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L-CIO의 이번 한미 FTA 반대 운동을 총괄조정하고 있는 데이비드 프라이보스 씨를 만나 한미 FTA에 대한 미국 노동자들의 입장과 AFL-CIO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프라이보스 씨는 서부항만노조 출신으로 현재 AFL-CIO의 워싱턴 주 조직인 '킹 카운티 노동평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6일 오후 시애틀의 AFL-CIO 사무실인 '레이버 템플'에서 만난 그는 차분한 어조로 왜 미국 노동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를 설명했다.
"미 노동계가 분열됐다고?…한미 FTA 반대엔 한 목소리"
프레시안: 협상 첫날인 8월 한미 FTA 반대 시위에 많은 미국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시위를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라이보스: 전국 각지에서 총 1500여 명의 미국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준비를 할 시간이 3주뿐이었다는 점, 9월 4일 미국 노동절을 전후한 1주일은 이곳 노동자들에게 최대의 휴가철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참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에 세계무역기구(WTO) 반대 시위를 조직할 때는 준비기간을 1년이나 가졌다.
프레시안: 시위 준비를 왜 3주 전에야 시작했나?
프라이보스: 한미 FTA 3차 협상이 이곳 시애틀에서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3주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의 민주노총에서 알려줘서 알게 됐다.
사실 한미 양국 정부가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도 미국 언론이 1차 협상이 워싱턴DC에서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 5월 말 보도했을 때에야 알게 됐다. 부시 정부는 근본적으로 반노동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역협상에 관한 정보를 노조 쪽에 주지 않는다. 부시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손발을 묶어 놓으려 한다. 클린턴 정부 때는 정부와 노조 사이에 대화채널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노조는 노동자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미국의 노동운동이 AFL-CIO와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 Coalition)으로 양분됐다고는 하지만 그건 윗선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끼리는 서로 단결해 함께 일한다. 이번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미국의 AFL-CIO와 승리혁신동맹 등 4대 노총이 단결해 일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자 간 자유무역은 양국 노동자들에게 타격 미쳐"
프레시안: '미국' 노동자들이 FTA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프라이보스: FTA의 부정적 영향은 주로 노동자, 농민, 사회경제적 약자, 소외계층에 미친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사실에 대해 실증적으로 조사해 왔다. 특히 미국 정부가 정한 표준적인 FTA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만 보장할 뿐 노동의 이동은 막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령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후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87만928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런 일자리 소멸 현상은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 미시간 주 등 주로 산업부문이 강한 지역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나프타로 인해 없어진 일자리 중 80%는 제조업 부분에 집중됐다.
그렇다고 멕시코 노동자들이 잘 살게 됐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멕시코 노동자들은 나프타가 체결될 당시만 해도 자신들이 그렇게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미국 노동자들과 멕시코 노동자들이 연대해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프타가 발효된 지 10년이 지났고, 우리는 FTA가 노동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교훈을 얻게 됐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노동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 양쪽 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프레시안: 5일 시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에 대한 대안으로 '공정무역(fair trade)'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프라이보스: 내가 생각하는 공정무역의 1차적인 조건은 무역으로 영향을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무역, 그리고 그런 사람들 모두의 입장이 고려되는 무역이다.
"변화의 물결,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주목하라"
프레시안: 미국 노동계가 오는 11월의 중간선거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프라이보스: 그렇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정권교체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정권은 반노동 정권이다. 현재는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 양쪽의 다수당이지만,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 중 적어도 하나에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당이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희망만이 아니라 공화당 쪽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각종 언론매체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될 경우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FTA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프레시안: 민주당이 꼭 FTA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역사적으로 봐도 민주당이 자유무역을 옹호해 온 측면도 있고….
프라이보스: 물론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다 FTA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찬성했던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에는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의 체결에 반대했다. 나프타 체결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 부문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미국 의회에서 대외 통상협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하원의 세입위원회(Means and Ways Committee)와 상원의 재무위원회(Financial Committee)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이 두 위원회의 의장을 공화당이 맡고 있다. 그들에 대해서도 한미 FTA 반대 로비활동을 하고 있나?
프라이보스: 물론이다. AFL-CIO 중앙지부가 활발한 로비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미 FTA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자"
프레시안: 협상 마지막 날인 9일에도 한국 원정투쟁단이 주최하는 한미 FTA 반대시위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아는데?
프라이보스: 개막시위 때만큼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수백 명의 미국 노동자들이 참여할 것이다. 저번 개막시위 때는 전국 각지의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먼 길을 온 경우가 많았다.
프레시안: 한국에서 온 원정투쟁단에 대해 평가한다면.
프라이보스: 그들은 너무나 조직적이고, 효율적이고, 열정이 넘친다. 한미 FTA뿐 아니라 세계 무역체제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풍부하다. 이런 강점들이 원정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프레시안: 한미 FTA와 관련해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프라이보스: 우리 모두 단결해 함께 나가자. 한미 FTA 협상을 결렬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자. 시위, 행진, 항의서한뿐 아니라 '국민투표'도 해야 한다. '우리는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한미 양국 정부에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미국 노동자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즉 미국 노동자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미국 노동자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자원과 상품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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