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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히포크라테스를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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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히포크라테스를 죽였는가?"

[화제의 책] 제대로 읽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최근 서울대병원이 추진하고 있는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광혜원) 122주년' 기념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새삼 한국 의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를 이룩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의학 역시 비켜가지 않은 것이다.

그 와중에 최근에는 '의료 산업화'라는 풍랑에 휩쓸리는 가운데 의학의 근본에 대한 회의감이 전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전근대와 근대가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자본주의 세계화의 풍랑을 맞은 한국 사회의 현 상태가 의학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하는, 의과대학마다 세워져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조각상 밑에 새겨진 이 선서는 이미 박제가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최근 <히포크라테스 선서>(사이언스북스 펴냄)를 펴낸 반덕진 우석대 교수(보건의료관리학)는 이런 회의적인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있지만 그 정신은 없다"는 고해성사가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선서'를 읽을 때라는 것이다.

잊힌 히포크라테스 선서

우리는 과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알고 있는가? 아니다. 오늘날 의대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에서 한 번씩 되뇌었던 '선서'는 1948년 세계의사협회에서 2500년 전에 나온 원본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수정한 '제네바 선언'일 뿐이다.

반덕진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리스어 원전으로부터 최초로 번역해 실은 후 300여 쪽에 걸쳐 한 줄 한 줄 그 의미를 해설하고 있다. 그가 '선서'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안에 녹아 있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이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반덕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2006) ⓒ프레시안

반덕진 교수가 보기에 선서에 녹아 있는 정신의 핵심은 '휴머니즘(humanism)'이다. 히포크라테스의 휴머니즘은 "환자는 돕되 해를 주지 마라"라는 말에 집약돼 있다. "의학의 목적이 의사의 성공이 아닌 환자의 건강에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런 인식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대한 지난 수십 년간 통용돼 오던 독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독일의 저명한 고전학자 루트비히 에델슈타인이 '선서'를 단지 의사의 에티켓으로 간주한 이래, 이런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의사의 목적은 돈벌이인가? 환자를 돌보는 것인가?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비춰 봤을 때 최근의 의학계의 상황은 어떤가? 동서 의학을 대표하는 한의사, 의사 할 것 없이 대중으로부터 깊은 불신을 받는 최근의 세태를 염두에 두면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부재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반덕진 교수도 이런 사태를 우려한 탓인지 책의 결론을 소크라테스의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할애하고 있다. "진정한 의사는 돈벌이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인가요?" 이 질문에 과연 진정으로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

"민간 의료의 비중이 크고 국민건강보험의 수가 체계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 너도나도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등 이른바 고소득이 보장되는 '미용과'로 지원하는 현실에서 (…) 오늘 우리의 많은 의료인은 환자로부터 명예와 존경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변해야 하는가? 반덕진 교수는 다시 한 번 의료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의 의료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인들은 '의사들이여, 자신부터 고쳐라'라는 경구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한의학과 일맥상통

의외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한의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원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세 번째 단락은 이렇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돕기 위해 섭생법을 처방할 것이며 환자를 위해나 비행으로부터 보호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이렇게 '섭생법'을 강조한 것은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자연은 생명체의 의사이고 의사의 역할은 자연을 돕는 일이다. 자연은 건강을 위해 질병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래서 자연을 돕는 의사와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섭생법을 지키는 환자의 노력이 있으면 자연은 질병을 물리치고 승리한다."

이런 섭생법에 대한 강조는 히포크라테스만 한 것이 아니다. 한의학의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은 양생법에 관한 세 편의 논문을 권두에 배치하고 있다. 환자의 자연 치유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섭생법을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이야말로 동서양에서 최고로 치는 의술이었던 셈이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의 양 날개는 '인간적 의학'과 '과학적 의학'이었다. 근대 이후 의학은 '인간적 의학'이라는 한 쪽 날개를 잃어버렸다. 특히 질병의 원인을 신체의 특정 부위의 고장으로 보고 국소적이고 집중적인 치료에만 치중하는 현대 의학은 그 불구의 한 결과다.

한국 의학은 양 날개를 달고 날 수 있을까?

다시 의학이 히포크라테스 의학처럼 양 날개를 달고 날 수 있을까? 반덕진 교수는 은근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의 의사들도 첨단 의술을 갖춘 '과학적 의사'이면서 인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한 '철학적 의사'가 되는 것을 기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침 지난 6월 3일에는 한국의철학회가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이 학회 창립 때 공언한 대로 한국 의학이 '학문(醫學)', '실천(醫術)', '마음가짐(醫德)' 셋으로 구성된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또 히포크라테스 의사의 21세기적 현신이 가능할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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