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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길이 지배하는 세계'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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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길이 지배하는 세계'를 거부한다"

[화제의 책] 식탁과 세상을 바꾸는 <로컬푸드>

2001년 9·11 테러 직후 뉴욕의 식당과 가게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뉴욕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교통이 차단되자 먹을거리의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뉴욕 주는 미국 농무부가 인정한 최고 등급의 토양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지역이다. 뉴욕 주의 롱아일랜드 해안 역시 세계 최고의 어장이다.

'어선 선단에 에워싸인 생선 없는 초밥집, 상추와 토마토 밭에 둘러싸인 샐러드 없는 음식점'의 광경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런 관경을 만들어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10년 가까이 전 세계의 농업 문제를 연구해 온 월드워치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브라이언 핼웨일은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로컬푸드>(김종덕·허남혁·구준모 옮김, 시울 펴냄)에서 그 비밀을 파헤친다.

누구를 위한 '먹을거리 맞바꾸기'인가?
▲ ⓒ프레시안

그런가 하면 영국의 전통적인 일요일 식사에 쓰이는 쇠고기, 감자, 당근, 콩, 딸기 등은 예외 없이 '물 건너' 왔다. 그 수송거리가 호주 쇠고기는 2만1462㎞, 이탈리아 감자는 2447㎞, 남아프리카공화국 당근은 9620㎞, 타이 강낭콩은 9532㎞, 캘리포니아 딸기는 8772㎞다. 이 모든 재료는 영국에서 1년 내내 구할 수 있다.

영국에서 생산된 것만으로는 그 양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다. 영국은 외국으로부터 우유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영국은 거의 비슷한 양의 우유를 수출하고 있다. 미국은 덴마크 설탕쿠키를 수입하고 덴마크는 미국 설탕쿠키를 수입한다. 제조법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와이는 극적인 예다. 하와이는 해마다 약 4만2000마리의 소를 배에 태워 3500㎞ 떨어진 캘리포니아로 보낸다. 이렇게 캘리포니아로 보낸 소는 포장된 고기로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두가 파업, 기상 악화 등으로 마비되면 당장 하와이의 쇠고기 판매점에는 비상이 걸린다.



이렇게 전 세계에 걸친 거대한 '먹을거리 맞바꾸기'가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화석연료의 낭비다.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돼 영국으로 보내지는 상추는 에너지로 환산하면 자기보다 127배나 많은 화석연료를 소모시킨다. 꽃, 과일, 채소 등의 구성성분이 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것들을 배로 실어나르는 것은 '차가운 물을 운송하느라 석유를 태우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수 년 안에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 현실화되면 전 세계의 먹을거리 공급은 대혼란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석유 생산 정점'이 멋 훗날의 일이라면,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탓에 발생한 지구 온난화는 어떤가? 지구 온난화로 기온, 강수량 등이 변하면서 곡물 수확량이 이미 많이 감소하고 있다.

카길이 지배하는 세상

전 세계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먹을거리 맞바꾸기' 과정에서 농민은 이익을 볼까? 상황은 정반대다. 우리가 먹을거리에 지급하는 돈의 대부분은 농민의 주머니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소비자가 1달러를 지출할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1910년에는 40센트였으나 1997년에는 고작 7센트로 감소했다.

현재 미국에서 소비자가 1달러를 주고 빵을 사면 밀 재배 농민에게 돌아가는 6센트와 똑같은 몫이 포장업자에게 돌아간다. 먹을거리가 멀리 이동되면서 운송, 가공, 포장, 판매가 먹을거리 생산 자체보다 점점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운송, 가공, 포장, 판매를 담당하는 먹을거리 산업의 덩치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먹을거리 산업은 이미 생산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 카길(무역), 몬샌토(종자) 등 먹을거리 산업의 강자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농민의 숨통을 죈다. 이런 식이다. 돈줄을 쥐고 있는 곡물 구매자 카길은 몬샌토에서 판매하는 종자만을 구매한다. 당신이 몬샌토 종자가 아닌 지역 고유의 종자를 재배했다가는 아무 데에도 팔 수 없다.

