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유엔총회장 연설에서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El Diablo)'로 8번이나 거듭 지칭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중남미 언론들은 요즘 차베스 대통령이 왜 그처럼 막말을 쏟아냈는지 그 배경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차베스 측근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지 언론사 정치부장들의 말에 따르면, 원래 차베스의 연설문에 있던 표현은 '악마'가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해 온 '위험한 인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은 앞서 행한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보고 "부시가 마치 전세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안하무인 격인 부시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작심한 듯 즉석에서 '악마'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악마' 발언이 나온 배경에 대해 또다른 분석도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제3세계, 특히 남반구 국가들 사이에 팽배한 반미감정을 적극 부추겨, 남-남 협력구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쿠바에서 열린 비동맹국가회의에 참석한 차베스 대통령은 현장에서 표출된 반미 분위기로 볼 때,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신사회주의 운동이 범세계적인 캠페인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차베스 대통령의 신사회주의 운동은 냉전 이후 구소련이 붕괴되고 미국이 유일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뒤 남반구 국가들은 더욱 빈곤해졌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 수준인 25억 명 이상이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으며, 16억 명 이상이 전기시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8억 명에 가까운 인구가 문맹자인 현실에서 부의 상징이자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이 지금까지 남반구 국가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연설을 준비하던 차베스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유엔 총회장에서 '세계의 주인' 행세를 하자 즉흥적으로 악마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는 얘기다.
'유황이 아닌 화약 냄새를 뿌린 악마'
그러나 차베스 대통령의 발언이 사전에 준비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부 격차를 확대시키는 불공평한 사회제도를 악으로 규정해 미국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한편,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세우는 신사회주의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유엔총회라는 공식기구 안에서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사전에 준비한 연설이라는 것이다.
발언 배경이 어떻든 차베스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세계 유일의 강대국 최고지도자를 악마로 규정한 자신의 독설이 총회에 참석한 각 국 대표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며 흡족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이 없는) 또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는 자신의 슬로건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엔 총회장을 활용한 것이며, 세계 각 국의 대표들이 모인 유엔총회에서 부시를 향한 차베스의 막말은 반부시와 반제국주의 운동을 유엔이라는 국제기구 안으로 끌어들여 공론화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는 것이다.
차베스가 연설 중 언급한 노암 촘스키의 저서 <패권인가 생존인가- 세계 지배를 추구하는 미국>이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책이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차베스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것은 지난 주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현지언론에 등장한 한 컷의 만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만평에는 차베스의 유엔연설을 TV로 경청하던 악마가 "차베스, 미안하지만 부시는 나보다 한 술 더 뜬다네. 그가 유엔의 연설장에 남기고 간 건 유황 냄새가 아니라 화약 냄새라네"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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