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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응징을 외치는 자들, 제2의 6.25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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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응징을 외치는 자들, 제2의 6.25를 원하는가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전쟁은 '오판'에 따른 군사적 낙관론이 방아쇠

타임머신을 타고 꼭 6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피를 나눈 같은 형제끼리 총을 겨누었던 6.25 전쟁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21세기의 무기 체계는 60년 전에 견주어 살상력이 훨씬 더 커졌으니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칠 게 뻔하다.

천안함 침몰 뒤 퍼진 '전쟁 바이러스' 탓일까, 요즈음 전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부 전쟁광들은 "보복을 해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그들은 지금부터 16년 전 1차 북핵위기(1994년)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았을 때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전쟁 시뮬레이션(simulation) 결과를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각종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해 얻어낸 그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비롯해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약 150만명의 사상자가 생겨나고, 개전 1주일 안에 적어도 1백만명의 군병력과 500만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됐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란 그저 해볼 만한 불장난이 아니다.

힐러리 "오판 없기를 바란다"

천안함 침몰사건 뒤 뒤숭숭한 분위기에서도 한반도의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미국의 움직임은 섬뜩할 만큼 차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라고,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응을 유발하는 행동이나 오판(miscalculation)이 없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얼핏 북한에 오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로 들리지만, 천안함 침몰사건이 관심을 끄는 시점에서 힐러리가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응'이란 표현을 쓴 것엔 복선이 깔려있다고 풀이된다.

다름 아닌 "남한도 오판으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는 우회적인 메시지다. 문제는 한반도의 호전 강경파들이 무력 흡수통일을 목청 높여 외치느라 힐러리의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힐러리가 경고한 것처럼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판'을 전쟁의 주요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아왔다. 특히 군사적 낙관론이 문제다.

로버트 저비스 콜롬비아대 교수는 그의 책 <국제정치학에서의 인식과 오인>(1976년판)에서 '오인(misperception)'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군사적 낙관론이 정치외교적 비관론과 합쳐지면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정치나 외교로 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정치외교로는 풀기 어렵지만, 군사적으로는 쉽게 풀 수 있다"는 오판이 그 국가로 하여금 전쟁으로의 파멸적인 길로 몰아간다는 분석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의 오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구실로 무력통일 전쟁을 벌이자는 선동발언도 군사적 낙관론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 선동발언은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리는 '악성 바이러스'다. 전쟁추구 세력은 그런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림으로써 한반도를 평화체제가 아닌 전쟁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려 한다.

▲ 6.25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화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1951년작. 파리 피카소박물관). 이 그림은 스페인내전의 학살을 고발한 '게르니카'와 더불어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의 계산

어떤 정당 지도자는 전쟁이 터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전쟁도 불사한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문제는 정치적 계산으로 위기상황을 이용해 한 국가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리는 행위다.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갔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목숨을 잃은 사례들이 많다.

지난 1982년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3개월 동안 치러졌던 포클랜드 전쟁(또는, 말비나스 전쟁)도 그 한 보기다. 이 전쟁에서 당사국인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각기 나름의 정치적 계산에 바탕해 전쟁을 일으키고 이용하려 들었다.

아르헨티나 영토에 맞붙은 포클랜드 섬은 1700년대부터 영국이 식민지로 갖고 있던 땅이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 섬을 '라스 말비나스'로 부르며, 심정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영토로 여겼다. 전쟁이 터질 무렵 아르헨티나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친미 군부독재정권의 민주화 탄압과정에서 무려 3만명이 실종되는 '더러운 전쟁'을 치렀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고용불안 속에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이 깊어가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국민들은 군부독재의 악정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판에 장군 출신의 독재자 레오폴드 포르투나토 갈티에리 대통령은 영국으로부터 포클랜드 섬을 빼앗기로 결정했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민생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소수의 영국군 병력이 주둔한 포클랜드 섬을 점령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소식에 열광했다. 아르헨티나 독재자 갈티에리 장군의 불순한 정치적 계산은 성공한 듯이 보였다. 영국이 포클랜드 섬을 수복하겠다고 나선다면, 아르헨티나-영국 사이의 전쟁이 벌어질 것은 분명했다.

갈티에리 장군은 영국 지도자들이 외딴 섬 하나 때문에 파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다. 영국과 한동안 긴장관계는 이어지겠지만, 그러는 동안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 움직임도 수그러들고,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가길 바랐다. 그러나 전쟁이 터졌다. 영국군이 대서양을 건너 몰려왔다.

대처 총리, 전쟁을 기회로 삼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실이 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치인들도 포클랜드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것. 한 마디로 영국군의 파병은 "포클랜드 사태 덕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정치적 계산이 따른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군의 포클랜드 침공 당시 영국 정치지도자는 다름 아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지닌 마가렛 대처 총리였다. 영국보수당 지도자로서 전쟁 3년전(1979년) 총리에 오른 대처는 그동안 노동자 파업, 경제난 등 국내문제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문제로 골치가 아파 뭔가 비상 수단으로 국면 전환이 절실했던 대처에게 포클랜드 사태는 하늘이 준 호기나 다름없었다. 대처는 즉각 영국군 파병을 결정했고,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전쟁이 터진 3개월 뒤 아르헨티나 군은 649명의 전사자를 낸 채 항복했다. 포클랜드 패전은 갈티에리 대통령의 군부독재 몰락을 재촉했고, 해를 넘긴 1983년 군사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영국에선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전쟁 전 보수당 지지율은 27%에 머물렀는데, 전쟁 승리 바로 뒤 44%로 껑충 올랐다.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회복 바람 덕에 대처 총리는 1983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1984년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탄광노조의 파업이 일어나자, 대처 총리는 강경탄압에 나섰다.

그녀는 "우린 밖에서 외부의 적(아르헨티나)과 싸웠다. 그런데 안에도 적이 있다. 그들은 훨씬 위험한 자유의 적이다"라고 주장했고, 그런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다. 영국 대처총리의 보수당 정권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데에는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아르헨티나 군부가 한몫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포클랜드 전쟁에서 죽은 아르헨티나 병사들의 철모가 나뒹굴고 있다. 이들 전사자들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정치적 이유에서 벌인 전쟁의 희생자였다.

"전쟁으로 정치적 이득 챙겨선 안 된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프러시아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이란 책을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전쟁을 가리켜 '다른 수단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란 정의를 내렸다.

줄여 말해서 전쟁은 곧 정치적 행위라는 얘기다. 다만 군사력을 비롯한 '다른 수단'을 동원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쟁은 분명히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중요한 것은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포클랜드전쟁 당시의 영국이나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많은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이 지금껏 전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그들 나름의 정치적 계산에 바탕해 안 일으켜도 될 전쟁을 일으킨다면 누가 고통을 받을 것인가. 전선의 젊은이들과 후방의 국민들이다.

천암함의 비극과 함께 6.25 전쟁 60주년을 맞은 이 때, 전쟁을 정치적 행위로 풀이한 클라우제비츠의 고전적 정의는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여러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특히 이 땅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남북간의 긴장과 대결 국면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움직임과 정치적인 이유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전쟁을 함부로 도발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땅의 평화시민들은 뜻을 모아 위와 같은 움직임들에 딴죽을 걸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바로 제2의 6.25 참극을 막는 길이다.

* 위의 글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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