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기본법'이란 명칭의 법률 제정안이 국회에 3개나 발의되어 있다. 조만간 공청회를 거쳐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심사를 할 모양이다.
3개 법안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금방 알기는 어렵다. 제안의 이유나 기본이념은 3개 법안이 거의 같은데 추진기구가 제각각이다. 각각 지식재산부, 지식재산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추진하자는 것만 다를 뿐 나머지 내용은 구분이 어렵다. 어째서 서로 다른 의원들이 경쟁하듯 이처럼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원본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지적재산기본법이다.
고이즈미와 레이건의 지적재산권 강화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은 2002년 지적재산기본법을 제정했다. 2003년에는 지적재산권 전략을 담당할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했다.
고이즈미 내각이 지적재산권 전략을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것은 1990년대 들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일본의 산업 경쟁력 저하와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돌파하려는 전략의 하나다. 1970년부터 미국, 유럽 기업의 원천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생산현장에 적용해 저가의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일구어 왔던 일본이 1990년대 들어 급격한 생산성 약화를 겪자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물론 그 타깃은 한국, 중국, 대만의 제조업 분야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전략의 영향 때문이다.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과 닮았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지적재산권을 통상과 연계하는 전략을 택하고 공격적 일방주의의 대명사로 불리는 통상법 301조의 무역보복을 통해 외국의 지적재산권 제도의 변화를 강요했다. 301조 조사 대상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한국은 1986년 말 국내 지적재산권 제도를 미국의 요구에 따라 모두 개정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좀 더 강화된 지적재산권 제도를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권 차원의 지적재산권 전략으로 한국을 공격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듯이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전략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자기들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개도국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걷어차버리는 것이다.
일본이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지적재산권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지식재산기본법이 변리사회의 직역 이기주의와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물론 국회에 발의된 지식재산기본법에도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라는 수사가 동원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실효성에 대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일본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그야말로 '빌린 수사'에 불과하다. 한국이 일본이나 미국처럼 지적재산권을 강화한 뒤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것이 기술혁신이나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지만, 우리에게 걷어찰 사다리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1980년대에 일본은 왜 미국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는지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변리사-특허청의 이기주의
한국에서 지식재산기본법을 추진하는 동력 중 하나가 변리사의 직역이기주의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확대가 따라올 게 뻔해 보인다. 이 소송대리권 문제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법률상 소송대리권이 인정되는 전문직은 변호사다. 그런데 변리사법에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며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문제는 변리사법에 규정된 소송대리권의 범위를 둘러싸고 변리사회와 변호사회의 견해가 정반대라는 점이다. 특허와 관련된 소송은 크게 2가지다. 등록된 특허권의 무효 여부, 상표의 무효나 취소 여부를 다투는 행정소송(특허나 상표를 등록해 준 특허청의 행정처분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 특허권의 침해에 대한 금지나 손해배상과 관련된 민사소송이 그것이다. 특허와 관련된 행정소송은 특허법원에서 관할하는데, 현재 특허법원은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허에 관한 민사소송의 소송대리권에 대해서는 변리사회와 변호사회의 의견이 다르다. 변리사법을 문언대로 해석하면 변리사에게도 민사소송의 대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변리사회의 주장이다. 반면에 변호사회는 변리사는 민사소송 절차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므로 대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법원도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행정소송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어서 현재 일반 민사법정에서는 변리사의 소송대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민사소송의 대리권 확보를 변리사회에서는 숙원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것이 지식재산기본법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금 변리사회는 소송대리권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만 맡고 있는 특허법원이 민사소송까지 관할해야 한다고 관할집중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특허법원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해 왔으므로 특허법원이 민사소송까지 관할하게 되면, 소송대리권 문제가 자기네들의 희망대로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계산에서다.
여기서 동원되는 논리가 바로 재판의 전문화, 소송절차의 신속화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조하고 이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법안이 통과되면, 지적재산권자의 보호를 위한 재판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이를 담당할 법원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된다. 실제로 법안에는 "지적재산권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절차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되고 권리구제가 충분하기 이루어지도록 재판의 전문화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확보를 위한 이러한 시나리오는 단순한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다. 지식재산기본법의 원본을 제정한 일본에서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3년에 지적재산전략본부에서 지적재산권 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고등법원 창설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고, 그 다음해인 2004년에 지적재산권에 대한 소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재판부를 동경고등법원에 설치했으며, 이와 더불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해 주었다.
지식재산기본법을 추진하는 또 다른 동력인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특허청이 2006년에 발표한 4대 정책과제 중 3개는 '지식재산의 창출기반 강화', '지식재산권의 활용 촉진', '지식재산권의 보호 강화'이다. 지식재산기본법에는 국가의 책무를 "지식재산의 창조, 보호 및 활용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법안과 특허청의 정책과제가 너무 똑같지 않은가? 이 법안이 통과되면, 특허청의 정책과제가 이제는 국가의 책무가 되고, 더 나아가 대학교, 공공연구기관, 사업자의 책무가 되는 것이다.