몬샌토 종자를 살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카길 소유의 엘스워스 은행이 몬샌토 종자와 또 다른 카길 소유의 새스퍼코 비료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준다. 카길이 제시한 낮은 가격에 곡물을 팔 마음이 없다고? 그럼 다른 해결책이 있다. 역시 카길 소유의 엑셀이 기꺼이 그 곡물을 먹인 돼지를 구매해 줄 것이다.

이렇게 몇몇 소수의 기업들이 주도하는 먹을거리 산업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농민이 수 백년 간 지켜 온 땅을 포기하고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렇게 땅을 떠났지만 먹을거리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의 손아귀에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가난한 그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시리얼은 카길 소유의 카길푸드가 독점 공급한 옥수수로 만들어진 것이다.

'조용한 혁명'의 태동…지역 먹을거리 운동

최근 일부 기업들이 주도하는 먹을거리 산업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단순하다. 수 천년 간 그래 왔듯이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뉴욕, 노르웨이 오슬로, 하와이 마우이, 케냐 나이로비, 이집트 카이로, 인도 라다크, 한국 대구 등 세계 곳곳에서 '조용한 혁명'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원제 : Eat Here)의 한국어판 제목 '로컬푸드(local food, 지역 먹을거리)'는 이 조용한 혁명을 상징한다.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거창한 대의명분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대부분 소박한 필요가 행동을 촉발했다. 미국 뉴욕 주 이스트햄튼의 앤 쿠퍼가 지역 먹을거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아이들의 비만 때문이었다.

학교 조리사였던 쿠퍼는 모든 급식 식단을 해당 지역의 농민, 어민이 제철에 공급하는 지역 먹을거리로 구성했다. 하버드 대학 등이 검사를 해보니 이렇게 쿠퍼가 공급한 지역 먹을거리를 먹은 아이들은 미국의 보통 아이들에 비해 과일, 채소를 두 배나 더 많이 섭취했다. 소변검사 결과는 더 놀라웠다. 보통 아이들보다 농약 성분이 상당히 적게 검출된 것이다.

쿠퍼는 현재 자신이 고안한 지역 먹을거리로 짜인 식단을 미국 전역으로 퍼뜨리기 위해 조리사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다. 지금 그는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교육청의 영양 담당 책임자로 일하면서 공립학교 16곳의 학생 9000명을 위한 급식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고 있다. 장기간의 건강이 왜 삼각함수보다 중요하지 않은가?"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는 소를 키울수록 농민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시작됐다. 하와이 관광객의 먹을거리 구매액은 1969~2000년 사이에 연간 5억 달러에서 22억 달러로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하와이 농장의 소득은 연간 5억 달러에서 2억 달러로 줄었다. 무엇인가 분명히 잘못됐다.

2003년 하와이의 유기농업 농민으로 전환한 데이비드 콜은 지역 먹을거리 공급이 대안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는 미국으로 소를 내보내는 대신 유채 비료를 이용해 키운 소를 지역 주민, 관광객에게 직접 공급한다. 유채 비료를 만들면서 나온 기름은 바이오디젤유로 공급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쇠고기는 본토에서 수입되던 쇠고기를 질로 따돌렸다.

절망하지 말고 이 책을 펼쳐라!

지역 먹을거리 운동은 현재까지 갖가지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원서가 2004년 나온 이 책은 최근까지 지역 먹을거리 운동이 어떻게 장애물을 극복하며 나아가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책 뒤에 지역 먹을거리 운동에 대한 개괄적인 정리와 지금 대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역 먹을거리 실험이 소개되고 있어 더욱 도움이 된다.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뭘 먹여야 할지 두려운가? 옛날처럼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먹고 싶은가? 그 많던 농민들이 전부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한가? 빚만 쌓이는 농사를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가? 절망하지 말고 이 책을 펼쳐라. 똑같이 고민을 거듭하다 조금 일찍 행동에 나선 동지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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