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 사회와 삶의 틀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만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초로 설정된 한미 양국 정부 간 FTA 협상 타결 예정시점까지 앞으로 4~5개월 동안 국내에서는 이 협정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과 찬반 양측의 행동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지난 달 27일 '공공성과 한국사회의 진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 사회의 현 단계와 공공성 세우기의 새 길에 관한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한미 FTA를 주요 주제로 다뤄 눈길을 모았다.
이 심포지엄에서 '한미 FTA와 시장사회로 가는 한국적 길-탈공공화와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이라는 제목으로 한미 FTA에 관한 발제를 했던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장(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이 발제 내용을 간추려 <프레시안>에 보내와 이 기고문을 4회에 걸쳐 나눠 소개했다. 이번 글은 그 마지막 회다. 이 글에서 이 소장은 한미 FTA를 기득권 세력과 자본에 의한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의 일환으로 진단하고 그 극복을 위한 대안의 길을 '공공성의 연대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편집자>
한미 FTA는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인가. 양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개방, 경쟁, 투자자 보호 등을 통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모두가 승자가 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별명도 코러스(KORUS)라고 지었다.
우리 정부에 따르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세계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에의 접근도가 크게 높아지며,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되어 경쟁이 촉진되고 선진 경영기법이 전수됨으로써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새로이 제고될 뿐 아니라 일자리도 대량으로 새로이 창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제도와 관행이 선진화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지렛대로 한미 FTA를 이용하려 한다. 즉 한미 FTA를 통한 미국과의 깊은 경제통합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 안의 집단 이기주의와 공공성에 대한 과잉집착으로 나타나는 '분배연합'을 깨뜨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97년 체제에 대한 인식, 1987년을 전환점으로 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인식, 우리 사회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 등의 측면에서 정부와 시민사회 진영이 대립하고 있다.
개방, 경쟁, 투자자 보호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시장 근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허울을 걷어내고 보면, 한미 FTA를 통해 우리의 경제사회를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면서 업그레이드시킨다고 하는 정부의 논리는 미국의 국익과 국제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논리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 FTA를 통해 강요되는 국제자본의 탈공공화와 국가에 대한 자본과 시장의 '역규제'는 국내자본의 탈공공화와 '전반적 탈규제 체제', 이해당사자에 대한 무책임성과 사회적 무책임 체제를 낳을 것이다. 이런 탈공공성과 무책임성이 자본에게는 투자유인이 된다.
즉 우리나라는 정녕 투자자를 보호하고 경쟁규율이 작동하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미 FTA에 붙인 코러스(KORUS)라는 이름의 실체적 내용이라 하겠다. 그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보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더욱 공고히 하는 나라, 신자유주의 '선진국'은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삶의 방식과 터전을 파괴하고 그 미래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한미 FTA는 그간 1997년 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어 온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 사회경제 구조의 양극화와 탈민족화, 투기적 금융화,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구성원들의 근시안적 단기주의 행태,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 해체 경향을 새로운 단계로 고도화시킬 것이다. 필경 제2, 제3의 론스타 사태가 속출하게 될 것이다.
이대로 한미 FTA가 체결된 뒤에는 투기자본이 우리 정부가 부과한 세금을 수용으로 해석하고 보상을 요구할 것이며 그 앞에서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투기자본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 대중을 울리고 있는 내외 자본의 고리대금업이 제철을 만난 듯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대량의 고용파괴 현상이 일어나는 반면 양질의 신규고용 창출은 부진하고 고용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거시경제의 대미 동조화와 불안정한 취약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만약 달러화 가치가 폭락하고 미국시장이 위축되면 한국경제의 취약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나프타가 그랬듯이, 한미 FTA의 장밋빛 약속도 틀림없이 깨어지고 말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참여-소통-헌신-협력을 통해 사회통합적인 삶의 공간이자 실체적 터전으로서 '민족경제'를 키워가자는 요구, 각자의 지불능력과 무관하게 모두가 삶의 보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요구, 건강-생명-안전-생태보전의 요구, 국민경제의 내발적인 선순환과 다층적인 분업연관을 제고하자는 요구, 미국식 스탠더드를 물신숭배하듯 떠받들 것이 아니라 나라의 제도적-문화적 다양성의 이익과 정체성을 발전시키자는 요구, 나라의 발전정책을 무분별한 개방정책에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 개방전략을 발전정책-사회정책-문화정책의 수단으로 삼자는 요구와 충돌하고, 이런 요구들에 일대 타격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위의 요구들에 필요한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한미 FTA가 타격이 될 것이다. 즉 그 어떤 자본이든 이 나라 안에서 활동하는 한 이해당사자와 사회에 대한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 공정경쟁 개념을 나라 사정에 맞게 재정의하고 재구축해야 한다는 요구, 국가의 공공정책과 민주적-사회생태적 규제의 능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 사회통합적인 시민경제와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한미 FTA에 의해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고 파괴될 것이다.
