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3차 협상이 6일부터 나흘 간의 일정으로 미국 시애틀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 달라는 우리 측의 요구에 대한 협상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이 문제를 논의하는 분과인 원산지·통관 분과의 협상이 7일 끝났다.
이에 따라 14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논의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는 협상 둘째 날인 이날 저녁 9시 30분(현지시간) 시애틀 웨스틴 호텔에 마련된 브리핑룸에서 중간브리핑을 갖고 "개성공단 문제에는 진전이 없다"고 간략히 말했다.
김종훈 대표는 "이번 3차 협상은 이미 밝혔던 것처럼 상품 분야의 양허안과 서비스·투자 분야의 유보안에 대한 논의가 초점을 이루고 있다"며 "현재까지 협상이 무난히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양국 협상단은 전날에 이어 상품무역, 농업, 의약품·의료기기,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위생검역(SPS), 지적재산권 등 총 14개 분과 또는 협상반의 협상을 계속했다. 이 중 원산지·통관 분과, 기술표준(TBT), 경쟁, 분쟁해결·투명성·총칙, 환경 등 5개 분과의 협상은 이날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섬유, 무역구제, 정부조달 등 3개 분과의 협상이 새로이 개시됐다. 자동차 작업반과 노동 분과의 협상은 협상 셋째날인 8일 개시된다.
이날 브리핑에는 김종훈 수석대표 외에도 17개 협상 분과 및 작업반의 대표들이 동석했다.
4차 협상 전에 의약품·의료기기 협상 별도로 열기로
상품무역, 농업, 섬유 등 상품 분야의 협상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우리 측은 (상품무역 분과와 섬유 분과의) 미국 측 양허안 수준이 '매우 실망스럽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미국 측도 양허안을 개선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이르면 8일 섬유 분과의 양허안을 개선해 우리 측에 2차 섬유 양허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미국 측은 1차 양허안에서 섬유 분과의 품목들 가운데 60% 이상을 '기타(양허제외 포함)' 단계에 포함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우리 측 농업 분과의 양허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우리 측은 3차 협상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가서 농업 분과는 물론 상품무역 분과, 섬유 분과의 양허안을 수정·개선해 4차 협상 전에 미국 측에 2차 양허안을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김종훈 대표는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서 미국 측 협상단이 또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는 전날의 언론보도와 관련해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이 열렸던 협상장의 천장이 높아 상대편 말을 듣기 힘들어 우리 측 작업반장이 협상장을 옮기자고 한 것"이라며 "회의는 그날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의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은 △의약품 선별등재 및 약가 결정시 미국 측 이해당사자들의 사전참여 보장 △독립적인 이의신청 기구의 설립 △신약의 특허권 연장 등과 같은 요구를 했으며, 양국 협상단은 4차 협상 전에 별도의 의약품·의료기기 협상을 열어 최대한 빨리 협상을 매듭짓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 케이블·위성TV의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요구…공중파TV 관련 요구 없어
서비스·투자 분야의 협상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이틀 간의 협상에서 미국 측은 우리 측의 서비스·투자 개방요구 목록(리퀘스트 리스트)에 대한 확인 작업을 계속했다"며 "이를 통해 우리 측은 미국 측의 구체적인 관심사항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서비스 분과에서 우리나라 법률시장과 회계시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우리 측은 법률 서비스와 회계서비스를 우리 측 유보안에 넣었지만, 미국 측에 향후 이런 분야들을 개방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그 구체적인 개방일정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김종훈 대표가 전했다.
미국 측은 또 위성TV, 케이블 TV 등 방송서비스에 적용되는 외국인 지분제한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단 미국 측은 공중파 방송의 외국인 지분 제한을 풀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김종훈 대표는 전했다.
투자 분과에서는 국경간 거래 중 보험중개업과 자산운용업이 주요한 협상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미 양국은 항공·선박의 수출입적하보험, 재보험, 우주선발사보험 등 양국 협상단이 국경간 거래를 허용하기로 한 보험상품에 대해서는 보험중개도 허용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자산운용업의 국경간 거래와 관련해 양국 협상단은 미국 자산운용사가 국내에서 직접 펀드를 설립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단 한국의 자산운용사가 미국의 자산운용사에 펀드의 운용을 위탁할 수 있다는 기존의 법령은 한미 FTA에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한편 우리 측이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경간 자본거래와 송금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 세이프가드를 투자 분과에서 합의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이 문제는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 반덤핑 등에선 전혀 진전 없었다
비관세 무역장벽 분야인 원산지·통관, 무역구제, 기술표준(TBT) 분과의 협상에서는 큰 진전이 없었다. 특히 이날 협상이 종료된 원산지·통관 분과에서는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 협상단 간의 입장 차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또 한국 측은 무역구제 분과에서도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김종훈 대표는 "무역구제 협상 첫날인 오늘은 반덤핑에 대해서만 협상했다"며 "1차 협상 때 (아예 반덤핑 자체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던) 미국 측이 협의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태도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고만 말했다.
미국 측은 1차 협상 때 무역구제(Trade Remedies)란 분과 명칭 자체를 거부하며 분과명을 '세이프가드(Safeguard)'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난 2차 협상에서는 우리나라의 의약품 선별등재(포지티브 리스트) 제도에 불만을 표시하며 무역구제 분과의 협상을 보이콧한 바 있다.
한국어 협정문도 인정해 달라는 우리 측 주장에 "미국 측 상당히 이해"
경쟁,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환경, 분쟁해결·투명성·총칙 등 5개 기타 분과들 중에서는 이날 협상을 종료한 경쟁 분과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경쟁 분과의 협상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독점공기업이 '상업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 국민들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보도가 상당히 많았다"며 "(한미 양국 협상단은) 공급가격의 차별적인 적용 등은 독점이 시행되는 취지에 부합한다면 상업적 고려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령 미국 정부가 전력 공급가격을 농업용, 상업용, 가정용으로 나눠 차별을 두고 있지만 이것이 상업적 고려 조항에 위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또 미국이 경쟁 분과에서 '재벌 규제'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그런 미국 측의 주장은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이 기업집단에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기타 분야에서 새롭게 부각된 쟁점은 미국 측이 정부조달 분과에서 한미 FTA의 효력을 50개 주정부를 제외하고 연방정부에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훈 대표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면서도 "미국은 제네바 정부조달협정(GPA) 협정에서도 50개 주정부는 제외시킨 안을 보냈다.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일방적으로 (정부조달 시장을 개방하라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쟁해결·투명성·총칙 분과에서 미국 측이 '영어로 된 협정문만이 효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미국 측이 영어본만이 효력을 가져야 한다는 (미국 측의) 주장에 반대하는 우리 측의 입장을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라도 (영어본과 한국어본이)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쪽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분과에서 미국 측이 우리나라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60일 이상으로 늘려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종훈 대표는 "우리 측은 (입법예고 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투명성이 증진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협상이 종료된 환경 분과에서는 별도의 분쟁해결 절차를 두느냐, 공중의견 제출제도를 도입하느냐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양국 협상단이 기존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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