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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만이 KAIST를 구할 수 있다고?"

총동문회 "내부 인사 지지"…새 총장 선임 놓고 '진통'

로버트 러플린 총장의 뒤를 이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선임을 열흘 앞둔 가운데 과학기술부가 해외의 특정 후보를 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총동문회가 사실상 학내 인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과기부가 KAIST 총장후보로 특정 인사 내정했다?
  
  <프레시안>이 13일 입수한 'KAIST 총장 선임에 대한 총동문회 입장'은 총장 선임에 대한 총동문회의 강한 우려를 담고 있다. 이 문건은 지난 주 초안이 작성돼 12일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으로 확인됐다.
  
  KAIST 총동문회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 특정 외부 인사가 내정됐다는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공정한 평가와 검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며 "특히 개혁을 하려면 외부 인사를, 안정을 원하면 내부 인사를 차기 총장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에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일부 언론은 "과기부가 특정 후보(서남표 MIT 명예교수·기계공학)를 사실상 총장으로 내정했다"고 보도했고, 과기부가 이를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한 일이 있었다.
  
  과기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서남표 교수는 김우식 과학기술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총장 후보로 나설 때부터 구설수에 올랐다. 김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국내외 과학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울트라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고, 이 프로그램의 첫 참여자로 서 교수를 위촉하기도 했다.
  
  현재 KAIST 이사회는 차기 총장 후보로 서 교수와 강성모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교수(전기전자), 신성철 KAIST 교수(물리학) 등 3인을 선정해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KAIST 이사회는 오는 23일 차기 총장을 최종적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내·외부 인사 '2파전' 양상…총동문회는 내부 인사 '지지'
  
  KAIST 안팎에서는 과기부의 입김만 차단된다면 차기 총장 후보로 서남표 교수와 신성철 교수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성모 교수(61)의 경우에는 30년 넘게 미국에서 체류해 국내 사정에 어두울 뿐만 아니라 KAIST처럼 규모가 큰 연구 중심 대학을 이끈 행정 경험이 없어 부정적인 평가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반해 서남표 교수(70)는 기계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특히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으로 10년 동안 재직하면서 교수진의 40% 이상을 기계공학이 아닌 다른 전공자로 바꾸는 등의 개혁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행정 능력에서 서 교수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다. 서 교수는 2001년부터 KAIST의 석좌교수를 맡는 등 KAIST와도 인연을 맺어 왔다.
  
  한편 신성철 교수(54)는 자타가 공인하는 KAIST의 내부 인사 중 '총장 1순위'다. 최근 KAIST 교수협의회가 실시한 투표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기도 했다. 신 교수는 2년 전에도 교수협의회의 투표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총장 후보로 추천됐으나 노벨상 수상자의 총장 영입 방침에 따라 총장으로 선임될 기회를 잃기도 했다. 신 교수는 지난 7년여 동안 학내 주요 보직을 역임하면서 보인 리더십 때문에 KAIST 내부 구성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신 교수가 총장이 되면 최초의 KAIST 출신 총장으로 기록된다.
  
  이번에 KAIST 총동문회가 급히 입장을 표명한 것도 사실상 서남표 교수와 신성철 교수의 2파전 양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과기부가 서 교수를 내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KAIST 총동문회가 "내부 인사라고 해서 국제적 경험과 개혁 의지가 약하다는 선입관은 지양돼야 한다"며 사실상 신성철 교수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KAIST 안팎, "외부후보 혹시 '제2의 러플린' 될라"
  
  특히 KAIST 안팎에서는 서남표 교수의 '완고한 행보'와 '상대적인 고령'을 우려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KAIST 총동문회는 "서남표 교수의 경우에는 교수들의 찬반 투표에 응하도록 권유했으나 이마저 거부해 KAIST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기보다는 고위층의 결정에 의존하겠다는 완고한 행동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똑같이 해외에서 총장 후보로 나선 강성모 교수는 KAIST 교수의 찬반 투표에 응해 '총장 후보로 적합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KAIST의 한 교수는 "서남표 교수가 학문적으로 존경할 만한 교수이고 강한 추진력에 기반을 둔 행정 능력도 있는 것은 틀림없다"며 "하지만 러플린 총장의 예에서 봤듯이 KAIST 학내 구성원들과 대화하면서 호흡을 맞추지 않고는 어떤 거창한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교수들이 참여하는 통과의례를 별다른 이유 없이 거부한 것을 보면 또 다시 러플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서남표 교수의 노령도 학내 구성원들의 거부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KAIST 총동문회는 "서 교수는 현재 70세로 한국에서는 어떤 공직을 맡기에도 고령인데다, 앞으로 4년간 KAIST를 역동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도 매우 염려 된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KAIST의 한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독선적이라는 평이 많은데 나이까지 염두에 두면 학내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외부 인사 아니면 KAIST는 가망 없다?"
  
  한편 또 다시 총장 선임 과정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KAIST 구성원들의 마음 역시 편치 않다.
  
  KAIST의 한 교수는 "개인적으로 세 분 다 KAIST 총장 자격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 한다"며 "다만 정부, 언론 등이 마치 외부 인사가 아니면 KAIST는 개혁도 발전도 없다는 선입관을 은연중에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러플린 총장이 임명될 때도 그랬고 이번에 마치 내부, 외부 인사의 대결처럼 구도가 된 데도 이런 선입관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미 정부의 '보여 주기' 행정으로 러플린 총장을 겪으면서 큰 상처를 입은 'KAIST 호'에 과연 어떤 사람이 새로운 선장으로 올 것인가? 한국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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