한미 FTA가 갖고 있는 여러 다양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세우고 있는 한미 FTA 최대의 이데올로기이자 국익 증대와 대중적 삶의 개선을 함께 가져다줄 비결로 정부에 의해 선전되는 개방, 투자자 보호, 공정경쟁 등의 논리를 필자가 이 글에서 주로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시장에의 접근도 증대나 외국인투자 유입의 증가 등 국가 간 상품, 서비스, 투자의 이동 그 자체보다 우리의 법, 제도, 관행의 개조와 시장화를 통해 우리 안의 공공성, '모두를 위한 나라'를 향한 우리의 관계성, 우리끼리 서로 협력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과 그것을 구현시키는 제도, 정책, 문화가 얼마나 타격을 받고 파괴되는지에 시선의 중심을 맞추어야 한다.
한미 FTA는 나라 대 나라 수준에서도 큰 불공정성을 갖고 있다. 한국은 잃을 것은 너무 크고 분명함에 반해 얻어낼 것은 너무 빈약하고 불투명하다. 농축산, 투자, 의약품, 금융, 문화와 미디어, 공공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FTA 협상의 핵심 의제에서 우리는 온통 미국에 내어줄 것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처음부터 4대 선결조건을 보장한 바람에 심각한 불평등을 전제로 해서 협상 아닌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섬유 원산지 기준 완화, 반덤핑 규제 완화 등 무역구제 조치, 개성 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정도가 우리가 미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다. 상품, 서비스, 투자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면서 취업비자의 엄격한 통제 등으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은 가로막는 것도 지극히 불공평한 처사다. 그러나 미국 취업비자 확대를 비롯한 우리의 요구는 그간의 경험이나 미국의 내부 사정으로 볼 때 미국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서비스, 정부조달, 무역 관련 기술장벽 등의 분야에서 자국 주정부를 협정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나오고 있다. 미국은 또 최혜국 대우 기준에서 과거에 자국이 제3국과 맺은 모든 협정은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 대 나라 수준에서도 한미 FTA는 결코 '코러스'가 아니며, 오히려 심각하게 '불공정한(unfair)' 경제통합 협정이다.
이처럼 한미 FTA 협상에 임하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기본 의도, 그간의 협상 경과로 볼 때 한미 FTA는 그 성격상 한국 사회경제의 공공성 확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사회통합적 발전, 국민 대중의 삶의 질 개선,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지속가능한 개방을 이루는 정책이 되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가 FTA 일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FTA가 지속가능한 개방의 정책수단이 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 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생태적 책임성을 요구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필수적,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 국가의 규제 능력을 보호해야 한다.
△ 투자자에 대한 엄청난 특권 보장조치를 막아야 한다. 간접수용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분쟁 사안과 관련해서도 투자자-국가 제소권을 제거해야 한다.
△ 보건의료, 식품안전, 환경 등의 분야에서 국민의 공적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
△ 서비스와 투자의 개방은 네거티브 리스트가 아니라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 FTA에 대해 헌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처럼 우리도 통상협정과 국내법이 충돌할 경우 국내법이 우선하는 원칙을 확보해야 한다.
△ 나라 대 나라 수준에서 이익의 균형이 보장되는 공정한 협정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사고방식과 정책기조에서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 깊은, 맹목적 개방이 나라의 발전정책 전반을 지배하고 발전의 우선적 목표를 구축(驅逐, crowding out)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개방정책이 산업정책과 사회복지정책, 문화 발전정책에 기여하도록 하려면 그것이 나라 발전정책의 일부로 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 내외 자본의 무책임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국민분열 전략이 아니라 성장과 참여, 복지가 선순환하는 사회통합적 발전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 결정적인 요건이다. 한 손으로는 한미 FTA를 밀고 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비전 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을 내거는 식의 모순적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내외 자본이 공적 책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궤도에 나라를 집어넣어 놓고, 무슨 재주로 노르웨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과 같이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수준으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져야 한다. 정부는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시민사회와의 충분한 소통 및 토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근 제주도에서 한미 FTA 4차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미 FTA와 안보 연계론이 급부상했다. 집권 여당의 정책위 의장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으려면 한미 FTA가 성사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나설 정도다. 나라 경제와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고 국민의 삶의 틀을 송두리째 뒤바꿀 중대한 협상이 북핵위기 상황에 묻혀갈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적어도 그렇게 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
앞으로 7개월 뒷면 1987년 6월항쟁 20주년을 맞이한다. 지금은 자유주의 개혁정부가 한미 FTA를 지렛대로 탈공공화 보수혁명을 밀어붙이면서 1997년 신자유주의 체제를 업그레이드시키려 하고 있는 때이며, 약 20년에 이르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 사이의 모순적 분열증이 거의 정점에 도달하면서 그 한 순환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때이다. 오늘의 6월은 더 이상 20년 전 그 날의 6월이 아니다. 이는 곧 한국 시민사회 운동이 이제 새로운 6월로 가야 할 출발점에 섰다는 말이다. 그 길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며,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지배세력의 업그레이드에 대응하여 시민사회 운동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그 동력의 새로운 재구성, 민주주의의 새로운 사회생태적 상상력과 대안의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 우리 시대의 진보를 말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시민운동, 민중운동, 노동운동, 소수자운동은 제각기 자신을 일신하면서 '공공성의 연대정치'라는 새 장을 열어가야 한다. 차이와 다양성이 횡단으로 연계되는 민주적, 사회생태적 공공성의 열린 연대정치가 '모두를 위한 나라'로 가는 시민적 진보정치의 새 길을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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