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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부 집행 연구비 2조원' 누가 감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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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자부 집행 연구비 2조원' 누가 감시할까?

[인터뷰] 파업 150일 넘긴 산업기술평가원 김태진 연구원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한복판에는 어울리지 않는 천막이 하나 설치돼 있다. 지난 6일로 파업 150일째를 훌쩍 넘겨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의 연구원들이 노천에서 농성하고 있는 곳이다. 산업기술평가원은 산업자원부를 통해 집행되는 연간 2조 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비를 기업·대학에 분배하고 평가까지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 산업기술평가원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지난 2002년 500억 원이나 되는 연구개발비를 산자부가 부당하게 집행했다는 의혹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문제가 보도된 직후 산자부와 산업기술평가원 경영진은 김준, 김태진 연구원을 제보자로 지목하고 4년째 이들을 보호하려는 노동조합과 충돌을 빚어 왔다.

그 과정에서 김준, 김태진 연구원은 해고를 당하기도 했으나 법정소송 끝에 1년 만에 복직했다. 또 산자부 1급 출신의 전 원장은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부당 해고한 사실이 인정돼 1심에서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산업기술평가원의 일부 연구원들이 별도로 구성한 노동조합도 경영진의 배후조종을 받는다는 의구심을 받던 끝에 1, 2심에서 모두 '불법' 판정을 받았다.
▲ 2월 7일 시작한 파업은 10일로 154일째나 됐다. ⓒ프레시안

상황이 이렇게 정리되었는 데도 여전히 산업기술평가원 경영진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단체협약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 2월 7일부터 시작한 파업은 벌써 5개월을 넘었다. 그 동안 경영진은 형식적인 노사 간의 협상에는 응했지만 수십 차례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노조의 단체행동 제약을 약속하라'는 식의 요구로 일관하고 있다.

한창 국가 연구개발비 집행을 둘러싼 평가 업무에 매진해야 할 석·박사들이 왜 테헤란로 천막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4년간 갈등의 핵심에 섰던 김태진 연구원을 만났다. 김 연구원은 2002년 노조 간부로 있으면서 언론에 산자부의 연구개발비 부당 집행을 최초로 알린 장본인이다. 그 뒤에도 4년 동안 산자부, 경영진을 상대로 한 수많은 싸움에 앞장서 오면서 노동조합의 대변인 역할을 해 왔다.

지난 10일 저녁 만난 김 연구원은 오랜 기간의 파업으로 지쳐 보였다.

"노조 무력화 원하는 사측이 '파업 사태' 계속 악화시켜"

프레시안 : 생각보다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지금 가장 구체적인 쟁점은 무엇인가?

김태진 : 단체협약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징계'와 같이 노동자의 신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태진 : 지금 4년째 경영진과 대립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비조합원들과 비교했을 때 무조건 최하점의 평가를 받고 있다. 단체협약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쫓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실제로 2003년에도 부당 해고를 당한 적이 있지 않느냐.

프레시안 : 경영진과 의견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 한 것인가?

▲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김태진 연구원 ⓒ프레시안

김태진 :
사 측은 우선 협상을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 6월 중순에 사 측에서 전체 96개 조항 중에서 쟁점이 되는 18개 조항에 대한 입장을 제시해 왔다. 그 중에서 6개는 수용, 8개는 수용 불가, 4개는 부분 수정을 다시 제안했다. 협상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8개에 대한 또 다른 타협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니냐?

사 측에서는 '아예 18개 항을 받지 않으면 지난 3개월간의 모든 협상을 무효로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사 측이 이런 식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의 사 측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 단체협약을 제대로 맺지 않으면 사 측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조합원들을 내쫒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모두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사 측의 내놓은 '징계'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기관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한 경우"나 "직무 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경우" 등의 모호한 규정이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인터뷰도 "기관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했다"고 경영진이 판단하게 되면 징계 대상이 돼 내 신분이 불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런 요구도 하고 있는데….

김태진 : 지금 산업기술평가원에 비정규직(위촉직, 별정직 포함)이 총 30명 있다. 우리 요구는 이들을 다 정규직화하라는 거다. 그냥 하라는 게 아니라 정규직의 임금을 3년간 동결할 테니 그 재원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고 제안했다.

사 측의 반응은 어이없기 짝이 없다. 원장이 그러더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능하다. 그런데 노조가 요구해서는 들어주기 싫다. 파업을 풀면 그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고려해보겠다.' 노조를 아예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 아니냐?

