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 측은 "한미 FTA 협상에서 우리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이 우리의 의사와 상관 없이 결정되고 있다"면서 "이번 릴레이 기고는 한미 FTA에 대한 단순한 반대를 넘어 우리의 삶의 권리를 새롭게 상상하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유+너머' 측은 "오는 22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 주최로 열릴 예정인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 총궐기대회 시민행진'이 성공을 거두는 데 우리의 기고가 도움이 되면 더욱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정수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겸 서강대 강사의 글을 시작으로 릴레이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한미 자유무역협상(FTA) 4차 협상이 끝나고 이제 협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6월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한미 FTA의 문제점을 들춰낸 국내 반대론자들과 협상에서 오만한 자세로 일관하는 미국 사이에서 어찌됐든 일을 성사시켜 보겠다는 일념으로 왔다갔다 하는 우리 협상단을 보노라면 어느 유태인 중매쟁이가 떠오른다.
이 중매쟁이는 소개받은 처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한 청년의 불평을 듣게 된다.
"장모 될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심술궂고 둔하단 말이오."
중매쟁이가 대답한다.
"장모랑 결혼하는 게 아니잖소. 딸하고 하는 거지."
"그렇지만 그 여자는 젊지도 않아요. 예쁘지도 않고…."
"그건 문제가 안 돼요. 젊지도 예쁘지도 않은 만큼 그 여자는 당신에게 더 충실할 테니까."
"돈도 없어요."
"돈에 대해 말하다니, 도대체 돈하고 결혼하는 거요?"
"그 여자는 등도 굽었어요."
"아니, 당신 뭘 원하는 거요? 그러면 그 여자가 아무런 결점도 없어야 한단 말이오?"
한미 FTA 반대론자와 우리 FTA 협상단 사이에 오고간 대화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멕시코한테 하는 걸 보니 무서워 죽겠어요. 미국은 원래 심술궂지 않나요?"
"아니, 우리가 지금 멕시코랑 뭐 하자는 거요? 우리가 멕시코랑 같소? 그리고 멕시코가 뭐 어떻단 말이오? 우린 뭐가 잘났다고…."
"하지만 협상도 하기 전부터 4대 선결조건부터 들어주는 건 말도 안 돼요"
"아니, 혼수도 없이 결혼하려고 그랬소? 그리고 어차피 그건 우리한테 필요없는 거였소."
"그렇지만 처음에 얘기했던 대미(對美)수출 17%, 국내총생산(GDP) 2% 성장률도 거짓이라는 게 탄로나지 않았나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요."
"돈에 대해 말하다니. 도대체 우리하고 미국이 돈만 가지고 따질 관계요? 북한이 핵실험하는 거 보지 않았소? 한미동맹을 위해서라도 이건 해야 하는 거요."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서라지만 우리는 미국하고 게임이 안 돼요. 질 게 뻔해요."
"그건 문제가 안 되오. 우리가 비교열위에 있는만큼 배우면서 경쟁력도 생기는 거요."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라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지역중소기업 육성 지원, 지역환경 보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 같은 조례 중에서 FTA 협상원칙과 어긋나는 게 86개나 된다면서요?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그것도 모르고 FTA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고요. 도대체 저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걸려들 수 있는 법규나 조례에는 뭐가 더 있는 거예요?"
"결혼도 하기 전에 결혼 후 벌어질 일에 대해 일일이 각서 쓰는 거 봤소? 그러니까 '포괄적' 협상이라는 것 아니오. 모르지요 나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게다가 미국은 파산 직전에다가 빈부격차도 엄청나요."
"아니, 당신 뭘 원하는 거요? 그러면 그 나라가 아무런 결점도 없어야 한단 말이요?"
5개월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왠지 길게 느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새만금 간척사업 때처럼 '사업을 진행해도 얻는 건 없지만 지금까지 진행해 온 것을 중단할 만큼 잃는 것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합의된 것보다 합의되지 않은 게 더 많고,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게 더 많은 상황에 짜증만 내다가 '에라, 뭐든지 하라 그래라. 지금보다야 못하겠어?'라는 식으로 여론이 한미 FTA에 대한 찬성 쪽으로 기울지나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집값만큼은 잡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집값 폭등으로 몰릴 대로 몰려서, FTA 협상까지 중동무이한 무능력자로 퇴임하기 싫어 오기를 부리지나 않을까?
결혼도 이렇게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내몰려서 하는 경우가 많다. 중매쟁이는 "결혼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를 안 살아보고 어떻게 알겠느냐? 중요한 건 미혼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미 FTA 중매단'도 "누구랑 하든 어쨌든 FTA는 해야 하는 것이고, 미국은 가장 번듯한 상대"라는 일관된 주장을 편다.
좋을까? 나쁠까?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쁠까? 경제적으로 더 안정될까? 부대비용이 더 크지 않을까? 사실 결혼을 하기 전에 이런 고민을 안 해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본인이 직접 결혼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는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다가 부모와 중매쟁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결혼해 버린다. '결혼'을 해야겠다고 일단 상정한 이상 이런 '지리한 고민'과 '자포자기식 결정'을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이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한미 FTA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라고 물어야 할 때가 됐다.
중매쟁이와 부모가 원하는 것이 미혼생활의 청산이듯, 우리 정부와 FTA 협상단이 원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한국사회를 청산하고 그 대신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통상 확대나 관세 철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 자본의 천국, 시장의 천국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럴진대 거기다 대고 'FTA 하면 얼마나 남고 얼마나 손해야?'라고 물어보는 건 순진한 짓이다. 돈 많은 사람, 기업할 사람, 투자할 사람한테 한미 FTA 체결 이후의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열심히 한미 FTA를 찬성하면 될 일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 자신의 삶이 그런 상위 10% 소득계층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 사회가 돈 많은 사람에게만 천국인 사회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면 될 일이다.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