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사고로 지난 2년간 잠자고 있던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지난 30일 국회에서 통과됐다. 개정됐다. 이번 개정안은 초ㆍ중ㆍ고교 급식의 모든 과정을 '직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식자재 선정ㆍ구매ㆍ검수의 책임을 학교장에게 두는 것을 큰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큰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식의 이번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선 학교ㆍ학부모들이 지적하듯이 예산, 인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나 학부모 급식 봉사 부담이 간과된 것도 큰 문제다. 하지만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큰 문제는 여전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 식량 체계(global food system)'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급식 사고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종덕 경남대 교수(심리사회학부)는 1일 급식 사고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을 맞대고 먹을거리를 생산ㆍ소비하는 '지역 식량 체계(local food system)'의 확립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을 주장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이미 <프레시안>은 대구ㆍ경북 노동운동, 농민운동, 시민운동이 공동으로 '지역 식량 체계' 확립을 위한 '거대한 전환'의 물꼬를 텄다는 소식("세계화? 우리는 '지역화'로 극복하겠다")을 전한 바 있다. <편집인>
학교급식 문제 해결 '직영급식'만이 대안 아니다
월드컵 축구 때문에 난리더니 이제 학교급식 사고 때문에 난리다. 이렇게 큰 난리인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부서에서는 이번 급식 사고의 원인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급식 사고에 대해 특정 원인을 찾는 기능적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급식 사고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고가 아니다. 기존에 일어나던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급식에 대해 알거나 조금만 생각해본 사람은 이번 사고의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우발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식품 공급 체계라는 구조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이번 사고는 준비되어 있던 것이다. 지금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여러 가지 급식 사고 해결 방안이 모색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라 현상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어 안타깝다.
급식 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지금 유력하게 제시되는 방안이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의 전환이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위탁급식을 하는 학교보다 급식사고가 훨씬 적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직영급식이 위탁급식보다는 나은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직영급식을 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직영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구입하는 식자재의 상당 부분이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 모르는 정체불명의 먹을거리다. 이러한 식자재를 쓸 경우 직영급식이라고 하더라도 급식사고는 항상 일어날 소지가 있다.
정치권에서는 급식사고에 늑장 대응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그동안 미뤄 왔던 학교급식법을 지난 30일 부랴부랴 개정하였다. 이번 학교급식법 개정안의 골자는 중ㆍ고교 급식 전 과정의 직영화를 원칙으로 하면서, 급식 관리에 대한 책임을 해당 학교 교장에게 두는 것이다. 이 점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지만 현행 식자재 공급 체계나 식자재의 성격을 본다면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많다.
특히 급식 관리와 관련하여 교장에게 책임을 많이 묻고 있는데, 사안 자체가 교장이 책임질 수가 없는 성격의 일이다. 현재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식자재의 안전성 여부는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고가의 점검 장비가 필요한데, 이러한 장비를 개별 학교에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식품 공급체계 확립이 우선…'지역 식량 체계'가 그 대안
학교급식은 물론 병원급식, 각종 기관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식자재를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식품 공급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지금은 수입 농산물의 경우에서 보듯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떨어져 있어 서로가 모르는 가운데 먹을거리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서라면 수천㎞ 떨어진 곳에도 마다 않고 식자재가 공급되는 체계다.
그런 식자재를 이용한 급식의 경우 '직영'이든 '위탁'이든, 혹은 해당학교 교장이 책임을 지든 아니든 간에 항상 급식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것에서 생산된 식자재의 경우 생산, 수송 및 가공 과정에서 사람의 건강에 문제가 되는 여러 가지 물질이나 첨가물들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학교급식을 포함한 기관 급식을 안전하게 운영하려면, 지역에서 생산된 식자재를 이용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알고, 연결되어 있는 가운데 식자재를 생산하고 이를 소비하는 이른바 '지역 식량 체계(local food system)'가 자리 잡아야 한다. 생산자는 자기 얼굴을 가진 식자재를 생산하고, 소비자들은 자기가 아는 생산자가 생산한 식자재, 생산 과정이 알려진 식자재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급식사고가 일어날 리 없다. 학부모, 시민단체들이 학교급식법에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하자는 것을 명시하자고 하는 것도 우리 농산물이 정체를 모르는 수입농산물에 비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투성이인 학교급식을 올바른 학교급식으로 바꾸려면, 학교급식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잘 모르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 식량 체계(global food system)'가 아니라 지역 식량 체계에 기초하여 운영해야 한다. 지금 유럽의 여러 국가들, 미국, 캐나다 등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중앙정부 법이나 지방정부의 법·조례를 통해 학교급식에 지역 농산물(local food)의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고, 지방정부들은 학교급식을 비롯한 각종 공공급식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지역 먹을거리 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이는 곧 지역 식량 체계에 기초해 학교급식을 운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 식량체계…급식 사고 예방하고 우리 농산물도 살릴 수 있어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13개의 광역 지자체 및 100여 개의 기초 지자체가 학교급식에 국내산 또는 지역산 우수 친환경 농산물을 급식 재료로 사용토록 조례를 이미 제정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농산물을 이용하는 데에 들어가는 추가비용을 지방재정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지역 식량 체계 하에서 학교 급식을 운영하게 되면 급식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민을 살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군대를 포함해 정부기관, 사업장, 학교, 병원 등 기관의 급식에 우리나라 지역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구매해 급식을 제공하면 그 수요는 엄청날 것이고, 이것은 농산물 판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도울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농업을 살리는 길이 된다. 우리 농산물을 통한 급식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 농산물에 익숙하게 하고 먹을거리의 선택이나 사회적 의미와 관련한 교육이 가능해 짐으로써, 향후 우리 농산물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최근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아토피와 비만 문제 역시 먹을거리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질 좋은 지역 농산물의 사용은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사회적인 비용을 예방적으로 줄이는 이점이 있다. 이런 다각적인 효과 때문에 선진 각국에서 학교급식 문제에 최근 들어 더욱 관심을 기울이면서 지역 농산물 사용을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지역 식량 체계에 기초하여 학교 급식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인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학부모나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자기 자식, 또 우리의 미래세대가 보다 좋은 먹을거리를 먹도록 하는 것, 게다가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먹을거리를 먹도록 하는 일보다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지방재정이 허락한다면, 학교급식은 당연히 무료급식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여의치 않아 수익자 부담이 이루어지는 경우 일부 비용을 국가나 지자체가 보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모님들의 경우에도 자녀들에게 좋은 먹을거리를 먹이는 데에 급식비가 더 들어가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덜 중요한 일에 돈을 잘 쓰면서도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먹는 데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지출 습관은 결국 나쁜 먹을거리가 확산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학교급식에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학부모, 학생, 농민, 시민단체, 교육당국 등이 학교급식정책협의회를 구성해 현안들을 풀어가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급식사고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학생들을 포함한 급식 이용자들이 좀 더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고, 아울러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민과 농업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급식체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답은 지역 식량 체계에 기초해서 학교 급식이 운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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