"산자부 압력이 노사 갈등의 근원…산자부의 개입 증거 있다"

프레시안 : 산업기술평가원 노사 관계가 파행으로 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태진 : 가장 큰 것은 우리 노동조합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산자부의 압력이다. 최근에 원장이 전 직원을 모아놓고 총회를 했다는데, 거기서도 이런 얘길 했다고 하더라. '노동조합이 계속 파업을 하는 것 때문에 산자부가 우리 기관을 보는 눈길이 곱지 않다. 각종 사업 이관, 예산 삭감 등이 우려 된다.' 원장 스스로가 노사 갈등의 근본 원인이 산자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아무리 산자부 1급 공무원 출신이라지만 일단 산업기술평가원의 식구가 된 것 아니냐? 그렇다면 산자부로터 평가기관의 독립성을 어떻게 획득해야 할지, 또 그 과정에서 노사가 어떻게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인지를 궁리해야 하는데, 원장이 산자부 눈치만 보고 있으니 답답하다.

긴 노사 갈등을 해결할 적임자로 등장한 현 원장마저도 상처만 가득 남기고 실패할 게 뻔한 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사실 원장이 산자부로부터 평가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우리가 당연히 원장 편이 돼서 산자부와 싸우지 외면하겠느냐?

프레시안 : 최근에는 산자부 장관이 평가기관을 다원화할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보장되기도 했다.

김태진 :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법이 개정된 것도 산업기술평가원 노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2조 원이 들락거리는 길목에서 연구개발비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겠다는 노조가 버티고 있으니 산자부 입장에서도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느냐?

그래서 아예 산자부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일부 연구개발비의 경우에는 다른 산자부 산하기관에서 집행,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버렸다. 여당의 유력 의원들이 이 법 개정에 참여했는데 도대체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 테헤란로 한국기술센터 앞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금 논리대로라면 산자부가 산업기술평가원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면 노사 갈등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는데…. 방법이 있는가?

김태진 : 우선 사 측과 대화를 계속할 생각이다. 사실 경영진도 답답한 면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산자부 눈치도 봐야 할 테고, 마냥 이렇게 파업 사태를 방치해 둘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특단의 조치도 강구 중이다.

프레시안 : 예를 들면?

김태진 : 한 시민단체와 함께 산자부 고위 관료들이 산업기술평가원 경영과 노조 탄압에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현직 차관과 청와대 산업비서관이 포함돼 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고발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생각이다.

"산자부는 '재벌 대변부'…퇴임 후 위해 수많은 산하기관 만들어"

프레시안 : 지난 4년간 산업기술평가원 노조는 산자부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해 왔다. 산자부의 문제점은 뭔가?

김태진 : 지금 산자부에서 연간 집행되는 연구개발비가 2조 원 정도 된다. 그 2조 원 중 상당수는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에 돌아간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를 건강하게 할 중소기업 육성에 들어가야 할 재원이 다 재벌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산자부가 '재벌 대변부'라는 소리를 듣는 거다.

최근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 공론화된 바이오디젤 정책을 둘러싼 산자부의 처신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산업기술평가원과 같은 평가기관이 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산자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놀라지 마라. 법에 의해 산자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관이 100개가 넘는다. 심지어 '원자력을 이해하는 여성 모임'이라는 것도 있다. 최근에 산하기관 현황을 조사하면서 보니까 10년째 산자부의 지원을 받고 있더라. 더 큰 문제는 이런 산하기관의 상당수가 산자부 퇴임 공무원의 노후 보장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산자부 공무원들은 기회만 되면 산하기관을 만들려고 한다. 꼭 필요한 산하기관이라면 누군들 반대하겠느냐? 문제는 사회적으로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없는 산하기관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후의 22명…지쳤지만 더 단단해졌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100여 명이 넘던 조합원이 4년 새 22명으로 줄었다. 현재 남은 22명의 상황은 어떤가?

김태진 : 2002년 산자부의 연구개발비 부당 집행을 언론에 제보하고 나서 결국 해고까지 당했다. 그 때 수십 명이나 되는 조합원이 이탈하고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이 4년을 함께 해 왔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고생되는 게 왜 없겠느냐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연대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프레시안 : 생활은 어떻게 유지하나? 상당히 고액 연봉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태진 : 말은 안 하지만 힘들어하는 조합원도 꽤 있다. 파업 기간 중인 4월 30일자로 지난번에 맺은 단체협약 기간이 종료됐다. 그래서 사 측에서는 5월부터 근로기준법에 의거해서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파업 기간 중에는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임금을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액을 받다가 월급이 안 들어오니 다들 힘들어 한다. 하지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150만 원의 파업기금을 모으는 데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상급단체인 전국과학기술노조에서 전 조합원들이 매달 개인별 5000원씩을 모아서 지원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된다.

프레시안 : 이번 파업 사태가 얼마나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나?

김태진 : 누군들 파업 사태가 오래 가길 원하겠느냐? 원장이 정말 산업기술평가원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현명한 판단을 하길 기대할 뿐이다. 원장이 전 원장 재임 시절 있었던 여러 가지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서 기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노조와 대화하려고 한다면 의외로 쉽게 사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언제까지 파업 사태가 갈 거냐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 지쳤지만 더 단단해졌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22명이나 되지 않느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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