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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왜 한미 FTA로 돌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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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왜 한미 FTA로 돌진했나?

[한미FTA 뜯어보기 133 : 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에 맞서(2)] 97년 체제의 업그레이드

노무현 정부가 지난 2월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최근 4차 협상까지 마치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 사회와 삶의 틀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만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초로 설정된 한미 양국 정부 간 FTA 협상 타결 예정시점까지 앞으로 4~5개월 동안 국내에서는 이 협정의 문제점에 대한 토론과 찬반 양측의 행동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연대 부설 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지난 달 27일 '공공성과 한국사회의 진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 사회의 현 단계와 공공성 세우기의 새 길에 관한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한미 FTA를 주요 주제로 다뤄 눈길을 모았다.

이 심포지엄에서 '한미 FTA와 시장사회로 가는 한국적 길-탈공공화와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이라는 제목으로 한미 FTA에 관한 발제를 했던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장(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이 발제 내용을 간추려 <프레시안>에 보내온 기고문을 4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이 글에서 이 소장은 한미 FTA를 기득권 세력과 자본에 의한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의 일환으로 진단하고 그 극복을 위한 대안의 길을 '공공성의 연대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편집자>


왜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되었나. 이는 추진 경위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추진 논리의 문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레 이 문제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간 노무현 정부의 개혁 이미지에 애착을 가져 왔던 사람들, 한미 FTA는 원래 한나라당의 의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이 정권이 생각하는 한국의 진로와 시민사회 진영이 생각하는 한국의 진로 간에 얼마나 간극이 큰지 알 수 있다. 유태환은 저간의 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을 거론하고 있다('한국의 FTA 정책의 비판적 검토', 시민과 세계, 제9호, pp.194- 195).

① 노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기 위해 대외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개방론자들의 견해를 수용했다.
② 보수 특권층의 반발과 노조, 농민 등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외부충격에 의한 타율적 개혁을 고려하게 됐다. 시스템 선진화를 위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고 개혁반대 세력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구조개혁 수단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됐다.

이 설명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된 이유를 그런 대로 잘 정리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왜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되었나?'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다각도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짚어보아야 한다.
▲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가 어쩌다 한미 FTA를 추진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이 정부는 한편으로 한미 FTA를 한국경제가 제2의 캐치업을 도모할 수 있는 도약대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한미 FTA는 제조업 분야에서의 중국의 추격에 대응해 한국경제가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고 일자리도 대량으로 창출할 수 있도록 해 줄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의 최대 논거로 제시되는 것이 개방과 경쟁의 국가경쟁력 증대 효과다. 근대화 이후 이 정부만큼 시장, 개방,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맹신한 정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정부는 시민사회 진영의 반대에 직면하자 '개방 대 쇄국'의 흑백 이분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맹목적 개방을 반대하면 쇄국주의자나 종속론자로 몰아붙인다. 노무현 정부의 개방 맹신주의와 외형성장 제일주의는 나프타(NAFTA)와 그것이 멕시코 사회경제에 미친 영향, 그리고 투자자-국가 제소제의 성격을 둘러싸고 진행된 시민사회와의 논쟁에서 잘 나타난다.

정부 관료들에 따르면 멕시코 경제가 잘된 것은 다 나프타 때문이고, 잘못된 것은 다 멕시코 자기가 못난 때문이다('잘된 건 나프타 덕, 잘못된 건 멕시코 탓이라니', 한미 FTA 뜯어보기 64, <프레시안> 참조). 그리고 이들은 "투자자-국가 제소제의 본래 취지는 힘의 논리를 배제하는 방어적인 장치"라고 주장한다. 즉 투자유치국이 약소국일 경우 투자자가 자국정부의 강한 힘을 배경으로 군함외교와 같은 방식으로 자국의 논리를 관철시키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FTA 투자분쟁 생겨도 공공정책 훼손 없어-투자자 정부 제소권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국정브리핑, 2006년 6월 11일 등).이는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쇄국주의자, 종속론자를 비판하면서 이 정부가 추구하는 것은 과연 뭘까. 정부 말을 빌리면 그것은 선진 통상국가 또는 개방적 통상국가로 불리는 것으로서, 국내시장을 벌거벗겨 국제자본의 자유로운 활동무대로 내어주면서 비즈니스 허브화를 위한 숨 막히는 입지경쟁 판에 뛰어들어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 정책 패키지의 내용은 통화 긴축,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유연한 노동법규, 탈규제, 사유화, 전방위적 개방 등이다.

