속의 인간'이다. 생태계는 결코 우리의 주변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우리 몸의 일부를 지키는 중요한 신진대사 작용과도 같다.

한미 FTA는 '못된 상상'

농업의 포기는 인간에 대한 포기이기도 하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업자가 될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로 피해를 입게 되는 농업 종사자들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단기간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전업(轉業)을 위한 직업교육을 시켜주는 정도일 것이다. 농민이 멋있게 전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당연히 '무능한 농민'이라는 책임추궁이 뒤따를 것이다.

반도체산업의 수익금으로 농업 종사자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으로 보면 마찬가지 아니냐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이 왜 수십 년 간 종사한 직업을 버리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받아야 하는가. 왜 그들이 저들에게 빌어먹어야 하는가. 피해자 구제책은 현재의 농민을 기생자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한미 FTA는 결국 한 인간의 팔다리를 자르고 나서 그를 값싸게 먹여 살리겠다는 못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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