인류 공동의 지식을 시장에 넘기겠다고?
특허청과 변리사회가 조직 이기주의란 비판을 도외시하면서 지식재산기본법을 추진하는 데는 지적재산권을 돈벌이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지적재산권 제도에 대한 편협한 이해와 자기 역할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깔려 있다. 이 법안의 기본정신은 '지식'을 재산으로 만들고 이렇게 만든 '지식재산'을 보호하며 그에 대한 권리 활용을 잘 해야 국가경제와 인류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안에 따르면, 국가의 모든 조직과 대학교, 공공 연구기관은 물론 사업자까지도 지식을 재산화하고 상품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앞으로 지식을 재산화하지 않고 타인에게 주거나 공유하는 정부조직이나 대학교, 연구기관들은 법률 위반자가 된다.
지식을 재산권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시장독점권을 인정해야 지식의 생산이 많아진다는 논리는 지식을 상품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가와 기업의 논리이다. 이들이 신봉하는 대표적인 논거가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지식과 정보는 최초 생산에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타인은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으므로, 최초 생산자의 비용 회수를 위한 장치 없이 지식을 공유지에 내버려두면 모두가 공유지에 있는 지식을 소비만 할 뿐 아무도 지식을 생산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만 지식이 생산되는 지식의 과소생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지적재산권 제도가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지적재산권 제도는 공유지에 있던 지식을 사유지로 편입시켜 지식의 소비를 억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식의 생산자는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는 지식 생산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2가지 한계가 있다. 하나는 애초부터 투자비용의 회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지식의 생산에는 이 논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으며, 수많은 기술지식이 독점 재산권의 보장 없이도 혁신되어 왔다는 점이다. 특허권 보호가 강하지 않았던 1960~70년대에 반도체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인터넷의 기반이 된 월드와이드웹(WWW) 기술이나 HTML 기술은 특허권의 보호를 받지 않고도 발전해 왔다. 둘째, 사유지로 편입되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 지식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사유지의 비극' 문제가 발생한다. 즉 생산되는 지식이 많더라도 이것이 사유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제대로 소비를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지적재산권 제도의 효용성과 한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특히 개별 지식 상호 간에 의존성이 높은 첨단기술 분야일수록 특허권의 강화가 기술발전에 오히려 역효과라는 연구결과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지적재산권 강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의회 보고서에서도 지적재산권 제도로 인한 사회적 혜택이 비용보다 많은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논란 중이라고 한다.
지적재산기본법, 칼 잘못 뽑았다
지식재산기본법에서 기본이념으로 꼽는 지식'재산'의 생산과 보호는 '지식' 그 자체의 생산, 보호와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모든 지식을 상품화해야 국가경제와 인류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에는 지식을 상품화하려는 시장폭력 미화의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다. 변리사와 특허청이 이러한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이들은 결국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또 다른 이해집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변리사와 특허청은 특허권을 얻으려는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기 때문에 될수록 많은 기술 지식을 특허출원하여 재산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고, 이를 극대화하는 사회체제를 구축하려는 동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는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자기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변리사법에 따르면, 변리사는 특허에 관하여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해 해야 할 사무의 대리를 업으로 하는 자이고, 특허청은 특허에 관한 사무와 이에 대한 심사, 심판을 위해 만든 행정조직이다(정부조직법 제37조).
이 규정에 따르면, 정작 특허청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기술지식을 독점화하려고 특허출원을 했을 때 그것이 독점의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심사하는 것이다. 일종의 규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특허청이다. 그러나 특허청은 자기 역할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청의 심사관 1인당 연간 처리건수는 2002년에 342건, 2003년에 320건, 2004년에 280건, 2005년에 255건이다. 1년간 근무일수를 생각해보면 심사관이 하루에 2건의 특허를 심사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10년 넘게 특허실무를 해 온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니 등록된 특허권의 무려 절반 가량이 나중에 무효로 판정나지 않은가?
변리사와 특허청이 대리권 확대와 조직 이기주의를 위해 지식재산기본법을 추진하는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해 너무나도 위험한 칼을 뽑아 든 것이고 이를 잘못 휘두르고 있다. 실무가들이 정책에 개입하려면 실무에서는 하지 않았던 연구와 공부를 하고 달려들어야 한다. 지식을 상품화하는 것을 국가와 대학교의 책무로 규정하려는 무모한 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변리사와 특허청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이 법이 관철된다면, 필자는 변리사 자격증을 찢어버려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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