이는 바로 토머스 프리드먼이 '황금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이라고 부른 정책들이다. 국가가 깊은 개방으로 빠져 들면서 이 옷을 걸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국가가 이 황금구속복을 걸치게 되면서 다음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경제는 성장하고 정치는 수축한다. (…) 이 때문에 이 구속복을 걸친 나라들에서는 여당과 야당 간에 실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가 날로 어려워진다. (…) 그 정치적 선택은 펩시냐 코카냐 정도의 차이로 축소된다."

둘째, '개방=경쟁'이라는 논리는 단지 '순수한' 산업선진화의 논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를 밀고 가는 이 정부의 사고방식 속에는 개방과 경쟁에 관한 나름대로의 정치경제학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정권의 담당자들이 보기에는 1997년 위기 이후 전개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안에는 여전히 온갖 집단 이기주의와 부패가 똬리를 틀고 있고, 또 우리 분수에 넘치게 공공성이 강조되고 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피를 덜 흘렸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 정부는 한층 깊은 개방과 미국과의 경제통합, 그에 따른 격렬한 경쟁과 도태, 제도와 관행의 미국화가 집단 이기주의와 공공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로 나타나고 있는 우리 안의 '분배 연합(distributional coalitions)'을 깨트리는 새로운 단계의 시장개혁이 되고, 그럼으로써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다시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본다.

바로 이 논리, 즉 시장-개방-경쟁을 공공선으로 보면서 그것의 바탕에 깔려 있는 위험, 실패, 권력적 요소는 무시하고 시장-개방-경쟁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지대추구적 행태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 담론의 핵심이다. 앞서 인용한 프리드먼은 '황금구속복'을 걸치고 '성공'을 도모하려는 나라들을 향해 "당신들의 나라는 부상자를 쏘아죽일 용의가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데, 이 정부는 "부상자가 더 나와야 하고, 피를 더 흘려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통해, 실추되어 허약한 정치적 권위의 만회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장개혁은 단순히 국가의 후퇴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소유권 제도와 경쟁 방식에 새로운 급격한 변동을 가져오면서 국가권력의 재구성을 동반한다. 우리는 한미 FTA의 추진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노 정권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시기에 우리 사회가 달성한 최대의 성취라 할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후퇴시키고 까먹으면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넷째, 한미 FTA의 추진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노무현 정권의 성격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한미 FTA의 추진과 더불어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은 집권 때와 전혀 달려졌다. 이 정권을 지지했던 진보세력은 대부분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반면 이 정권을 반대했던 보수세력은 한미 FTA 추진에 대해서만큼은 박수로 환호하고 있다. 즉 우리는 한미 FTA를 중심으로 '자유-보수 컨센서스 동맹'이 구축되고, 이 지배블록과 '반신자유주의 저항연합'이 대치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다섯째, 한미 FTA가 정말로 순수하게 경제적 고려에 기초하여 결정된 것인지조차도 큰 의문이 있다. 공개된 대외경제위원회 자료(특히 제2차[2004년 11월 6일]와 5차[2005년 9월 12일] 대경위 자료 참조)에 의하면, 산업발전 전략 측면에서 분석한 FTA 체결의 우선순위는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FTA 로드맵과는 상당히 다르다.

산업발전 전략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높은 우선순위는 중국과 아세안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이 농산물 시장에서의 양보라는 파격적 조건까지 내놓으면서 한중 FTA를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4대 선결 조건을 수용하면서까지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업 피해를 고려하더라도 중국은 FTA 추진 1순위였다.

정부가 중국의 제안을 뿌리치고 한미 FTA를 선택한 것은 이른바 '국내외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결국 이 정부가 한미동맹의 틀에 묶여 한미 FTA를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되며, 한미 FTA의 추진배경에 북한 문제로 벌어진 한미동맹의 틈을 FTA로 메우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무근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의한 한미 FTA 추진은 한미 군사안보 동맹에 발목 잡힌 채 이 틀 안에서 한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 사안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안보적으로는 가장 공고하게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으면서도 경제개혁과 통상전략에서는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일본과 크게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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