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는 의심할 바 없이 한국사회의 적대적 분열을 드러내는 가장 포괄적이고 첨예한 쟁점 중의 하나이다. 온 국민이 거의 예외없이 이해당사자라고 느낀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포괄적인 문제영역을 찾기 어렵고, 취업-결혼-주거환경-자녀양육-의료복지 등 삶의 질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들에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극도의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는 안건이다.
따라서 학교운영과 입시제도에 관한 교육부의 사소한 지침도 격렬한 논쟁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데,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의 개정 같은 중대한 사안이 조용히 넘어간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및 관련단체들의 대립은 사학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교육개혁논의, 구한말 이후 한국사학 전통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돼야
우리나라 교육에서 사학은 중학교 23%, 고등학교 46%, 대학교 82%라는 현재의 비율로 보더라도 막중한 위치에 있지만 그 비율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구한말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설립된 사학들(특히 종교계 사학들)은 식민지 관학(官學)에 대립되는 근대 민족교육-민족운동의 근거지였고, 해방후 새나라 건설의 열기 속에 탄생한 학교들도 그 나름의 전통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50년대 이후 다수의 사학들이 족벌경영과 경리부정으로 교육의 근본을 오염시켜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육개혁 논의는 기본적으로 한국사학의 전통에 대한 존중을 출발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지난 4월 전국 2000여 개 사학에 대해 실시된 감사원의 재정 및 교육여건 실태조사는 참으로 현명치 못한 조치였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개정 사학법 시행(2006년 7월 1일)에 저항하는 사학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정치권력의 노골적 협박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개정 사학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기에 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등 사학단체들은 법률 불복종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사학법 개정은 사립학교의 권한과 명예를 탈취하는 처사이며 사학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 학교와 모든 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그 운영상의 자율성을 심히 위협한다"는 보수교단의 주장은 얼마나 합리적 근거가 있는가. 개정 사학법과 그 시행령에서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보자.
(1) 이사의 1/4 이상은 학교운영위원회-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한 인사 중에서 선임한다(개방이사제).
(2) 이사회 회의록은 회의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석 달 동안 당해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3) 이사-감사 등 임원의 인적사항을 학교 홈페이지에 상시 공개한다.
(4) 친족이사의 비율을 1/4로 축소하고 감사 1인은 운영위원회-평의원회의 추천을 거친다.
(5)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이사장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은 그 학교의 장에 임명될 수 없다.
(6) 교원-직원-학생 대표와 동문 및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들로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하여 학칙 제정, 교육과정 운영, 이사-감사 추천 등의 사항을 심의하고 예산과 결산에 관한 사항을 자문한다.
이로써 본다면 과연 학교재단 소유자들의 권한이 대폭 제한되고, 특히 종래 분규재단들의 비리와 독선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많은 장치들이 재단 내부에 마련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부정이나 비리와 거리가 먼 종교계 재단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학법의 어느 규정이 건학이념의 훼손 또는 자율성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진 것일까.
사학비리 감싸 온 교육관료들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란의 촛점이 되었던 것은 개방이사제이다. 그래서 가령 한나라당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 등"이 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고 "등" 한 자를 더 넣음으로써 교직원과 학생이 포함된 상기 위원회 이외의 친(親)재단적 기구에 이사추천권을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설령 개정 사학법에 의해 개방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한다 해도 1/4에 불과한 숫자로써 학교운영을 좌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며, 더욱이 교육부의 개정 사학법 및 동 시행령과 <정관규정>에는 "○○교단의 신도로서 세례를 받은 자이어야 한다"라고 개방이사의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예시함으로써 종교재단의 우려가 지나친 피해의식의 발로임을 증명한다.
아마 개방이사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대학평의원회의 설치 자체일 것이다. 왜냐하면 정관 규정의 예시대로 교수-직원-학생 등으로 구성된 이 평의원회가 기존의 교수회, 교무위원회보다 법률상 상위기구라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비종교 재단을 막론하고 대학행정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현행 이사회의 압도적 권위와 폐쇄성을 잠식하는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여야가 글자 한 자에 매달려 의안처리를 미루고 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희극이다.
마지막으로 사학재단의 부정과 비리는 사학법의 개정 아닌 정부의 감독-감사권만으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일부 언론들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태의 정곡을 찌른 측면이 있다. 고 이수인(李壽仁) 의원이 "학원마피아"라는 극단적 용어를 쓴 적이 있지만, 이 마피아의 배후에 언제나 교육부-교육청 관료들의 비호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난 학생과 교사들에 의해 비리재단의 문제가 학원분규의 형태로 사건화될 때까지 참담한 교육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책임을 방기한 것은 언론 자신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모든 쌓이고 얽힌 사학의 모순을 사학법 개정 하나로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처음부터 무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의해 역사가 전진한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www.changbi.com)' 7월 4일자에 실린 것으로 창비 측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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