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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전문가-언론 어떻게 요리하는지 보여줄까?"

[화제의 책] 정보 조작 파헤친 <거짓 나침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앞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면서 정부는 국내 의학, 수의학계 전문가의 보증을 내세웠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위험(acceptable risk)'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전문가를 동원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일인 모양이다.

최근 출간된 <거짓 나침반>(셸던 램튼·존 스토버 지음, 정병선 옮김, 시울 펴냄)은 정부, 기업 등 권력을 진 자들이 전문가, 언론과 유착해 어떻게 대중을 기만하는지를 세세한 예를 들어 폭로하고 있다. 권력과 유착한 전문가들은 항상 이 책의 원제처럼 "믿어줘, 우리가 바로 전문가야(Trust us, we're Experts!)"라고 말하면서 대중을 기만한다.

거대 기업의 전문가와 언론 '요리하기'

한미 FTA가 타결되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될 '유전자 조작 식품(GM Food)'에 대한 표시제를 없애기 위해 몬산토가 어떻게 전문가와 언론을 동원했는지를 살펴보자. 몬산토는 유전자 조작된 성장 호르몬을 주입한 소에서 짜낸 우유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긴급히 '제3의 전문가'를 동원한다. 물론 이들은 몬산토가 자금을 대는 대학의 연구자들로만 '세심'하게 선택됐다.
▲ <거짓 나침반>(셸던 램튼·존 스토버 지음, 정병선 옮김, 시울, 2006). ⓒ프레시안

몬산토는 또 홍보회사 '카르마 인터내셔널'을 동원해 이 문제에 대한 관련 기사를 컴퓨터로 분석해 기자들을 친구와 적으로 분류했다. 친구들에게는 '보상'이, 적들에게는 데스크를 통한 압박이 시작됐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보스턴글로브>에 비우호적인 기사가 실리면 당장 '제3의 전문가'가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데스크에게 편지를 보낸다.

"<보스턴글로브>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그대로 기사에 실은 것은 심히 걱정됩니다. 해당 기사가 의지하는 전문가는 과학계의 동료들 사이에서도 전혀 입지가 없는 인물입니다. 그의 기자 간담회에 참여했거나 그의 연구를 검토해본 다른 언론의 기자들(<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은 그의 이야기를 싣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런 항의를 받은 <보스턴글로브>의 데스크는 해당 기자와 기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자가 의존한 전문가는 이 문제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로 세계무역기구(WTO)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을 하기까지 했던 새뮤얼 엡스타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몬산토는 좀 더 직접 적을 압박하기도 했다.

적으로 분류된 <유에스에이투데이> 기자를 응징하기 위해 몬산토는 중요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고 보도자료에 의존해 기사를 작성한 그의 '근무 태만'을 데스크에 고자질했다. 1997년에는 이 문제에 대한 심층취재 결과를 담은 프로그램이 방송사 경영진에 의해 취소되기도 했다. 몬산토는 거액의 소송으로 압박하면서 20만 달러짜리 타협안을 제출했다. 해당 기자들은 이 타협안을 거부했고 그들은 결국 그 해를 못 넘기고 해고됐다.

도대체 뭐가 '쓰레기 과학'이야?

권력자들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해서 '쓰레기 과학(junk science)'이라는 자극적인 조어도 만들어냈다. 이 말은 환경과 대중의 건강을 보호하는 각종 규제들의 근거가 되는 양심적이고 독립적인 과학자들의 연구에 갖다 붙이는 말이다. 이런 규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학은 '건전 과학(sound science)'이라는 정반대 용어로 불린다.

이 '쓰레기 과학'은 1980년대 후반 변호사 피터 허버가 쓴 <갈릴레오의 복수>를 통해 널리 퍼져다. 이 책에 따르면 돈에 환장한 변호사들이 "저명한 동료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이단적 과학자를 껴안아" 무고한 기업에게 대규모의 화해 비용을 뜯어낸다는 것. 이 책은 곧바로 대규모 캠페인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됐다.

이 '쓰레기 과학'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담배업계는 '건전 과학'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옹호자이기도 하다. 담배업계로부터 수 년간에 걸쳐 7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한 과학자는 담배의 치명적 위험을 입증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제시될 때마다 반대 논쟁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이력을 쌓아 왔다. 특히 그는 간접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를 '쓰레기 과학'으로 치부하는 주장을 폈다. 그의 주장은 담배업계의 '관리'를 받는 기자들에 의해 널리 확산됐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의 위험을 폭로하며 전 세계적으로 '환경 호르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도둑맞은 미래>(테오 콜본 외, 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도 1996년 출간됐을 때 '쓰레기 과학'이라는 비난을 비켜갈 수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을 팔아먹는 '거짓말'이라고 이 책을 비판했으며 산업계의 지원을 받는 한 단체는 즉각 과학자 10명을 앞세워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도둑맞은 미래>는 '어쩌면~일지도 모른다(might)'를 30번, '어쩌면~일 것이다(may)'를 35번, '가능성이 있다(could's)'는 셀 수 없이 사용한다"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이 책의 집필 동기가 '돈벌이에 있다'는 마타도어가 이어졌고, 내분비계 교란 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한 일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인종적 비방을 받았다.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속고 만다

미디어민주주의센터(CM&D)에서 활동하는 저자들은 권력과 전문가, 언론이 유착해 대중을 기만한 수많은 사례를 폭로한 뒤 맨 마지막 장에서 속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9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맨 마지막 방법은 "우리가 바로 전문가가 되는 것". 스스로가 나서서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우리를 속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소각로 건설을 막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 한 시민은 4000쪽의 위험 평가서를 작성한 정부가 발견하지 못한 요점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낸 10대의 능력에 놀란다. 학교 옆에 소각로가 설치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그 14세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소각로 건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아마 권력자들과 전문가들은 아무 것도 조사하지 않을 걸요."

저자들은 삶에 대한 위협에 맞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시작한 우리들이야말로 바로 진짜 '전문가'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책, 정기간행물 등을 제시한 것은 먼저 행동하기 시작한 이들이 뒤따르는 이들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주는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맨 앞에서 언급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위험'이라는 말은 지난 4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나왔다. 그 발언을 한 장본인이 누군지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자("광우병 쇠고기 먹는다고 다 광우병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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